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소파에 강아지와 함께 편안히 앉아 있는 당신의 모습을 떠올려 봅시다. 한순간 강아지가 김이 오르는 국수 그릇으로 변합니다. 이상한가요? 이번엔 소파, 그다음엔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한순간 눈앞에서 변해버린다면 어떨까요. 이번에는 당신이 군중 속에 있고, 주변의 모든 이들이 똑같은 일을 똑같은 순간에 겪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말도 안 되는 것 같나요? 기괴한가요? 1895년 파리에서 정확히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단체로 신경장애라도 일으킨 걸까요, 독을 마신 걸까요, 마술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물론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지만요. 영화란 그 대부분이 “샷”이라 불리는 연속적 동작의 짧은 조각들과, “컷”으로 불리는 그 조각들의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컷이란 결국,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을 한순간에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바꿔버리지요. 이는 지난 3억 5천만 년 동안 인간의 시각 시스템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입니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제작한 <라 시오타 역에 도착하는 기차>를 보던 관객들이 혼비백산해 달아났다는 일화는, 당시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느꼈던 깊이와 움직임에 대한 생생한 인상을 잘 묘사해 줍니다. (2004년 마틴 르와페르딩어의 보고에 따르면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최초의 영화광들은 “컷”의 존재에 대해선 별반 의식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냥 본다면 뚝뚝 끊어지는 상(像)들의 나열이 영화라는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다니, 어찌 된 일일까요?
초기의 영화에서는 카메라를 멈추고 새로운 장면을 구성한 후 다시 찍는 방식으로 컷을 구성했습니다. 제작자들은 곧 촬영된 필름을 잘라 붙임으로써 여러 샷을 골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환상적 효과나 한 장소에 다 들어가지 않는 장면 등을 찍을 때 이러한 방식을 응용했습니다. 심리학자 제임스 커팅과 아이즈 캔단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초기엔 평균 10초 정도 길이로 길고 짧은 샷이 반복되다 1927년에 가서는 그 길이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유성 영화가 도입되면서 다시 샷은 평균 16초 정도로 길어졌습니다. 오늘날 샷의 길이는 무성영화 시대보다 짧을뿐더러 액션 영화의 경우 컷의 길이가 몇 초에 불과하기도 합니다.
커팅과 캔단은 샷의 길이가 변화하는 과정이 생물학적 진화와 비슷한 게 아닌가 추측합니다. 처음엔 제작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길이의 샷이 쓰였으나, 영화표 판매량이 자연선택 기제처럼 작용하여, 짧은 샷을 도입한 영화의 표를 구매하는 관객이 늘어날수록 짧은 샷을 활용한 영화 역시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관객들은 달라진 영화 기법에 익숙해진 듯합니다. 역사적 기록이나 최근의 보고서엔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맨 처음 영화가 수정되던 시절로 돌아가 아무런 경험이 없는 관객의 반응을 관찰한다면 어떨까요?
가능하긴 합니다. 아직 TV라는 걸 접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꽤 많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독일 튀빙겐 지식미디어 센터의 심리학자 슈테판 슈완과 런던 대학 버크벡의 심리학자 세르민 일디라르는 처음 “컷” 영상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연구했습니다. 연구자들은 터키 산속의 고립된 마을로 노트북 컴퓨터를 가져가, 마을을 배경으로 동네 주민들이 등장하는 일상을 담은 짧은 영화를 촬영한 후, 마을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무엇을 보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머리가 폭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영화 속 컷의 모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습니다. 서로 다른 장면에서 뽑아낸 샷이 어떻게 한데 엮일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컷을 감상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우리의 시각 시스템은 몇백몇천만 년 동안 진화해 왔으나, 영상을 수정하는 기법이 발달한 지는 100년이 조금 넘었을 뿐입니다. 한 가지 설명은, 우리의 시각 경험이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격투 장면처럼 뚝뚝 끊어진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시지각은 생각보다 단속적(斷續的)입니다. 먼저, 우리는 종종 눈을 깜박입니다. 몇 초마다 눈을 깜박이면 그때마다 우리는 장님이 되지요. 그다음으로, 눈을 움직입니다. 컴퓨터 화면이나 텔레비전을 볼 때 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가까이서 찍어보면, 눈알이 매초 두세 번씩 휙휙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움직임을 사카드(saccades)라 일컫습니다. 눈이 움직일 때 우리 뇌로 보내지는 정보는 일종의 쓰레기로서, 뇌에서 자연스레 걸러지게 됩니다. 눈 깜박임과 사카드 사이의 짧은 시간 동안 만큼은 장님이나 다름없는 셈입니다.
심지어 눈을 뜨고 있을 때조차, 시지각은 실제의 세상보다 더 적은 양의 풍경을 받아들입니다. 일 초에 몇 번씩 눈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눈에서 해상도가 가장 높은 부분은 시야의 한가운데 있는 작은 영역, 즉 중심와(fovea)에 국한되기 때문입니다. 팔을 쭉 뻗어 두 엄지손가락을 코앞에 모으면, 두 엄지손가락의 너비는 중심와에 들어오는 만큼을 간신히 가립니다. 엄지손가락을 응시하면 또렷한 윤곽이 잘 보일 겁니다. 이제 엄지손가락 너머를 보려고 하면, 다른 사물들은 상당히 흐릿해 보이겠지요.
그런고로, 우리 뇌에 비치는 시각적 풍경은 매끄럽게 이어지는 카메라 워크라기보단 차라리 조각난 이미지를 한데 이어붙여 만든 뮤직비디오에 더 가깝습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세상이 연속적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시각 시스템이 전달하는 것은 조각난 일련의 그림들입니다.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뇌는 많은 일을 하며, 그 결과 지각 및 기억에 흥미로운 오류가 발생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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