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없이 지속되는 평화, 경제 불황의 원인일까?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계속되는 선진국들의 경기 불황을 약한 수요,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 과도한 규제, 적절치 못한 기반 시설, 창의적인 생각의 소진 등으로 설명해왔습니다. 최근 들어, 이러한 설명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 경제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새로운 이론은 전쟁 없이 지속되는 평화 기조가 선진국들의 성장률을 잠식시킨다고 주장합니다. 비록 작금의 이라크나 수단에서 전개되는 사태처럼 작은 전투들이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20세기 초 수많은 사상자를 기록한 두 차례의 세계 전쟁이 발발한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전면적인 전쟁이 발생한 적은 없었고 이로 인해 선진국들의 경기 성장이 둔화되었다는 설명인 것이죠.
이 이론이 주창하는 것은 경제 발전을 위한 전쟁의 불가피성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공투자가 확대되어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믿는 케인즈 학파의 주장도 절대 아닙니다. 이보다, 이 이론은 전쟁 발발의 가능성이 정부의 핵심 정책 수립에 미치는 영향력에 주목합니다. 이를테면 냉전은 많은 희생자들을 낳았지만, 군사력에서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각국의 모든 역량을 기술 개발에 집중시키면서 원자력 발전 기술과 컴퓨터, 전투기, 인공위성 등이 탄생하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혁신을 이끌고 있는 실리콘 벨리 역시 미국 정부와의 군수 계약으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현대 경제에 필수 기반시설인 인터넷도 원래는 군사적인 용도로 먼저 개발이 되었죠. 이처럼 새로운 이론은 ‘훗날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준 기술적 혁신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쟁으로 인하여 정부의 모든 역량과 정치력이 한 곳으로 집중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고 생각합니다.
스탠포드의 역사학 교수 이안 모리스(Ian Morris)는 임박한 전쟁에 대한 열성적인 준비가 기술적 혁신을 선도한 사례는 고대 로마제국,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 나라들, 현재 미국 등 역사 전반을 통해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콰시 콰텡(Kwasi Kwarteng)은 ‘전쟁과 금(War and Gold)’이란 그의 저서에서 막대한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통화 및 금융 기관의 등장을 촉발했으며, 이로 인해 서구 세력들이 눈부신 경제적 도약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을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릅니다. 과거보다 훨씬 강력해진 현대 무기의 등장으로 인하여, 강한 전쟁 억지력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설사 전쟁 없이 지속되는 평화로 인해 선진국들의 경제 성장이 둔화되었더라도, 이를 나쁘게 바라볼 이유 또한 없습니다. 경제 성장을 일부 포기하는 대신, 경제 성장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지구촌의 평화와 생명에 대한 경외,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있는 것이니까요. (N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