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는 그 소녀에게 촘스키 위계상에서 더 높은 차원에 있는 ‘구–구조 문법(phrase-structure grammar)’ 실험을 실시하기로 했다. 맞는 문법구조일 경우, 남성의 단음절이 몇 번 반복되든 그 다음에 따라오는 여성의 단음절 역시 같은 수로 반복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하우저와 촘스키, 피치의 2002년 논문은 구–구조 문법을 가리켜, 이러한 형태의 문법이 상당량의 기억 및 패턴인식을 요구하며 인간의 언어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반을 대표한다고 진술했다.
피치는 그 소녀에게 문법을 가르치기 위해 여러 번의 연습시행을 실시했다. 이후 그와 에버렛은 물러서서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게 된다면,” 피치는 말했다. “NSF에서 지원을 따낼 수 있을 겁니다. 굉장할걸요. 심리학적으로도 말이죠.”
심리학이라는 말에 — 환경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강조한 탓에 촘스키의 자연주의적 관점으로부터 배제당했던 분야 — 에버렛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서야 나처럼 보기 시작하는가 보죠!” 그는 말했다.
소녀는 화면을 응시했고,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HAL처럼 억양 없이 발음되는 단음절을 들었다. 피치는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소녀의 눈 움직임을 엿보며 문법을 이해했는지 아닌지 파악하려고 애썼다. 뭐라 단정짓기 어려웠다. 피치는 그 녹화 기록을 스코틀랜드로 들고 갈 테고, 박사후 연구원이 그걸 꼼꼼히 뜯어보면서 시간순으로 나열된 녹화 이미지를 피라한 사람들이 발음한 단음절의 사운드트랙과 동기화하여 ‘채점‘하면, 피험자의 눈이 원숭이 대가리의 움직임을 예측했는지 아니면 그냥 따라갔는지 일말의 의심 없이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었다. (지난 주 피치는 자료가 “전망있어 보인다”고 했으나, 검토 중인 출판 결과물에 대해 상세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날 저녁 에버렛은 피라한 족을 집으로 불러 함께 영화를 보았다. 피터 잭슨의 <킹콩> 리메이크작이었다. (에버렛은 부족 사람들이 괴수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고, 발전기의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서른 명 남짓의 피라한 사람들이 (침 뱉는 습관 때문에 에버렛이 피라한 족 전용으로 따로 막을 쳐 갈라 놓은) “인디오 방” 나무 바닥과 벤치에 둘러앉았다. 에버렛은 팝콘을 튀겨 큰 그릇에 담아 나눠 주었다. 그는 영화를 시작했고, 페이 레이를 연기하는 나오미 와츠가 어느 남태평양 섬의 부족민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장면까지 빨리감기를 했다. 피라한 족은 즐거움과 공포, 웃음, 놀라움으로 소리질렀다. 킹콩이 도착해 야자수를 후려치자 수라장이 벌어졌다. 화면 근처에 앉아 있던 어린애들은 펄쩍 뛰어 자기 엄마의 무릎으로 기어들었고 어른들은 화면에다 대고 웃고 고함을 질렀다.
촘스키의 보편문법이 피라한 족에게 적용되는지에 대해 피치의 실험이 답을 내지 못했다면, 피터 잭슨의 영화가 보여주는 헐리우드 영화문법의 보편성은 자명한 것이었다. 킹콩이 파충류와 싸우고 나오미 와츠가 거대한 곤충을 피하는 장면에서 피라한 족의 촌평이 이어졌다: 에버렛의 번역에 따르면, “킹콩이 쓰러진다!” “피곤한가 봐!” “여자가 달려간다!” “봐, 지네다!”
피라한 족은 고릴라와 소녀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고 진지한 시선을 통해 무엇이 오가는지에 대해서도 한치의 의심이 없었다. “여자는 그의 짝이다.” 한 피라한 사람은 말했다. 영화에 대한 부족 사람들의 반응에서, 에버렛은 그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발견했다. “그들은 거대한 유인원의 성격을 일반화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적했다. “화면에 나타나는 즉각적 움직임에 대해 그들이 (눈으로) 본 것에 대한 직접적 주장으로 반응합니다.”
마지막 이틀간의 실험에서 피치는 그 열여섯 살 난 소녀만큼의 결과를 보여주는 피험자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엿새 동안 정글에서 얻어낼 수 있었던 것에 만족했다. “댄의 주장은 그간 축적된 언어 연구에 근거를 더해주는 흥미롭고 타당한 접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포르토벨로로 돌아가 빌라 리카의 수영장에 앉았을 때 피치는 내게 털어놓았다. “언어만큼이나 복잡다단한 대상은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고, 에버렛이 주장하는 논의의 방향은 흥미로운데다 더 깊이 연구할 가치가 있어요. 그러나 피라한 족의 언어가 보편문법을 부정한다고요? 거기서 내가 직접 마주한 그 어떤 것이든, 문제를 대하는 에버렛의 프레임이 잘못됐다는 사실 외, 그 어떤 다른 가능성도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브라질에서의 마지막 밤 나는 어두침침한 호텔의 로비에서 커렌 에버렛을 만났다. 55세의 그녀는 나이를 잊은 듯, 검고 큰 눈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뒤로 잡아당겨 묶은 요정 같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언어학적인 훈련을 받았으나 피라한 족에 대한 본질적 관심은 선교에 있었다. S.I.L.의 교조에 따라, 그녀는 피라한 족을 적극적으로 개종하려 하지 않았다. S.I.L.이 보기엔 성경을 그들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커렌은 여전히 그녀가 피라한 어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아직 제대로 풀지 못했어요.” “맨 처음에 느꼈던 것처럼, 이십오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피라한 어 습득의 핵심은 부족의 노래에 있다고 커렌은 말한다: 피라한 족이 자모음을 한데 묶어 잘라버리고 오로지 높낮이와 강세, 리듬, 즉 언어학자들이 운율(prosody)라 부르는 것만으로 소통하는 방식이다. 나는 마을에서의 어느 저녁 누군가 올라갔다 떨어지는 음계로 청승맞은 곡조를 부르던 일을 상기했다. 그 목소리는 변주도 없이 같은 패턴을 거의 반 시간 가까이 거듭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피라한 오두막들 중 하나의 가장자리로 기어가 그가 여성임을, 실패에 목화솜을 감으며 약음기를 단 호른처럼 들리는 독특한 노랫가락을 뽑아내는 것을 확인했다. 발치에는 어린애가 놀고 있었다.
