[1961년 포린어페어스 칼럼] 미국의 실패 사례, 한국 (1)
2014년 1월 14일  |  By:   |  세계  |  12 Comments

-1961년 10월, 故 에드워드 W. 와그너(Edward W. Wagner) 하버드대 교수가 Foreign Affairs지에 기고한 칼럼 <한국에서의 실패(Failure in Korea)>를 요약하였습니다. 내용이 길어 이틀에 나누어 소개합니다. 

지난 16년 간 미국이 한국에 민주주의 자치 정부를 전파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날 한국에 들어선 권위주의 정부와 파트너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로부터 한국을 수호하고자 했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난과 경찰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국민들에게 공산주의가 매력적인 대안으로 다가올 수 있는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엄청난 양의 경제 원조를 퍼부어 전쟁의 상처를 일부 지우기는 했지만, 산업은 기초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고, 농촌 지역의 빈곤을 해소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자유 세계를 수호하기 위해 육성된 군대는 오히려 한국의 자유를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 살던 한인 7만 명이 자발적으로 북한으로 이주하기도 했죠. 이런 상황에 대해 미국의 대중은 무관심했고, 언론은 정부의 실패를 솔직하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승만 정부가 대중 시위로 물러난 후에도 미국의 평가는 “이승만은 위대한 애국자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실수도 했다”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5.16 쿠데타는 미국에게 있어서 망신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이에 대해서도 국무부는 부드러운 책망 정도로 넘어갔고 의회 역시 한국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묻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한국에서의 실패는 공공연하게 논의되지 않는 주제이고, 무엇이 이와 같은 실패를 초래했지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가장 큰 노력을 쏟아부은 한국,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첫째, 미군정의 책임 회피와 정책 실패를 꼽을 수 있습니다. 절실했던 토지 개혁을 미룬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죠. 이승만 정권의 전면적인 개혁 또는 조기 종식에 실패한 것도 원인입니다. 미국에게는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있었죠. 당시에는 이것이 주권국에 대한 “개입”이라 곤란하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이승만 정권에 대한 지속적인 경제, 군사적 지원이야말로 개입이 아니었던가요? 수년간 “개입”하고도 권위주의와 빈곤의 문제가 여전할 바에야, 당시에 미리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욕을 먹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둘째, 내부의 안정과 반공이라는 목표에 눈이 멀어, 스스로 공산주의의 유혹을 떨쳐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회 구조를 만들지 못한 것도 실패의 원인입니다. 미국 정부가 승인한 정치 지도자들은 대부분 반공의 목소리를 가장 크게 높였던 사람들입니다. 전통적인 한국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의지보다 스스로 이 사회의 엘리트가 되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던 구시대적 인물들이었죠. 1946년 대구에서, 1948년 제주에서 일어난 봉기는 대중의 정당한 요구에 근거한 것이었지만, 강한 경찰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공산주의 세력의 사회 전복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강한 경찰 조직은 현재의 군사정권 하에서도 더욱 강화되어 정당과 노조, 시민사회 조직을 해체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셋째, 미국이 한국이라는 나라와 국민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전후 미국이 할 일이 아주 많았던 점을 생각해보면, 한국이라는 나라에 깊이 개입하면서도 미리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지 못한 점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군정이 종식된지 16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변변한 한국 전문가가 없는 것이 미국의 현실입니다. 주한 미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들 가운데서도 언어 능력 5등급 중 2등급 이상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없고,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연구가 학회지에 실리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미국인이 쓴 한국 역사책은 1907년에 나온 것이 가장 최신판일 정도죠.

불행히도 앞으로의 전망 역시 밝지만은 않습니다. 현재 한국은 인구밀도로 세계 4위 국가인데, 인구 다수가 아주 좁은 경작지에 매달려 삶을 꾸려가고 있죠. 도시인들의 삶도 그다지 나을 것이 없습니다. 실업률이 25%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니까요. 1인당 국민 소득은 100달러 이하고, 발전량은 멕시코의 6분의 1 수준, 수입은 수출의 10배에 달합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추측하건대, 경제가 인구 증가 속도에 발맞추어 성장한다면 이는 기적에 가까운 일일 겁니다. 물론 미국의 원조가 돈 낭비 그 자체였다는 말은 아닙니다. 전쟁의 상흔도 많이 사라졌고, 일본 경제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벗어났으며, 수입하던 일부 생필품을 스스로 생산하기 시작하는 등, 소기의 성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조의 낭비를 막고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전문성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북한과의 경제력 격차에 있습니다. 북한이 체제 선전용으로 성과를 자랑하는 것을 감안해도 발전량이 이탈리아나 일본 수준에 근접하는 등, 전후 공산주의식 복구가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북한 주민들은 훨씬 더 나은 생활 수준을 누리고 있고, 어차피 자유주의 체제를 경험해본 일이 없는 이들에게 공산주의 체제의 단점은 크게 와닿지 않을 겁니다. 일본에 거주하던 한인들이 북한을 택해 돌아간 데는 타국에서 배척당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고달팠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의 고향이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이들이 북한에서 더 큰 미래의 희망을 보았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분단 전 한반도의 산업 기반이 대부분 북쪽에 있었고 자연 자원도 북한이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출발점에서부터 핸디캡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의 체제가 노동자나 농민들에게 국가적인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는 소속감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더 많은 대중 일반이 정치, 사회, 문화 등 전 영역에 걸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성장이나 성과의 확산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Foreign Affairs)

-내일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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