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경영경제문화

갭(GAP)은 패션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뉴욕 맨해튼 34번가에 있는 H&M 매장에는 개장 10분 전인 아침 8시 50분이면 20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매장에 한시라도 빨리 들어가고 싶어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H&M 매장 반대편에 있는 갭(GAP) 매장 역시 같은 시간에 문을 열지만 이를 기다리는 손님은 없습니다. 이 대조적인 모습은 미국 패션 시장의 현재를 잘 보여줍니다. 미국을 대표해 온 브랜드인 갭이나 제이 크루(J.Crew), 아메리칸 어패럴(American Apparel), 그리고 애버크롬비 앤드 피치(Abercrombie & Fitch)와 같은 브랜드들의 매출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세련되고 저렴한 외국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H&M이나 유니클로(Uniqlo), 그리고 자라(Zara)와 같은 브랜드들은 나날이 번성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가 브랜드들은 설 자리를 잃었고 이 현실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갭입니다. 지난주 갭은 북미 지역 매장 675개 가운데 약 25%를 앞으로 몇 년 안에 닫을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한때 샤론 스톤과 같은 미국의 대표적인 여배우가 입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갭의 위상은 더 이상 예전같지 않습니다. 만약 갭 경영진이 발표한대로 현재 북미 대륙에 있는 매장의 25%를 줄이면 갭 매장 수는 가장 매장의 수가 많았던 2000년의 40%에 불과할 것입니다.

럭셔리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티제이 맥스(T.J.Maxx)와 같은 할인 매장의 인기가 증가하면서 갭이나 애버크롬비와 같은 브랜드들은 중간에 끼여서 고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한때 자신들이 장악했던 시장에서조차 고전하고 있습니다. 갭과 애버크롬비는 예산은 제한된 데 반해 시간 여유는 많았던 청소년이나 젊은 성인들이 쇼핑을 할 때 빠지지 않고 들르는 장소라는 위상을 H&M이나 자라와 같은 브랜드에 내줬습니다. 현재 미국에 있는 H&M 매장 수는 368개인데, 올해만 65개의 매장을 새로 열 예정입니다. 유니클로는 기본 아이템을 판다는 점에서는 갭과 비슷하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첨단기술 소재들을 다양한 색상으로 판매하며, 질 샌더(Jil Sander)와 같은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적당한 가격에 판매한다는 점에서 갭과 차별화에 성공했습니다. 지난 4년간 유니클로는 미국에서 42개의 매장을 열었습니다. 올가을에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기반을 둔 브랜드 프리마크(Primark)가 미국에 진출할 예정입니다.

온라인 패션 잡지의 편집장 케이트 데이비슨 허드슨(Kate Davidson Hudson)은 말합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대중들은 하이 패션에 대한 접근권이 없었어요.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와 블로그를 통해서 런웨이에서 어떤 패션이 유행하는지를 볼 수 있고 이를 원해요. 갭과 같은 브랜드는 이런 트렌드를 대표하지 못해요.” 갭과 같은 브랜드가 전 세계에 공장을 두고 새로운 트렌드가 떠오르면 재빨리 이를 생산하도록 본부에서 허가하는 시스템을 가진 자라와 같은 체계를 따라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자체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갭이 자라와 같은 수직 통합형(vertically-integrated) 모델을 갖추는 데는 수천만 달러의 자본이 들고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미국 패션 브랜드의 내림세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미국 쇼핑몰 문화에 너무 천착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곧 문을 닫게 될 갭 매장의 대부분은 쇼핑몰 안에 있습니다. 반면, 해외 패션 브랜드들은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 지역에서 매장을 운영해 왔고, 미국에서도 이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국 브랜드들이 처한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제시하는 옷의 종류가 구식이라 이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제이크루는 아무도 사지 않는 짧은 스웨터를 그만 만들고 애버크롬비는 브랜드 마케팅에 지친 젊은이들을 상대로 로고 중심의 디자인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갭은 아무런 차이도 없는 기본 아이템을 너무 많이 만들고 있는데 이를 바꿔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미국 브랜드는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고 있지 않는 듯합니다. 갭의 경우 여전히 여성 청바지 종류만 적어도 11가지는 되니까요. (뉴욕타임즈)

갭과 H&M의 북미에서의 매출 추이, 2000-2014

대표적 패션 브랜드들의 전 세계 판매 추이, 2000-2014

원문보기

arendt

Recent Posts

[뉴페@스프] “나 땐 좋았어” 반복하는 트럼프, ‘경제’에 발목 잡히는 해리스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5 시간 ago

[뉴페@스프] “응원하는 야구팀보다 강한” 지지정당 대물림… 근데 ‘대전환’ 올 수 있다고?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2 일 ago

[뉴페@스프] ‘이건 내 목소리?’ 나도 모를 정도로 감쪽같이 속였는데… 역설적으로 따라온 부작용

* 비상 계엄령 선포와 내란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인해 한동안 쉬었던 스브스프리미엄에 쓴 해설 시차발행을…

4 일 ago

살해범 옹호가 “정의 구현”? ‘피 묻은 돈’을 진정 해결하려면…

우리나라 뉴스가 반헌법적인 계엄령을 선포해 내란죄 피의자가 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는 뉴스로 도배되는 사이 미국에서…

5 일 ago

미국도 네 번뿐이었는데 우리는? 잦은 탄핵이 좋은 건 아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투표가 오늘 진행됩니다. 첫 번째 투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집단으로 투표에…

1 주 ago

“부정 선거” 우기던 트럼프가 계엄령이라는 카드는 내쳤던 이유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해제 이후 미국 언론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태에 큰 관심을 보이고…

2 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