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민이 총기를 소유할 수 있었다면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하기가 훨씬 어려웠을 것이라는 공화당 대선 주자 벤 카슨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나치 독일과 홀로코스트 연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독재 및 홀로코스트의 주요 원인으로 나치 독일의 총기 정책을 꼽은 진지한 학술 논문을 본 적이 없습니다. 유대인, 집시, 장애인, 동성애자 등 나치가 탄압했던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 속에 총기 규제라는 이슈가 어떠한 의미를 지닌 채 남아있는 것도 아닙니다. 카슨의 주장은 전형적인 몰역사적 시각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사안을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던 역사적 맥락 속에 함부로 갖다 놓고 있기 때문이죠.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총통의 자리에 오른 것은 1933년 1월의 일입니다. 하지만 제3 제국은 1938년에 이르러서야 “권총을 소지하려면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무기법을 제정합니다. 이때도 권총을 제외한 나머지 총기류는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만약 카슨의 주장대로 나치 정권이 독일 국민을 무장 해제시키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았다면 5년이나 걸려 불완전한 법을 제정했을 리 없죠. 카슨은 또한 제3 제국 이전 민주적인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오히려 총기 규제가 더욱 엄격했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1938년 말, 독일에서는 유대인이 어떠한 형태의 총기도 소지할 수 없다는 법이 만들어집니다. 이 법은 나치 폭도들이 수많은 유대인을 공격했던 ‘수정의 밤’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 발표됩니다. 이 법은 이후 계속된 나치의 유대인 탄압 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치는 유대인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유대인이 나머지 독일인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주장을 펼쳤죠.
당시 독일 인구 가운데 유대인의 비중은 1%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무기를 갖고 있었다 해도, 현대 관료제와 무장 경찰, 국민 다수의 지지를 등에 업은 나치 정권에 무력으로 저항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독일 국민이 총기 소유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던들 소수인 유대인들의 편에 서서 정권에 대항했을까요? 유감스러운 사실이지만, 당시 나치 정권은 독일 내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무력으로 정권에 맞설 만한 조직은 군대밖에 없었지만, 군이야말로 초장부터 히틀러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말았죠.
1943년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에서 일어난 무력 저항은 소수의 무장한 시민이 잘 조직된 무장 조직에 맞섰을 때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지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이 사건은 유대인들의 저항 정신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지만,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단번에 제압당했고 홀로코스트의 진행이라는 큰 흐름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벤 카슨의 발언은 2차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축소했을 뿐 아니라, 조국이 과거에 저지른 끔찍한 실수의 배경을 알아내기 위해 오랜 세월 꾸준히 연구해온 여러 독일인의 노력마저 하찮은 것으로 격하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나치 독재의 뿌리에는 독일 제국의 권위주의적 전통, 극복하지 못한 1차대전의 패배,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적 실패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 연구에는 당시 독일 사회의 유대인 혐오와 외국인 혐오에 관한 연구, 평범한 시민들이 끔찍한 일에 동참하게 된 사회적, 심리적 배경에 관한 연구가 포함됩니다. 독일인들은 자국의 역사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총기 규제와 나치 독일을 엮은 선동에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어리석고 부적절하며 모욕적인 역사적 비유를 가져오는 것,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사의 중대한 문제를 이용하는 것은 미국의 총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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