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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안 하는 시대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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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니더치가 뉴욕 퀸즈에서 훗날 웨이트 워처스의 시초가 된 모임을 처음 열었던 1963년만 해도 지금보다 많은 것이 명확했습니다. 뚱뚱한 것은 나쁘다, 날씬한 것이 좋다, 뚱뚱한 사람은 누구나 살을 빼고 싶어 한다, 날씬한 사람은 뚱뚱해서 고통받는 이들이 살을 빼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다들 거리낌이 없었죠. 니더치의 회고록 <웨이트 워처스 일대기>에 그려진 이 시절은 담배 피우는 어린이를 담배 광고에 등장시켰을 정도였으니,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이긴 합니다.

딸기 케이크를 먹으면 피부에 불그스름한 반점이 생긴다면 당신은 그 케이크를 안 먹을 겁니다. 어쩌면 딸기 케이크에 알레르기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뚱뚱한 것과 불그스름한 반점 가운데 어떤 게 더 낫다고 생각하세요? 뚱뚱한 것이 당연히 더 추하죠. 찐 살은 없애기도 쉽지 않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야말로 문제투성이인 표현과 용어 선택이지만, 그때는 이렇게 정신이 번쩍 들도록 직설적으로 다그치는 것이 오히려 뚱뚱한 사람들을 돕는 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뚱뚱한 사람들은 도대체 내 주변에 나보다 날씬한 사람들은 따로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지 당연히 궁금해할 거라고들 생각했습니다. 진 니더치가 살을 빼기 시작한 건 30대 후반의 일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녀는 평생 자기 몸을 싫어하고 부끄러워했죠. 한번은 모르는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와 출산 예정일이 언제인지 묻기도 했습니다. 니더치는 분명 아이를 배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그녀는 한달음에 시립 비만 클리닉에 갔습니다. 클리닉을 나온 이후로도 꾸준히 클리닉에서 배운 대로 식단을 유지했습니다. 니더치는 아예 클리닉에서 받은 식단표를 여러 장 인쇄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살을 빼고 나니 정말 홀가분해지고 희망도 생기더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달했죠. (처음에는 엄격했던 식단표는 점차 민주적으로 변합니다. 즉, 처음에는 획일적으로 짜놓은 식단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면 갈수록 자유롭게 먹는 것을 선택한 뒤 건강한 음식을 알맞게 먹으면 점수를 얻고 그에 따라 보상을 받는 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특히 먹는 양은 제한하더라도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지고 어느 정도 자율성이 보장되면 사람들이 부담을 덜 느껴 다이어트를 그만두는 확률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회사의 당연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니더치는 이미 이 모든 것이 음식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비만을 문제로 여기고 손가락질하는 것 자체도 문제였죠. 뚱뚱한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건 다름 아닌 자기처럼 살찐 사람들이었습니다. 매일 뚱뚱한 몸으로 사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특히 밖에만 나가면 사람들이 얼마나 손가락질을 해대는지, 그래서 얼마나 괴로운지 비슷한 경험을 해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무엇보다 필요했던 것입니다.

몇 년 뒤 이런 생각을 더 구체적으로 개진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처방이 좀 달랐는데, 류 로더백이라는 뚱뚱한 사람은 1967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보낸 글에서 날씬함에 관한 예찬이든 살을 빼는 지혜든 오직 날씬한 사람에게만 적용하면 될 일이라며 당시 기준에서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폈습니다. 로더백은 뚱뚱한 사람들에게 날씬한 사람을 기준으로 정한 몸무게를 유지하라는 건 심신에 엄청난 부담과 고통을 주는 일로, 살을 빼는 건 기껏해야 몇 달 반짝하고 마는 일인데 그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훨씬 심각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아예 “뚱뚱한 권력”이라는 책을 썼는데, 훗날 뚱뚱함을 포용하자는 운동의 시초도 바로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뚱뚱함을 포용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뚱뚱한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식의 편견을 버리고 뚱뚱한 사람에게 의료상 차별을 가하거나 이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하지 않게 하는 것이 이 운동의 목표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뚱뚱함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되돌아보고, 몸매가 어떻든 간에 우리 몸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는 거죠.

