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술을 현대 의학이 이용할 수 있을까요?
환자는 최면술사와 1미터 정도 가까이 마주보고 앉았습니다. “제 뒤에 있는 창문 손잡이를 잘 쳐다보십시오. 다른 것은 보지말고 그 손잡이에 집중해서 보세요. 구리 부분이 밝게 빛나는 손잡이만 보입니다. 당신은 안락의자에 편안히 몸을 기댑니다. 긴장을 풀고, 저 한 점만 응시합니다. 사물이 흔들리고 계속 쳐다보기 힘들다면 좋습니다. 그런 느낌이 들 때 천천히 눈을 감으십시오”
환자의 눈꺼풀이 닫히고 오른팔이 툭 힘없이 떨어졌습니다. 그녀는 최면에 빠져 가수면 상태가 된 것입니다. 비록 바른 자세로 의자에 앉아있긴 하지만, 최면술사의 깊고 느린 목소리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어깨에 힘이 없어지는 게 느껴집니다. 가슴에도 힘이 없습니다. 팔, 다리, 발. 차례 차례 몸 전체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집니다. 괜찮습니다. 당신은 편안함을 느낍니다.” 환자는 아주 살짝 고개를 떨굽니다. 턱이 느슨해집니다. 최면술사에 따르면 “자신의 내부”로 들어간 상태입니다. 그 자신이 의사이기도 한 환자 마리(가명) 씨가 최면에 빠진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지난 5년간, 소아과 의사이자 의대 교수인 마리 씨는 이상한 질병에 시달려왔습니다. “밤에 잠을 자려고 할 때면 몸에 쏘는 듯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통증은 점점 더 심해져셔 침대의 얇은 이불도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 됐습니다.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마리 씨는 점점 쇠약해졌습니다. 진정제, 소염제, 진통제 등을 복용해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최후의 수단은 최면술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묘사된 최면술 장면은 개인 병원 치료실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에 소재한 피에르-마리 퀴리 대학 강당에서 진행된 것입니다. 백 명이 넘는 젊은 의사 앞에서 벌어진 최면술 강의였습니다. 이 대학교 장 마르 벤하임 교수는 임상의학 강의의 한 부분으로 이 프로그램을 열었습니다. 좀처럼 학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프랑스 최면술학회 대가인 프랑수와 루스탕(92)도 이날 강의에 참석했습니다. 최면을 건 사람, 최면을 받은 사람, 이를 지켜본 사람들이 모두 의사였습니다.
“이제 당신의 몸은 텅 비어 버립니다.” 벤하임 교수가 환자에게 속삭입니다. “당신의 몸은 텅 빈 껍데기입니다. 당신은 이제 이 껍데기 안에서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마치 보호막처럼 느껴집니다. 당신의 몸은 이제 당신 편입니다. 팔부터 다리까지, 당신을 괴롭혔던 것들은 이제 다 멀리 사라져버렸습니다. 몸이 깃털처럼 가볍습니다.” 치료사의 목소리는 마치 적막 속에서 염불을 외는 것처럼 떨렸습니다.
이 단계에 이르자, 마리는 완전히 몸의 힘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최면에 빠진 것은 마리 혼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청중의 일부도 가수면에 빠진 것이 보였습니다.
“아주 흔한 일입니다.” 벤하임 교수는 강의가 끝난 뒤 설명했습니다. “최면술 강의는 인덕션(induction)이라는 도입 단계부터 시작합니다. 긴장을 푸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환자는 가수면에 들어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누구나 다 최면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강당에서 있었던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환자에게 최면을 걸고 있던 벤하임 교수가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더 느리고 느린 목소리로 조용히 환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마치 강당에 두 사람밖에 없는 듯했습니다. “최면 과정에서 피최면자와 시술자 사이의 협동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를 치료단위(therapeutic union)라고 부릅니다.”
25분 쯤 지났을 때 최면술사의 목소리는 다르 원래의 박자대로 돌아왔습니다. “당신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옵니다. 하나, 둘, 셋. 이제 눈을 떠도 좋습니다. 긴장을 풀고 몸을 펴십시오. 끝났습니다. 당신은 돌아왔습니다.”
최면이 있던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환자 마리 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하지만 마리 씨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최면이 끝나고 난 뒤 환자는 한동안 멍한 상태가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라고 벤하임 교수는 말합니다.
최면술에 관심을 가지는 의학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면술이 중독 치료(담배, 폭식 등)나 스트레스 완화에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날 강당에서 강의를 들은 의사 나이다 씨는 자신이 겪은 임상 사례를 이야기했습니다. 강박 증세에 시달리던 소녀가 있었는데 열 여섯살 때부터 머리칼을 쥐어뜯기 시작해 항상 머리칼이 뽑힌 자국이 머리에 있던 환자였습니다. 항정신병 치료를 거듭하던 중 나이다 씨는 소녀에게 최면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놀랍게도 몇 주 뒤 더 이상 소녀가 머리칼을 뽑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면에 관한 많은 부분이 과학적으로 아직 명확히 설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랑수와 루스탕은 “최면술에 대한 명확한 정의(definition)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의 경우는 어땠을까요? “약물을 쓰지 않고 치료를 한다는 것이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최면 치료로 밤에 잠드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통증은 남아있습니다.”
마리 씨는 벤하임 교수와 세 번째 최면 치료 약속을 잡았습니다. 이번 최면은 대학 강당이 아니라 작은 치료실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원문출처: L’O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