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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스프] 중국이 ‘서구의 대안’? 아니라는 게 확실해지고 있다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싱가포르 난양공대의 이종혁 교수가 3월 27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엠마누엘 토드의 책 “제국의 몰락(Après L’empire)”은 2002년 출간될 당시에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직역하면 “제국, 그 이후”에 가깝지만, “제국의 몰락”이란 제목으로 번역됐습니다.) 당시 미국은 9.11 테러 이후 국내적으로 내부 결속을 한창 강화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에서는 힘의 논리를 더욱 노골적으로 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미국을 바라보는 세계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는데, 한국에서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반미 감정이 높아지던 시기였습니다. 도덕적, 정치적으로 신망을 잃어가는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그 당시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리더십을 잃어가는 미국을 대체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까지 들게 했습니다.

제가 중국 정치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의 일입니다. 국내외의 민주주의 제도는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습니다. 특히 필리핀이나 멕시코, 인도 등에서 나타난 미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상황을 목도한 뒤 서구식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롭고 안정된 정치 체제를 갈망하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는 물론 학계에도 있었습니다. 학계에서는 특히 “권위주의의 유연성”이라는 주제로 중국의 성공적인 권위주의 사례를 연구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권위주의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대중의 환심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대중이 자신들의 리더를 직접 뽑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상당히 많은 복지 혜택을 중국 인민에게 제공했습니다. 비결은 무엇일까요?

학자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이 우선 목표가 아니었지만, 중국 공산당 내에서 이익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그 부산물로 인민들이 부유해졌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또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도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할 인센티브를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한 이익을 누리는 것일 뿐 권위주의의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반대로 새로운 정치 체제에 대한 열망을 지닌 학자들은 서구식 민주주의 제도 없이도 정부가 신뢰받을 수 있는 조직이 되고, 그런 정치를 펼 수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서로 다른 정치 파벌들이 견제와 균형을 통해 경쟁하면 권위주의 정부도 대중의 의견에 반응하며 운영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고, 중국 지도자들의 개별 역량,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도덕 중심의 관료 양성 방식이 이른바 “유능한 권위주의” 국가 형태의 핵심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원인이 무엇이 됐든 중국의 발전은 동양의 부상뿐 아니라 미국을 위주로 하는 “서구식” 민주주의의 효용에 대한 폭넓은 질문과 의문으로 이어집니다.

 

중국과 서구에서 사뭇 다른 개념으로 쓰이는 ‘민주주의’

중국인들에게 민주주의는 절차적 측면보다도 결과적 측면, 즉 대중주의와 합쳐진 형태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마오쩌둥을 비롯한 많은 중국 지도자가 “경제적 자유 없이는 정치적 자유도 없다”는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을 기반으로 한 관점을 오랫동안 공유해 왔습니다. 즉, 경제 발전이 민주주의 강화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서구에서와는 다른 맥락으로 인정받는 셈입니다. 인민이 더 잘 살게 되면, 그게 곧 민주주의라는 인식은 덩샤오핑 이후 더욱더 확고해졌습니다.

반대로 소위 “서구식” 민주주의는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다른 국가들을 설득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중국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서구 국가들을 제외하면, 서구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뒤 성공적으로 발전한 민주주의 국가는 전 세계에 한국을 포함한 몇몇 동아시아 국가들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서구식 민주주의의 가치는 특히 최근 들어 미국의 거듭된 모순적인 행동으로 인해 점점 더 설득력을 잃고 있습니다. 21세기 들어 미국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지에서 독단적으로 전쟁을 벌였는데, 이 전쟁들로 인해 미국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하기보다 그저 자국의 패권을 지키는 데만 몰두하는 국가로 낙인찍혔습니다. 세계적으로 정치적, 경제적인 패권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지만, 미국 국민의 삶의 질이 과연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인민이 더 잘 살게 되는 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은 점점 심해지는 빈부 격차, 마약 문제, 총기 사고 등 미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곧 미국 모델의 실패를 가리키는 증거로 여깁니다.

전문 번역: 예언마다 적중시켰던 그 학자, 이제는 서구의 쇠퇴를 예상한다 – 역사학자 엠마누엘 토드

올해 프랑스 서가에서 꾸준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엠마누엘 토드의 새 책 “서구의 몰락(La Défaite de l’Occident)”을 소개한 칼럼에서 크리스토퍼 콜드웰은 가치를 중심으로 동맹을 구축해 온 미국이 가치를 잃어가며 쇠락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은 실제로 미국적인 가치를 다른 나라, 전 세계에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미국 언론은 종종 미국 국내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이념과 가치를 정답으로 상정한 다음 인권이나 성소수자 권리 등 미국에서 통하는 다양성 기준을 손쉽게 보편적인 가치로 삼아 다른 국가에 쉽게 씌우려 합니다. 나라마다 독특한 문화적 배경, 경제적 상황, 역사가 있는데 뭐든 일관적인 기준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려는 미국의 접근 방식은 자칫 국제 관계에서 매우 오만한 태도로 비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이 일방적으로 미국적인 가치를 보편적인 가치로 포장해 전파하려는 데 피로감을 느끼는 나라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세계화”라고 써놓고 실은 “미국화”에 지나지 않는 미국 주도 문화에 피로감을 느낀 많은 나라에서 대체재로 인정받습니다. 토드가 “제국의 몰락”에서 중국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지만, 많은 나라들이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로 이어진 중국의 개혁개방과 이데올로기적 유연성을 성공적인 “중국식 모델”로 치켜세우며 따라 하고자 했습니다. 심지어 2000년도 초반에는 북한이 중국식 모델을 채택할지가 화두가 되기도 했죠.

 

빛바랜 ‘중국식 모델’

토드가 패권국가 미국의 문제를 지적하고, 그에 따른 미국의 쇠락을 예측했다면, 저는 한때 미국의 대안으로 각광받던 중국이 최근 들어 다시 빛바래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려 합니다. 중국은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면서 국제적인 패러다임이나 대안적인 제도로서의 역할과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한때 민주주의 국가들보다도 더 많은 공공재를 제공하며 글로벌 무대에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기수 역할을 하던 나라가 이제는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노선을 확고히 택해 많은 사람을 절망에 빠트렸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중등 국가로 발전하기 위해 중국이 제시했던 많은 정치적, 경제적 패러다임이 시진핑 시대의 강압적인 정치, 경제적 위기 속에 자취를 감췄습니다.

시진핑은 관례를 깨고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권력의 정당성을 억지로 만들기 위해 덩샤오핑 이후 개혁개방 정신을 버리고 중국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길을 택했습니다. 한때 개방적이고 유연한 국제 관계, 평화적인 국제 질서 구축을 위해 노력하던 중국의 모습은 시진핑 시대 들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미국은 동맹국들을 다시 끌어모아 중국을 견제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말의 수위나 겉으로 보이는 행동은 달라 보일지 몰라도 중국을 견제하고 억제하려는 기조는 트럼프나 바이든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 외교 정책은 공격적으로 변했고, 국내적으로도 정권 장악과 반대 목소리는 물론 경쟁자도 허용하지 않는 강압적인 정치를 펴는 탓에 많은 외국 자본과 인력이 중국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중국식 모델”은 더는 관심을 끌지 못하는 구식 취급을 받습니다. 토드가 관찰한 서구의 문제점, 몰락을 예측하며 제시한 근거 가운데는 일리 있는 것이 있습니다. 다만 20년 전과 달리 몰락하는 서구의 대안으로 보편적인 가치를 담보하는 기수가 될 만한 국가로 중국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확실해지고 있는 최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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