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ON] 영화를 볼 때 우리 뇌가 폭발하지 않는 이유 (2)
2015년 7월 3일  |  By:   |  과학, 문화  |  No Comment

1편 보기

한 가지 현상은 변화맹(change blindness)입니다. 1997년 인지심리학자인 다니엘 레빈과 다니엘 시먼스, 그리고 코넬 대학의 대학원생들은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풍경이 담긴 짧은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실제로는 컷마다 접시의 색이 달라지거나 스카프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접시 위의 음식들이 바뀌었지만, 관찰자들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를 떠올려 봅시다. 도로시가 오즈에 도착했을 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집과 그 아래 삐죽 튀어나온 마녀의 다리, 그리고 흥분에 찬 도로시의 모습입니다. 배경의 꽃이나 사탕이 몇 개나 되는지 세어 보거나, 얼마나 많은 먼치킨이 등장하는지 정확히 기억하나요? 그렇진 않을 겁니다. 우리의 시각 시스템은 눈앞의 활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만을 골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진화적으로 훌륭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만일 눈앞에 보이는 풍경과 기억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틀린 쪽은 기억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뇌는 세상을 연속적으로 지각하기 위해 눈에 들어온 장면들을 이어붙이고, 마찬가지로 눈 깜박임이나 사카드가 일어나는 순간은 잘라내 버립니다.

그러나 눈앞의 풍경을 바로 직전의 풍경과 이어붙이는 게 좋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가령 카페에 앉아 친구와 대화를 할 땐 이야기의 흐름과 상대의 표정, 주변의 풍경을 하나로 통합해야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값을 내고 나갈 땐 이전 장면의 흐름을 버리고 사람들과 자동차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춰야 하죠. 이처럼 큰 빈틈이 벌어지는 상황이라면, 시각 시스템도 덜 연속적으로 작동하지 않을까요?

이와 같은 생각에 착안하여, 필자와 필자의 동료인 노던 일리노이대학교의 심리학자 조셉 마글리아노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웠습니다. 말하자면 영화 속 컷 안에 존재하는 여러 샷 사이의 빈틈에 유난히 반응하여 정보를 하나로 꿰맞추는 시각 시스템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사건이 발생할 때라면, 빈틈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오히려 해당 영역은 상대적으로 덜 활발하게 반응할 것입니다.

그럼 그 영역은 우리 뇌의 시각 시스템 중 어디에 위치할까요? 시신경으로 들어온 정보를 제일 먼저 처리하는 부위는 일차 시각피질로, 이 단계에서 시각 정보의 해상도는 대단히 높지만 거의 날것에 가까운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시각 정보는 색이나 움직임, 형태 등에 특화된 다른 부위로 넘어갑니다. 가장 고차원적인 영역은 특화된 정보들을 한데 통합해 인식하는 부위로서, 우리는 이 부위와 초기 시각피질을 잇는 연결망이 가설에 들어맞는 부위라고 추측했습니다.

우리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장치(functional fMRI)를 이용하여 이 발상을 실험으로 옮겼습니다. 이 장치를 쓰면 밀리미터 단위로 나누어진 공간에서 뇌가 활성화되는 양상을 몇 초 단위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실험 참여자들은 장치 안에서 <빨간 풍선(1956)>을 보았습니다. 이후 우리는 영화 속 약 211개에 달하는 컷을 상황이 전환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누어, 각각 참여자들의 뇌 부위가 얼마나, 어떻게 활성화되었는지 확인했습니다.

가장 활발하게 반응한 뇌 부위는 생각했던 대로 초기 시각피질이었습니다. 컷마다 끊임없이 바뀌는 장면에 반응해야 하니까요. 한편, 컷 자체의 변화에 주목할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영역은 중간 단계의 시각영역으로서 한 장면 안에서의 여러 컷에는 반응했으나 한 컷 안에서 장면이 바뀔 때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 영역은 컷과 컷 사이의 시각적 불연속성을 연결해 주는 작업을 담당하고 있으리라 추측됩니다.

그러니 영화처럼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접할 때 우리 뇌가 “터져버리지” 않는 이유는, 그런 자극에 익숙해져서라기보다는 우리 뇌가 그러한 자극도 처리할 수 있도록 생물학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영화들은 정말로 머릿속을 헝클어놓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가 발명된 이래, 제작자들은 일반적으로는 흔히 접하기 어려운 영상으로 관객을 자극하려 했습니다. 가령 <카메라를 든 남자(1929)>에서 감독인 지가 베르토프는 카메라 플래시처럼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하게 번쩍이는 프레임 샷을 영화에 삽입했습니다. 그 정도 수준의 번쩍임은 우리 뇌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때로 간질 발작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카메라의 움직임이 극단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귀 안쪽의 속도감지 기관과 움직임 자극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래비티(2013)>나 <블레어 위치(1999)>, <클로버필드(2008)>처럼 카메라가 자주 돌아가는 경우 메슥거릴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예는 왜 여러 샷과 컷의 모음으로 이루어진 영화가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느껴지는지 잘 보여줍니다. 영화에 사용된 기법이 시각 시스템의 기능적 진화에 들어맞기에, 그 결과물 역시 자연스럽게 시각 시스템의 저변에 녹아 들어가는 것이죠. 영화 제작자들은 분명 통찰력이 뛰어난 지각심리학자들이리라 나는 생각합니다. 감독이 일부러 관객을 자극할 요량이 아니라면, 영화 속 장면이 변해가는 흐름을 거의 느끼지 못하니까요. 나와 같은 지각심리학자의 눈에는 영화 제작자들이 보여준 통찰이야말로 어떻게 인간의 지각과 기억이 작동하는지 알려주는 금광이나 다름없습니다. (AEON)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