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천재적 사고(Mastermind)-셜록 홈즈처럼 생각하는 법
2013년 1월 31일  |  By:   |  과학  |  3 Comments

“나는 사람들이 과학에는 상상력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무척 놀랍습니다. 물론 과학에 필요한 상상력은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상상력과는 무척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과학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면서도 지금까지 보던 것들과 모순이 없는 어떤 것을 상상해야 하고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이면서도 명확하고 모호하지 않은 어떤 것을 생각해내야 합니다.”

이것은 노벨상을 수상했던 리처드 파인만의 말입니다. 상상력이란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1968년, 높이뛰기는 이미 체계가 잡힌 종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도움닫기 후에 몇가지 방법으로 뛰었습니다. 과거에는 “정면 뛰기(scissors)”라고 불리는, 두 다리를 가위와 같이 벌려서 넘어가는 방법을 많이 썼었습니다. 그러나 60년대에는 “복면 뛰기(belly roll)”라고 불리는, 배를 아래로 해서 넘어가는 방법이 많이 쓰이고 있었습니다. 어느 방법이든, 사람들은 앞으로 뛰었습니다. 누군가가 뒤로 뛰겠다고 말했다면,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고 말았을겁니다.

그러나 딕 포스버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내내, 그는 “배면 뛰기(backward-facing)”를 연습했습니다. 그는 왜 자신이 그렇게 뛰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는 오직 높이 뛰는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지만, 그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올림픽 팀에 들어가게 되었고, 마침내 세계기록에 4cm 모자란 2.24m 의 올림픽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습니다.

포스버리는 한 운동의 역사를 통채로 바꾼 희귀한 운동선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우승뒤에도 사람들은 다른 선수들이 그를 따라 배면뛰기를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 올림픽 결승에 오른 16명중 13명은 배면뛰기를 하고 있었고, 그 흐름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복면뛰기를 하는 사람이 어색해 보입니다.

포스버리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단지 상상력을 가지고 다른 식으로 접근했을 뿐입니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셜록 홈즈의 파트너인 왓슨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홈즈의 가장 놀라운 능력은 그가 스스로 더 이상 생각을 진행할 수 없다고 느낄때마다 두뇌의 활동을 멈추고 사소한 것들로 머리를 가득 채우는 능력입니다.”

풀어야 할 문제를 버려두고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은 상식과 어긋나 보입니다. 그러나 심리학자 야코프 트로프는 심리적 거리를 두는 것이야말로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시간적 거리(과거나 미래를 가정하는 것)나 공간적 거리(가까이 또는 멀리 있다고 가정하는 것) 또는 사회적 거리(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를 따져보는 것)와  현실과의 거리(만약 그 일이 실제로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지를 추측하는 것)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가능합니다. 이 모든 사고방식의 공통점은 당신이 현실을 초월하여 한 걸음 밖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Scientific Ameri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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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미로운 글인데, 내용이 잘 정리가 안 되네요.
    리처드 파인만의 이야기와 야코프 트로프의 이야기는 잘 연결됩니다. 애초에 bios theoretikos 자체가 거리두기, detachment 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요.
    그런데 딕 포스버리와 셜록 홈즈를 “트로프가 말하는 거리두기”의 사례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각각 그 자체로는 매혹적이고, 일리 있는 얘기들이지만 종류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포스버리는 오히려 예술적 상상력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제가 “I just let it happen” 에 너무 주목해서 그런지.. 홈즈는 또 전혀 별개의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문제라도 더 이상 답이 안 나올 때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잠깐 머리를 식히는 게 낫다’와 비슷한 맥락? 그런 상황에서 아름다운 경치에 잠길 수 있는 것이 비범한 능력이라는 점과 그것이 어떤 창조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가 갑니다만.
    파인만과 트로프의 얘기는, 인용문만 봐서는, 기본적으로 대상에 대한 관찰이 지속되는 것을 전제하고 그 관찰에 있어서 거리를 조절하고 관점을 바꾸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거리를 두고 관점을 바꿔가며 대상을 잘 관찰하라는 얘기?
    아무래도 제 사고가 너무 경직된 것 같습니다. 기사로부터 거리를 두고 딴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 http://veritaholic.wordpress.com veritaholic

      날카롭고 옳은 지적입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주어진 영어 문장에서 최대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해서 미화하지만 원문의 한계는 넘을 수 없는 저희 사이트의 한계라고도 말할 수 있구요.

      저도 포스버리의 경우는 예술적 상상력에 가깝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같은 의미로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논리적인 귀결이 아닌, 곧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그 결과 성공을 이룩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이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너무 근대(이성)중심적인, 한 물 간 사고방식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글의 경우 지적하신, 파인만, 포스버리의 이야기는 꼭 연결이 아니라 ‘상상력의 힘’을 나열한, 독자에게 흥미를 주기 위한 예라고 생각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가장 중요한 특성인 ‘재미’가 있다는 것이 서평을 쓴 잉그리드 위클그렌이 이 이야기를 넣은 이유라고 생각되구요.

      그리고 왓슨이 묘사한 홈즈의 특성의 경우, 저도 100% 설득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일반적인 연구활동의 95%는 책상 앞에서 한 가지 만을 생각하며 머리를 쥐어짜내는 지루하고 괴로운, 그러나 꼭 필요한 과정에 의해 완성됩니다. 그러나 나머지 5%, 결국 한 논문의 핵심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은, 절대 책상 앞에서는 떠오르지 않으며, 운전을 하다가, 길을 걷거나 밥을 먹으면서 여러 다른 생각의 갈래를 넘나드는 중에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한 것은 이정도 입니다.

      제 생각은 잉그리드 위클그렌이 이 부분(유기적인 서평을 쓰지 못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책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 자체에 대해서는 대체로 매우 우호적입니다. 위 책은 출간되자마자 Scientific American(위 기사)과 가디언(http://www.guardian.co.uk/books/2013/jan/04/mastermind-maria-konnikova-review)에 소개될 정도로 괜찮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가디언은 며칠 뒤 서평을 한 번 더 다루기도 했구요.
      http://www.guardian.co.uk/books/2013/jan/13/mastermind-sherlock-holmes-digested-read

      스티븐 핑커가 추천사를 쓴 것으로 봐도 믿을 수 있는 책이라 여겨집니다. (저자가 하버드에서 심리학으로 학부를 졸업했으니 개인적 인연에 의한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마침 다음주 금요일에 제가 있는 곳 근처로 저자가 옵니다.
      http://www.harvard.com/event/maria_konnikova/
      말씀하신 내용을 포함해서, 기회가 되면 물어보겠습니다.

      • 네 원문 자체에 대해 들었던 의문을 쓴 것이었습니다. 사이트의 한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서평이 전혀 유기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 VERITAHOLIC님의 의견도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저야 연구를 해 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책상에서만 연구, 아이디어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정도로만 짐작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그 때 그 때 다르겠죠. 핵심 아이디어가 책상에서 떠오를 수도 있고, 운동 중에 떠오를 수도 있고.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라며 혹시 뒷 얘기 들려 주시면 또 읽겠습니다. 아 그리고 일반적인 존중의 의미로 그렇게 불러주시는 것일 테지만, 저는 선생님이 아닙니다. 한 애독자일 뿐이니 그냥 편하게 김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바쁘실 텐데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완전히 잘못 읽은 건 아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