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글리츠 칼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의 연구에 끼친 영향
마틴루터킹이 1963년 8월 28일 그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연설을 할 때 저는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스무살, 대학을 갓 졸업하고 MIT에서 경제학 박사 공부를 시작하기 직전이었죠. 킹 목사의 연설은 굉장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도 그 수많은 차별을 목격하고 경험한 세대입니다. 애머스트 칼리지(동부 매사추세츠 주 소재) 학생회장 시절 인종차별 철폐를 지지하기 위해 남부에 내려갔을 때, 저는 인종차별을 유지하려는 남부의 폭력적인 가치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흑인 학생만 있는 대학에 갔을때는 이들이 교육의 기회를 어떻게 박탈당했는지도 적나라하게 목격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격리되어 특권층의 교육을 받아왔는지요. 아메리칸 드림의 초라한 현실이었습니다.
인디아나의 게리라는 소도시에서 빈곤, 고용불안정, 인종 차별을 보며 자란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고, 이론 물리학을 공부하려던 계획을 바꿔 경제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의 경제학계에서는 시장 경제학의 기적을 믿는 아담 스미스가 대세였고, 불평등에 관심많은 저는 곧 별종이 되었습니다. 경제학에서 실업은 그 노동자의 책임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카고 대학의 로버트 루카스 쥬니어는 “경제학의 기반을 구축하는데 가장 해가 되는 것은 분배를 논의하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또다른 시카고학파 게리 베커는 완전 경쟁인 노동시장에는 차별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요. 저는 그게 궤변이란 걸 입증하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지난 50년을 돌아보면, 우리의 포부와 우리가 실제로 이룬 것의 간극이 얼마나 큰 지 모릅니다. 적어도 하나의 ‘유리천장’은 깨졌죠. 흑인 대통령을 두고 있으니깐요. 그러나 인종간 경제적 격차는 여전히 나라 전체를 갈라놓고 있습니다. 아직도 주요 미국은행은 인종에 따라 차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직업 시장을 보면 흑인 이름이면 인터뷰 요청을 덜 받는 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불심 검문도 흑인만 당하고, 전세계에서 제일 가는 미국 감옥 수감자의 40%도 흑인입니다. 간단히 숫자로 말해보죠. 2011년 흑인 가족 수입의 중간값은 $40,495로 백인 가족의 58%에 불과합니다. 2009년 백인 가족 재산의 중간값은 흑인 가족의 20배에 달했습니다. 2007년~2009년 경제 위기가 특히 하층민에게 큰 타격을 입히면서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죠. (관련 뉴스페퍼민트 기사) 미국이 기회의 땅이란건 다 구호일 뿐입니다. 지금 미국 청소년의 미래는 부모의 수익과 교육수준에 달려있습니다. 차별, 교육, 직업의 기회가 그대로 세습되는 건 경제적 계급에 따라 모여사는 현상이 심해지면서 백인의 12%만이 빈곤가에 사는 반면 흑인은 45%가 빈곤가에 사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마틴 루터킹 목사가 39세에 저격으로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84세 였을 겁니다. 그는 이런 차별이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꿈꾸는 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건 더 잘 알고 있었죠. (NY Times)
(역자주: 조셉 스티글리츠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신 케인즈학파 경제학자로 현재 컬럼비아 대학 교수입니다. 전 세계은행 부총재를 역임했고, 국내에는 ‘불평등의 대가’ ‘경제 민주화를 말하다’ 등의 책이 소개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