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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힐러리는 왜 ‘클린턴’이 아니라 ‘힐러리’인가

힐러리 클린턴이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후, 여러 매체에서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대다수 매체가 그녀를 “힐러리”로 칭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유명한 사람이니 “힐러리”라고 해도 모를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 호칭이 괜찮은 것일까요?

“클린턴”이라는 성이 그 어떤 경쟁자의 성보다 유명하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녀는 상원의원과 국무부 장관을 지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팝스타 “비욘세”와 같은 느낌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왔습니다. 비슷한 경력의 소유자가 남성이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유타대학교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2008년 당시 힐러리 클린턴이 성 아닌 이름으로 거론된 횟수는 경쟁자 버락 오바마에 비해 네 배 많았습니다. 이번에도 상황은 비슷해 보입니다. “랜드”와 “마르코”가 출마 선언을 했을 때, 이를 다룬 기사에는 모두 그들의 성이 들어갔습니다.

언론이 이들을 정중하게 성으로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진 자리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니까요. 대통령직에는 그에 걸맞은 수준의 예의와 존중이 있어야 합니다. 군대에서도 서로를 성으로 부르며 존중의 뜻을 표하는데, 군 최고 통수권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을 모두가 옆집 친구 부르듯 부르는 장면은 좀 이상합니다.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요? 미국 대중이 두 사람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바보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부시 집안도 마찬가지 일텐데,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아버지와 구분하기 위해 W라고 부른 매체는 없었습니다. 두 번째로 대통령이 된 아들 부시는 언제나 그냥 “부시”였죠.

힐러리 클린턴 측에서는 오히려 이를 문제 삼지 않는 듯합니다. 공식 웹사이트에서도 “힐러리의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힐러리의 이야기”와 같은 문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상의 공식 해시태그도 #Hillary2016입니다. 아마도 클린턴과 참모진은 이름을 사용하는 편이 유권자들에게 친근감을 줄 거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다가서기 편한 이미지를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했겠죠. 그러나 대통령은 친근함을 느끼기에 앞서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클린턴이 어떻게 생각했든 간에, 클린턴을 힐러리라 부르는 것은 그녀가 여성임을 부각시킬 뿐 아니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킬 것입니다. 일터에서 여성이 자신의 일을 해내면서도 호감을 사려면, 친근하고 다가서기 편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바로 그 고정관념이죠. 클린턴이 자신을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도록 허락해준 만만하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표를 얻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또는 여자라서 대통령으로 뽑아주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사람을 뽑아놓고 보니 여성이었기를 바랍니다.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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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린턴이라고 해도 당연히 남편하고 구별이야 되겠지만, 클린턴의 아내로서가 아닌 독립적인 이미지를 얻고자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혼한 것도 아니니 결혼 전 성을 쓰기도 좀 그렇고...

  • 애초에 남성의 성을 따르는 문화 혹은 상황에서 이런 분석은 반쪽짜리가 될 수 밖에 없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클린턴으로 불렀으면 어쩔 수 없이 클린턴 부인이라는 이미지가 된다는 게... 하여튼 선뜻 동의하기엔 CNN이 약간 성급하지 않은가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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