나중에 에버렛에게 물었을 때 그는 어떻게 부족민들이 ‘꿈을 노래하는지‘에 관한 애매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러나 커렌에게 이 장면을 설명했을 때, 그녀는 생기가 돌더니 그것이야말로 피라한 족이 아이들에게 말하기를 가르치는 방법이라고 알려줬다. 그 어린애는 끝도 없이 반복되는 운율을 배우며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혹자는 이것이야말로 일상 속 언어 습득에 관한 에드워드 사피어의 문화이론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피라한 어는 내가 아는 그 어떤 언어보다도 더 자주 운율을 사용해요,” 커렌은 내게 말햇다. “그건 쓰거나, 녹음하거나, 기억을 더듬는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직접 보고 느껴야만 해요. 누가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거에요. 그럼 보고 듣고 따라부르게 되죠. 그렇게 하기 시작하니까, 도저히 번역할 수도 없고 테이프로 들었을 땐 알아낼 수 없었던, 퍼포먼스의 일부였던 것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어요. 그 시점에서 스스로에게 말했어요. ‘테이프 레코더랑 공책은 그만 내려놓고 사람들에게 집중하자. 지켜보자.’ 피라한 어는 다른 언어에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분을 운율에 할애해요. 이런 건 내가 아는 한 그 어떤 언어에서도 기록된 적이 없어요.”
오랜 시간 동안 헷갈리게 만들었던 피라한 어의 특징을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고 커렌은 말했다. “그때 알았죠. 아! 이게 바로 주어–동사구나, 절의 일부와 시간을 나타내는 구와 목적어와 기타 다른 구들이 이렇게 보이는 거구나. 내게는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였어요. 동사구조를 창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완전한 돌파구라 부를 수 없겠지만요. 아직은 못 해요.”
에버렛이 2002년 아마존을 등지고 학계로 돌아가는 결정을 내리게끔 한 것은, 피라한 어에 대해 “완전히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의 좌절감이었다고 커렌은 얘기한다. “그는 성실했고 자기가 지닌 관점을 훈련에 반영하려고 애썼어요. 지난 해 우리가 마을에 함께 있을 때 지켜봤죠. 그는, 그러니까, “여기까지야. 그만해야겠어.” 라고 했어요. 그땐 내가 노래를 시작했을 무렵이었고 에버렛은 “망할, 이젠 노래까지 불러야 한다고!” 라며 떠나버렸죠. 고통스럽죠. 능력이 되는데도 해결할 수 없다면 괴로운 거죠. 나는 말했어요. “난 신경 안 써. 뭔가 놓치고 있잖아. 그럼 돌아가서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봐야지.”라고 했어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피라한 족은 늘 거기서 그렇게 모든 언어학자들을 좌절에 빠뜨리죠. 분절 수준에서 분석을 시작해 나아갈 수가 없거든요. 아무것도 못 찾을 거에요. 그들은 정말로 단음절 없이도 소통이 가능해요.”
그날 오후 에버렛이 포르토벨로의 공항으로 데려다 주는 동안 나는 커렌과의 대화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커렌은 엄청난 진전을 보여줬고, 지금 이 시점에선 그녀가 나보다 음악적 말하기(musical speech)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는 말했다. “피라한 어에 관한 실질적 지식에 있어, (그녀가) 나를 넘어서는 지점들이 여럿 있어요. 하지만 운율만이 전부가 아니에요. 그게 문제죠.” 피라한 어에 관한 커렌의 관점은 선교에 대한 열정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커렌은 우리가 그 언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을 겁니다. 신의 말씀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에버렛은 공항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커렌에 관한 얘기가 상당한 고통을 불러일으킨 게 분명해 보였다. 그는 그녀와의 말다툼 얘기로 대화를 끝맺고 싶어하지 않았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건 촘스키에 관한 것이라고, 에버렛은 내게 못박았다.
“대다수가 촘스키를 ‘정글을 헤치고 길을 이끄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피라한 마을에서 에버렛은 내게 말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한 한 가까이 촘스키 뒤에 바짝 붙어 가려 하죠. 또 다른 사람들은 말하죠. “됐다 됐어, 강으로 가서 내 카누나 꺼내련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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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정말 따라가기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었네요.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가 떠오르네요. 좋은 번역 감사합니다.
끝나면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끝났군요. 이제 1편부터 찬찬히 정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