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압류 위기에 처한 가정을 구하기 위하여 수용권(eminent domain)을 사용하려는 도시들
수용권은 국가가 개인의 동의 없이 공공의 이익이나 사용을 위하여 사유 재산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로서, 전통적으로 주택보유자들의 이권에 반하여 사용되어 왔습니다. 수용권의 행사는 주민의 강제이주를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주의 리치몬드(Richmond, California) 시는 이러한 수용권을 오히려 주택압류 위기에 처한 가정의 거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사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연체된 주택 융자금을 시 정부가 강제로 매입하여 채무 불이행으로 인한 주택압류 절차를 막겠다는 겁니다. 이러한 리치몬드 시의 움직임은 월스트리트의 은행들과 리치몬드의 정책을 모방하려는 다른 도시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내 많은 지역에서 주택 가격이 다시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리치몬드 시의 절반 가까이 되는 주택 보유자들은 아직도 주택의 현재 시장가치가 주택담보 대출액보다 현저하게 낮은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뉴워크(Newark), 시애틀(Seattle), 그리고 많은 캘리포니아 주의 도시들이 리치몬드와 같이 수용권을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주택압류절차를 막는 데 사용하려하고 있으며, 최근 뉴저지 주 얼빙턴(Irvington, NJ) 시는 실제로 수용권의 압류절차 방지를 위한 사용에 찬성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리치몬드 시가 수용권을 통해 추진하려는 회생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40만 달러(4억 4천만 원)의 대출금이 잡혀 있는 주택의 현재 시장가격이 20만 달러(2억 2천만 원)일 때, 시 정부가 현재 시장가격에 적정 할인가율을 곱하여 산정된 금액으로 연체된 융자금을 강제로 매입한 뒤, 주택보유자와 더 낮은 금액에 새로운 융자 계약을 맺는 식입니다. 적정 할인가율이 80%라고 할 때 연체된 융자금의 매입가는 16만 달러가 되며 각종 제반 비용과 수익의 일부로서 3만 달러를 더한 금액(19만 달러)이 새로운 융자계약의 총액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 시장가격(20만 달러)으로 주택을 매도하더라도 20만 달러의 채무(대출금액 40만 달러와 현재 시장가격 20만 달러의 차이)가 남게 되는 주택 보유자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1만 달러(현재시장가격 20만 달러와 새로운 대출금액 19만 달러의 차이)의 자기자본을 소유한 주택 보유자로 새롭게 탄생하는 겁니다.
금융권과 부동산업계는 수용권에 대한 이러한 정부의 변용은 무척 이례적이며 위헌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용권의 변용은 정부가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모든 재산의 종류에 수용권을 오용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는 길이다며 경고합니다.
미국 은행가 협회, 증권/금융시장 협회 등의 단체들은 캘리포니아 주 정부 및 페니메이(Fannie Mae), 프레디맥(Freddie Mac), 연방주택행정부(Federal Housing Administration)와 같은 기구들에 변용된 수용권의 행사를 방지하는 대책을 강구하라며 로비스트를 보내는 등 반 공조체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프마 자산관리 그룹(Sifma’s Asset Management Group)의 수장 팀 카메론(Tim Cameron)은 리치몬드 시와 같은 수용권의 행사가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의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지도 모르며, 연체된 주택 융자금을 시에서 강제로 매입하여 새로운 대출계약을 작성하는 것은 현재의 대출자를 새로운 대출자로 대체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면서 그 효용성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주택담보대출 투자자들이 수용권의 행사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택담보대출 투자자 윌리엄 프레이(William Frey)는 수용권의 변용적 행사가 가장 좋은 대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는 수용권 행사 이외에 대규모의 부실 주택담보대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점점 더 빠르게 고갈되어 가고 있음을 지적하며 수용권 행사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리치몬드의 많은 주민들이 주택담보대출금 상환과 자기자본 잠식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집이란 경제적 가치를 떠나 가족들과 자식들을 위해 결코 쉽게 양보 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N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