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진 영국, 유럽연합 탈퇴가 최선일까?
*옮긴이의 말 – 본 기사의 저자 마틴 울프(Martin Wolf)는 본문에 나오는 유럽개혁본부의 위원회 멤버로 활동 중이며, 인용된 보고서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영국보다는 유럽연합측 시각을 좀 더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본 기사의 댓글은 물론 다른 기사에서는 유럽연합의 시각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경우도 많이 발견되고 있음을 더불어 알려드립니다.
현재 영국은 유럽연합에 슬쩍 ‘발만 걸친’ 중도국(halfway house)입니다. 유럽이라는 단일 시장의 이점을 누리기 위해 영국은 유럽연합의 공식 가입국으로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들과의 정치적 운명 공동체를 결성하는 것에는 반대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여전히 유로화가 아닌 파운드화를 사용하고 있고, 경제 뿐만 아니라 규제 시스템의 통합까지도 진행 중인 다른 가입국들과는 달리 영국만의 독립 기관을 설립하여 독자적인 규제 시스템을 유지해 왔습니다. 더욱이, 영국의 데이비드 카메론(David Cameron) 총리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2017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공약까지 공공연히 내걸고 있죠.
실제로 영국에서 국민투표까지 벌어질지 여부는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선거 결과와는 상관없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논쟁은 결코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입니다. 영국이 그토록 원하는 정치적 독립성과 유럽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동시에 얻기란 불가능에 가깝기에 영국이 어느 선택지를 택하든 비판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럽개혁본부(the Center for European Reform)에서는 이번 주 ‘유럽연합 탈퇴로 인해 예상되는 경제적 파장’에 관한 보고서를 출간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유럽개혁본부가 내린 결론은 영국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보고서는 어떠한 유럽연합 가입국이든 탈퇴를 염두에 두며 중도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이상 ‘주변인’에 머물 것이며, 그 결과 해당국은 단일 유럽 시장에 관한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국 내 독립성 또한 완전히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 결론내렸습니다. 보고서는 또한 탈퇴냐 가입 존속이냐의 문제에서 더 유리한 결정은 후자가 될 것이란 전망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영국이 유럽연합의 탈퇴를 결심한다면, 이들은 현실적으로 세 가지 대안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노르웨이와 같이 유럽경제지역(European Economic Area)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영국은 단일유럽시장에 관한 접근권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허나 시장의 규율을 정하는 과정에서 영국은 어떠한 목소리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는, 터키와 같이 유럽시장과 관세동맹(customs union)을 맺는 것입니다. 이 경우, 영국은 단일유럽시장에 관한 접근권을 잃게 될 위험성이 높습니다. 또한, 역외 공통관세(common external tariff)를 부담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셋째는 스위스와 같이 유럽연합과 양자 합의서를 채택하는 것입니다. 이론상 영국에게는 최고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방식이지만, 이 경우 대유럽 무역 의존율(50%)이 높은 영국의 협상력이 대 영국 무역 의존율(10%)이 낮은 유럽연합에 비해 떨어질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불리한 협정을 맺을 가능성이 높죠. 결국, 어느 대안이든 유럽연합 가입국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과 권한보다 더 나은 것을 영국에게 제시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유럽연합을 탈퇴하여 WTO에만 의존하며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에는 예상되는 영국의 희생이 너무 큽니다. 유럽 강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자간 합의에서 영국의 발언권은 미약해질 것입니다. 정치 및 외교적 입지 약화는 각종 규제로부터 영국 금융기관들을 보호하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다국적기업의 전초기지로서의 매력 또한 감퇴할 것입니다. 유료화 중심의 자산들이 런던으로부터 대거 빠져나갈 위험도 높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감내하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단지 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자유에 불과하다면, 영국의 셈법은 재고되어야 할 것입니다. (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