이후 수십 년간 뚱뚱함에 대한 편견과 비뚤어진 시각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자는 책과 글, 운동이 수없이 나옵니다. 2008년, 생리학과 심리학, 운동 과학을 전공한 영양학자 린다 베이컨은 뚱뚱함을 포용하는 운동의 역사에 길이 남을 책 “왜, 살은 다시 찌는가?(Health at Every Size: The Surprising Truth About Your Weight)”를 펴냈습니다. 이 책은 몸무게와 건강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한데 모아 소개한 책으로, 베이컨은 뚱뚱한 환자를 꺼리고 몸무게에 관한 각종 편견에 휩싸인 의사들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강연과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베이컨은 의사의 편견이 환자를 치료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고, 살이 찌는 것에 대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사고하지 못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의사의 본문을 다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예를 들어 인슐린 저항이나 당뇨병, 각종 심장질환의 원인으로 흔히 비만이 지목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스트레스나 차별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으로 봐야 한다는 증거가 쌓이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가 문화의 흐름을 결정하는 시대가 오면서 뚱뚱함을 향한 편견을 버리자는 운동도 새로운 방식을 채택합니다. 뚱뚱함을 받아들이자, 나아가 자기 몸을 생긴 그대로 사랑하자고 주장하는 활동가들이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모습을 억지로 보정하지 않은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먹고 싶은 대로 먹는 법을 논의하고 팁을 공유하는 워크숍,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태도를 기르는 훈련 프로그램도 등장했습니다. 유명 블로거와 저자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왔습니다. “살을 빼겠다는 목표, 잠시라도 좋으니 몇 kg으로 살아보겠다는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당신의 수명이 조금 줄어도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으시다면 얼마나요?” 평범한 사람들도 과연 뚱뚱한 것이 그렇게 나쁜 것인지, 살이 찌면 건강에 그렇게 해롭고 미관상 정말로 그렇게 보기 싫은지 스스로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뚱뚱함을 포용하자는 운동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이 운동을 위키피디아에서 검색해보면, 이를 옹호하는 주장은 이를 비판하는 주장 두 가지가 소개되고 나서야 언급됩니다. 여전히 우리는 “최적의”라는 형용사가 “몸”이라는 명사를 자연스럽게 수식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자신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고성능 기계처럼 단련하려 합니다. 유기농 먹을거리를 파는 홀푸즈나 건강한 식단을 짜주는 소이렌트 같은 서비스에 열광하는 당신은 우리 몸이 뚱뚱해도 괜찮다는 주장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다시 말하면, 수십 년간 지속된 그 많은 운동에도 뚱뚱함이나 다이어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에는 여전히 불편함이 묻어 있습니다. 구성원 대다수가 특정 단어의 밑바탕에 깔린 개념이나 함의에 근본적으로 불편해하며 저항하지 않는 한 그 단어는 쉽게 바뀌거나 대체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뚱뚱한 사람들을 가리켜서 하는 말들을 한 번 생각해보면 여전히 얼마나 편견이 가득한 세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뚱뚱한 사람들을 향해 직설적으로 ‘fat’, 즉 뚱뚱하다고 표현했습니다. 너무 노골적이죠.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좀 더 정중하고 완곡한 ‘과체중(overweight)’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는데, 사실 이 단어는 표준이 되는 정상 체중이 존재한다고 가정해야 존재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실제로 그렇죠. ‘곡선미가 있는 혹은 글래머의(zaftig)’, ‘통통한(chubby)’, ‘포동포동한(pleasingly plump)’ 같은 표현은 더 완곡하며, 굴곡이 뚜렷한 몸매를 뜻하는 형용사 ‘curvy’에는 꽉 찬 사이즈가 성적으로 더 매력적이거나 무언가로 가득 차서 희망적임을 암시하는 의미가 포함됐습니다. 사실 이 단어는 원래 성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아무런 뉘앙스가 없는 단어입니다. 잠깐 다시 살이 쪘다는 표현으로 ‘back to fat’도 있죠. 이 표현 또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뚱뚱한 것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지 모른다는 뉘앙스를 띠면서도 여전히 암묵적으로 살이 찐 상태는 정상이 아니므로 얼른 살을 빼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가정 위에 서 있습니다. 웨이트 워처스는 사람들을 몸무게에 따라 분류해 각 집단을 어떻게 부르지 않습니다. 다만 웨이트 워처스의 수석 과학자 개리 포스터는 살이 찐 사람을 “과체중인 사람”이라고 지칭하기는 했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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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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