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1월 8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바야흐로 ‘새해 결심의 계절’입니다. 수많은 결심이 서고, 저마다 일기장 또는 소셜미디어에 다짐을 적어 올리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가지 못해 창대하던 다짐들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곤 하죠. 이 글이 소개되는 8일 현재 여러분의 올해 새해 결심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나요? 작심 일주일에 그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새해 결심을 주제별로 나눠 본다면, 아마도 건강은 가장 많이 꼽히는 결심의 주제일 겁니다. 꾸준한 운동을 비롯해 건강한 생활 습관을 들이겠다는 다짐도 다양할 텐데, 건강한 습관 가운데는 건강한 식습관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술이나 기름진 음식처럼 특정한 음식을 줄이거나 끊겠다는 다짐도 있지만, 먹는 것 자체를 덜 먹고 살을 빼겠다는 다짐도 건강을 위해 빠지지 않는 단골 결심입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 소개된 40대 아재의 40kg 감량기도 결심의 시기 새해를 맞아 준비한 연재물일 겁니다. 연재 기사에 단 부제는 “[올해꼭!프로젝트] 다이어트 편”인데, 연재 첫 편에서 간헐적 단식을 비롯해 건강하게 먹는 습관을 들이고 실천한 것이 체중 감량의 결정적인 비결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건강과 체중의 관계에 관해선 어느 정도 상식으로 자리 잡은 명제들이 있습니다. “비만은 건강의 적신호”, “살을 빼는 게 건강에 좋다”, “살찌는 음식과 살찌는 생활 습관은 건강의 적” 같은 말이 그렇습니다. 대체로 과학적 근거를 갖춘 덕분에 상식과 공식으로 자리 잡은 주장입니다.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건 물론 중요하지만, 몸에서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너무 많이 먹어 체중이 불어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은 셈이니, 지극히 타당한 결론입니다.
다만 세상 모든 일이 과유불급이듯, 몸무게도 적정 수준이란 게 있습니다. 너무 많이 먹어 건강이 나빠질 정도로 비만이 되는 건 경계해야 하겠지만, 자칫 먹는 것 자체를 너무 부정적으로 그려 배고프고 허기질 때 음식을 찾는 생각이나 반응까지 ‘건강의 적’으로 몰아세우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최근 들어 소셜미디어에 “음식 소음”이란 말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철학자 케이트 만이 인간의 본능인 식욕마저 나쁜 것으로 매도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전문 번역: 끝없는 식탐이 아니라 그저 배고픔일 뿐이라면?
만 교수는 오랫동안 비만 공포증을 비판해 온 철학자입니다. 너도나도 살을 빼는 데 혈안이 돼 있으며, 지나치게 날씬한 몸매를 추앙하는 다이어트 문화가 자기 몸, 특히 여성의 몸을 부정하고 싫어하도록 사회적으로 인식의 굴레를 씌운다며 강력히 비판해 왔습니다. 그의 주장은 간명합니다. 소음(noise)은 피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인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말인데, 음식을 소음이란 단어와 엮은 건 인간의 본능인 식욕을 부정하고 억지로 제거하려는 잘못된 문화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겁니다. 과유불급의 전형이라는 거죠.
