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n Puchner (하버드대 영문학/비교문학 교수), Los Angeles Times
문헌학자인 빅토르 클렘페러(Victor Klemperer)는 나치 시대의 시작을 아주 미묘한 지점, 곧 언어의 변화에서 찾았습니다. 언어학적 뉘앙스를 살피는 것이 업이었던 그는 주변 독일인들이 쓰는 언어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죠. 새로운 단어와 슬로건, 표현들이 반드시 정치적인 것들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이 새로운 언어가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기 훨씬 전부터 민주주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고 클렘페러는 회상했습니다.
미국 의사당이 공격을 받은 뒤, 트럼프가 사태 직전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지에 많은 관심이 쏠렸습니다. “빼앗긴 선거 승리” 타령에, 지지자들에게는 “어처구니없는 선거 사기”를 저지른 이들에 맞서 “더 열심히 싸울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죠. 폭력 사태를 부추겼다고 평가받는 이 언어는 트럼프 본인 뿐 아니라 인터넷상의 특정 게시판과 채팅방들에서 나타난 더 큰 언어적 변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클렘페러의 연구는 이러한 변화가 우리 시대 민주주의를 어떻게 손상시키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클렘페러는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개신교로 개종했고, 스스로를 독일인으로 여기며 나치가 “아리안”으로 분류한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경험한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기록했습니다. 처음에는 교묘한 차별로 시작되었으나 곧 공원 벤치에도 앉지 못하게 됐고, 대학 교수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아내와도 강제로 헤어지게 되었죠.
클렘페러는 생업에서 쫓겨났지만, 학자로서의 지식과 스킬을 활용해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나치 정권의 핵심 거짓말, 그러니까 독일이 1차대전의 승리를 좌파 정치인들에게 도둑 맞았다는 이야기가 퍼지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음으로 돌격대(SA)와 같은 우익 단체들이 각자의 심볼과 슬로건, 새로운 머리글자 약어들을 사용하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클렘페러는 언어에 대한 나치의 공격이 훨씬 더 깊어지는 현상임을 깨닫습니다. 우선 “믿음”이라는 단어를 기독교로부터 교활하게 빌려왔음을 지적했죠. 나치는 이 단어에서 종교적인 색채를 지운다음, 각종 음모론과 “빼앗긴 승리”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나치는 자신들이 자행한 가장 폭력적인 행위를 남아공에서 빌려온 “컨센트레이션 캠프”와 같은 모호한 단어로 위장했습니다. 실제로 이 “캠프”는 “데스 캠프(death camp)”라 불려 마땅한 강제수용소였죠.
클렘페러는 훈련된 학자의 귀로 “거대한”, “위대한”, “웅장한”과 같은 최상급 표현들이 급부상한 사실도 발견합니다. 나치가 질문을 경멸한다는 뜻을 담아 느낌표를 남용하고 있다는 사실도요. 클렘페러는 이것을 “제 3제국의 언어”라고 불렀죠.
클렘페러가 지적한 시대상은 트럼프 시대를 상기시킵니다. “빼앗긴 선거” 타령에서부터 의사당을 공격한 이들이 사용한 슬로건과 로고(MAGA, 캠프 아우슈비츠), 백인우월주의 손동작, 최상급 표현과 느낌표를 남용하며 전체 대문자로 작성된 트럼프의 트윗까지 소름끼칠 정도로 유사하죠. 클렘페러의 분석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아도, 그의 연구는 언어가 가지는 무게를 상기시켜줍니다. 언어는 공정한 선거 결과와 같은 현실을 왜곡하고, 가치관을 바꾸고, 언론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얼마든지 가릴 수 있습니다.
클렘페러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독일에 남아 언어학적 분석을 이어나갔습니다. 많은 독일인들이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언어에는 여전히 나치가 남긴 흔적들이 남아있었죠. 여전히 “컨센트레이션 캠프(독일어 약자는 KZ)”라는 단어를 썼고, 최상급 표현들을 선호했습니다. 제 3제국의 언어를 만드는 데 수십 년이 걸렸던 것처럼, 이를 지우는데도 수십 년이 걸린 겁니다.
나치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길고 복잡했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연합국이 주축이 되어 나치의 이념을 지우는 각종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으며, 역사학자들의 연구와 교육이 이어졌죠. 나치의 언어적 광기를 잠재우는 일에도 노력이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히틀러의 찢어질 듯한 연설 목소리와 나치 시대의 공격적인 언어는 많은 이들에게 과거의 유물처럼 느껴지게 되었죠.
이러한 역사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1월 6일의 의사당 난동은 9.11 테러 이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난동에 참여한 이들과 사태를 선동하고 지원한 자들에게 재판을 통해 책임을 묻고, 역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까지 수반돼야 합니다.
동시에 민주주의의 언어를 되살리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최상급 대신 겸양의 표현을, 맹신 대신 증거를, 느낌표 대신 사려 깊은 질문을 중시하는 언어를 다시 살려야 합니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노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팀은 트위터의 @POTUS 계정을 물려받으면서 팔로워는 모두 잃게 된 것에 불만을 표했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단절된 산뜻한 출발, 그리고 보다 차분한 스타일의 대통령 트윗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죠. 소셜미디어는 종종 정치적 양극화의 주범으로 비난받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이들의 알고리듬이 냉철한 사고보다 과열된 논쟁을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수익이 발생하고, 이는 곧 언어에 대한 공격에 박차를 가합니다.
바이든은 취임 연설에서 보여준 것처럼 새로운 톤을 만들어가는데 적절한 기질을 지닌 인물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언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법원과 역사학자, 언론인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고 의사당 난동의 과열된 슬로건들이 되살아나서 바이든의 대통령 임기와 미국의 불안한 민주주의를 해치려 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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