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원조법" 주제의 글
  • 2013년 7월 26일. 쿠데타를 쿠데타라 부르지 못하고…

    이집트에서 군부가 모르시 대통령을 몰아냈을 때, 미국이 과연 16억달러에 달하는 대 이집트 원조를 중단할 것인가 지켜본 이들이 많았을 겁니다. 1961년 제정된 해외원조법(Foreign Assistance Act)에 따라 미국 정부는 선출된 정부가 군부의 쿠데타로 물러난 국가에는 직접적인 원조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백악관 대변인 제이 카니가 쿠데타를 쿠데타라 부르지 못하고 말을 돌려하느라 진땀빼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1961년 이래 군사 쿠데타가 발생한 국가는 몇 군데고, 미국이 원조를 중단한 경우는 몇 건일까요? 정답은 ‘아주 많다’와 ‘한 두 건’입니다. 리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1961년 5월 한국. 박정희 주도 하에 군부가 장면 정부를 몰아내고 집권. 냉전이 한창이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당연히 케네디 정부는 한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중단하지 않음. 다소 궁색한 변명이기는 하지만, 해외원조법이 발효되기 전에 쿠데타가 일어난 경우라 봐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음. -1963년 남베트남에서 군부가 응오딘지엠 정부를 몰아냄. 남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원조는 엄청나게 늘어남. 응오딘지엠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선거 자체가 부정선거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미국이 원조를 늘이면서 그 이유를 대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 -1967년 그리스에서 군부가 선거 전 임시로 구성된 과도 정부를 몰아내고 집권. 미국은 군 중장비 지원을 잠깐 중단했다가,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다음 해에 지원을 재개했고, 1970년에 다시 중단했다. 1971년 의회는 별도의 법안을 통과시켜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회복될 때까지 지원을 중단하려 했으나, 행정부가 예외 조항을 통해 계속 지원함. -1973년 칠레군부가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몰아냄. 미국의 군사 지원은 오히려 증가. -1977년 무하메드 지아 알하크 장군이 부토 대통령을 몰아냄. 미국의 군사 지원은 계속됨. 1979년 카터 대통령이 지원 규모를 줄였으나, 쿠데타 때문이 아니라 CIA가 발견한 핵농축 프로그램이 이유였음. 그러나 얼마 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자 미국은 다시 지원을 늘이기로 했는데 당시 카터가 4억 달러를 제시하자, 지아 장군이 이를 “땅콩”이라 표현하며 거절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음. -1979년 엘살바도르의 좌파 성향 군부가 (부정)선거로 당선된 카를로스 움베르토 로메로 정권을 몰아냄. 이후 우파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 당시 엘살바도르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오히려 늘어남. -1980년 정당하게 선출된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이 쿠데타로 축출됨. 대통령이 냉전에서 중립을 표방한데 비해, 새로 들어선 군부는 서방의 편에 서겠다고 선언해 미국의 지원이 오히려 늘어남. -2006년 태국 군부가 탁신 시나와트라 대통령을 몰아냄. 미국은 다음 선거가 치러지기까지 2년 간 군사적 지원을 중단했으나,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프로그램 쪽으로는 지원이 중단없이 계속 되었음. 이 정도만 보아도 미국이 해외원조법을 제대로 적용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은 충분히 드러납니다. 물론 1961년에 미국이 한국을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1979년 이란 혁명과 소련의 위협 앞에서 파키스탄도 마찬가지였겠죠. 마찬가지로 현재 이집트 지원을 계속할 명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지원을 끊었다가는 군부는 물론 진보적 세속주의자들도 고립될 것이고, 지원을 끊는다고 해서 무슬림형제단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미국이 외교적, 지리전략적 고려 없이 법만을 따른 사례는 드뭅니다. 그나마 놀라운 사실은 이번 정부가 이 점을 의식하고 “쿠데타”라는 단어를 직접 거론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Economist)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