특히 지난해 오젬픽, 위고비 등 GLP-1 계열의 약이 비만 치료제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므로, 체중 감량에 집착하는 세태가 더 우려된다고 만 교수는 말합니다. 이 약을 먹으면 신기하게 음식은 물론 먹는 행위 자체가 전혀 생각나지 않아 오랫동안 수많은 다이어트를 시도하고도 실패했던 이들이 효과를 봤다는 증언이 잇따랐습니다. 원래는 살을 빼지 않으면 심한 경우 생명이 위험해지는 중증 당뇨병 환자 등에게만 처방할 수 있던 약인데, 입소문이 나면서 처방전 없이도 비싼 돈을 주고 기꺼이 살을 빼겠다는 사람들이 많아 품귀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만병통치약은 없다
GLP-1 계열의 약은 아직 장기적인 효과나 부작용이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의사가 처방한 경우에만 복용하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다이어트가 많은 사람의 숙원인 세상에서 이 정도로 소문이 난 비만 치료제에 사람들이 냉정하고 신중하게 접근하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그래도 과유불급은 체중과 몸매에도 당연히 적용되는 말이니, 지난해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에서 다뤘던 오젬픽의 시대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뉴욕타임스는 GLP-1 계열의 약을 먹은 사람 두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우리가 흔히 아는 성공 사례입니다. 과체중을 넘어 비만으로 몇십 년째 고생했으며, 식욕을 억제하는 여러 보조제는 물론이고, 처방 약까지 먹어봤지만 별 효과를 못 본 환자가 의사에게 오젬픽을 처방받아 복용한 뒤 몇 달 만에 체중을 20kg 가까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 여러 수치도 좋아졌고, 스스로 느끼기에도 몸이 가볍고 산뜻해지는 일석이조,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인터뷰이의 사례는 무척 암울합니다. 과체중과 비만의 경계선에 있던 이 사람은 살을 뺄 필요를 딱히 느끼지도 않다가 의사의 권유로 별생각 없이 오젬픽을 먹었는데, 식욕은 물론이고 삶 자체에 의욕이 너무 떨어져 고생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습니다. 살도 넉 달 동안 3kg 정도 빼는 데 그쳐 눈에 띄는 체중 감량 효과도 없었으며, 심지어 식욕이 너무 떨어져 끼니를 잘 못 챙기다 보니 영양 부족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과체중은 여전한데 필수 영양소가 부족한 모순적인 상황이 온 겁니다.
GLP-1 계열의 약에 관해 많은 사람의 복용 이력과 결과를 장기적으로 추적해 집계한 데이터가 아직 모이지 않은 상황입니다. 건강상 체중을 반드시 줄여야 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비만 치료제 목적으로 GLP-1 계열의 약을 먹는 건 신중히 결정해야 할 사안입니다.
균형 잡힌 새해 결심을 위하여
다시 새해 결심 이야기로 돌아와 보죠. 어떤 결심이 좋은 결심일까요? 쉽지 않은 목표를 세우고 과감히 도전하는 모습이 남들한테 멋져 보일 수는 있지만, 지키지 못할 결심, 흐지부지될 게 뻔한 결심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세우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과학이 제시하는 선 안에서 균형 잡힌 목표를 세워 도전하는 게 좋습니다. 비만은 건강에 좋지 않지만, 반대로 인간의 본능에 해당하는 식욕을 지나치게 억누르고 심지어 악마화하면서까지 다이어트에 몰두하는 건 선을 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오히려 건강을 해치기 일쑤이기도 하니, 더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내가 느끼는 바에 좀 더 집중해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체중 감량에 집착하다가 나타나는 흔한 부작용 가운데 하나가 무기력감입니다. 뭘 잘 안 먹다 보니 몸에 힘이 없고, 그러다 보면 세상만사가 귀찮아지는 거죠. 그럴 때는 체중계의 바늘을 향한 강박을 내려놓고, 내 몸의 에너지 레벨이 어떻게 변하는지 차분히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음식을 소음으로 규정하고 무조건 멀리하는 태도를 버리고, “음식 음악”에 맞춰 춤추는 법을 익혀야 할 겁니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는 개인이 각자 판단할 일이지만, 분명한 건 사람은 먹지 못하면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혹 이런 자명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까지 무리한 새해 결심을 세웠다면, 지금이라도 좀 여유를 갖고 지키기 쉬운, 지킬 만한, 지켰을 때 오히려 내게 도움이 되는 결심으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세운 결심을 내가 상황에 맞춰 조정하는데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하든 그 말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무리하다가 탈이 날 바엔 잘못된 결심을 지금이라도 바로잡는 게 더 현명한 선택입니다.
참고로 저는 결심을 못 지킨 적이 많지 않습니다. 결심 자체를 잘 안 하는 편이라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새해를 맞아 지키기 어렵지 않은 것들 위주로 몇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건강과 관련해선 우선 운동을 꾸준히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일주일에 몇 번 이상 같은 기준은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가 결심을 못 지킨 게 자명해지면, 그것도 스트레스니까요. 먹는 것과 관련해선 “배부르게 먹지 않기”를 목표로 세웠습니다. 맛있는 걸 먹는 건 좋아하는데, 너무 배부르게 먹고 나면 후회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포만감을 느끼기 전에 숟가락을 단호히 내려놓는 법을 몸에 익혀보려 합니다. 적어놓고 보니, 이 정도면 음식 음악에 맞춰 춤추는 균형 잡힌 결심이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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