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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짐머 칼럼] 우리는 왜 혈액형을 가지고 있을까요? (3/3)

어쩌면 우리가 가진 혈액형이라는 특징은 2천만 년 전의, 유인원과 인류의 공통조상보다 더 오래전에 생겨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것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과학자들은 아직 모든 유인원의 유전자를 분석하지 못했고, 이는 우리가 이 혈액형 유전자가 다른 종에 얼마나 퍼져있는지 아직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으로도 혈액형의 역사는 대단히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화의 계통도를 보면 우리는 어떤 혈액형들이 단종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에게는 A형과 O형 두 가지 혈액형만 있습니다. 또 다른 친척인 고릴라에게는 B형만 있습니다. 돌연변이가 ABO 유전자를 변형시켜 A형이었던 종을 B형으로 바꾼 예도 있습니다. 심지어 인간의 진화 중에도 ABO 유전자가 2층을 올리지 못하게 만드는 돌연변이가 여러 번 발생했습니다. 이 돌연변이는 A형이나 B형을 O형으로 바꿉니다. “A형이나 B형이 O형으로 바뀌게 되는 수백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즉, 내가 A형인 것은 피터 다다모의 주장처럼 나의 조상이 농경 생활을 해서가 아닙니다. 혈액형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조상들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이 혈액형 유전자가 수백만 년 동안 유지되었다는 것은 혈액형이 어떤 생물학적 이득을 가져다주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적혈구 표면에 그 복잡한 구조물을 만들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직 과학자들은 ABO 유전자가 어떤 이득을 주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ABO 유전자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가설은 많지만요.” 툴루즈 대학의 앙트완 블랜처의 말입니다.

우리가 혈액형이 우리에게 주는 이점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알려주는 사건이 1952년 뭄바이에서 있었습니다. 뭄바이의 의사들은 한 무리의 환자들이 ABO 혈액 분류로는 분류할 수 없는 새로운 혈액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들은 A형도, B형도, AB형도, 그렇다고 O형도 아니었습니다. A형과 B형이 적혈구 표면에 2층 구조를 가지고 있고 O형이 단층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이들은 적혈구 표면에 아무런 구조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뭄바이에서 발견되어 ‘뭄바이 표현형’으로 명명된 이들은 이후 매우 드물게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들이 이 특별한 혈액형으로 인해 건강상 어떤 문제를 겪는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가진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수혈을 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같은 뭄바이 표현형을 가진 이들에게서만 피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O형의 피를 받아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뭄바이 표현형은 ABO 혈액형이 어떤 분명한 건강상의 이점을 주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말해줍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혈액형이 가진 다양성이 곧 혈액형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즉 혈액형에 따라 서로 다른 질병에 강한 저항력을 가질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20세기 중반부터 의사들은 혈액형에 따라 더 잘 걸리는 병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록은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파멜라 그린웰은 말합니다. “혈액형과 감염, 암, 그리고 다양한 질병들의 관계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린웰은 A형은 췌장암이나 백혈병과 같은 몇 가지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말합니다. 또 천연두, 심장병, 말라리아에도 약합니다. O형은 궤양에 걸릴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고 아킬레스건이 파열되기 쉽습니다.

이렇게 혈액형과 질병이 관련이 있는 이유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토론토 대학의 케빈 캐인은 왜 O형의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덜 걸리는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O형이 가진 면역 세포들이 말라리아의 원인인 감염된 적혈구를 더 잘 식별할지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혈액형과 병의 관계가 까다로운 이유는 혈액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질병들도 혈액형과 어떤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크루즈 여행과 같은 상황에서 승객 수백 명에게 단체로 격심한 구토와 설사를 일으키는 노로바이러스가 그런 예입니다. 노로바이러스는 내장의 표면으로 침투하며 적혈구와는 접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혈액형과 특정 노로바이러스 질병에 걸릴 위험은 서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문제는 혈액형 항원을 만들어내는 세포가 혈액 세포만이 아니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을지 모릅니다. 혈관벽의 세포, 기도 세포, 피부 및 머리카락에서도 혈액형 항원을 만들어냅니다. 사람에 따라 타액에서 혈액형 항원을 만드는 예도 있습니다. 노로바이러스는 내장 세포에 의해 만들어지는 혈액형 항원에 작용함으로써 여러 가지 증상을 일으킵니다.

이 혈액형의 다양성이 곧 수백만 년의 진화를 거치며 우리가 이런 몇 종류의 혈액형을 유지한 이유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유인원 조상들은 바이러스, 박테리아 그리고 다른 셀 수 없이 많은 병원균과 싸워야 했습니다. 어떤 병원균은 특정한 혈액형 항원에 적응했을 것입니다. 병원균으로서는 가장 흔한 혈액형에 최적화되는 것이 가장 많은 숙주를 찾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숙주들이 감염으로 사망하면 자연스럽게 희귀한 혈액형을 가진 이들이 더 번성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나는 내가 A형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던 그때처럼 여전히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보다 내 생각은 더 깊어졌으며 나는 이런 생각을 통해 즐거움을 느낍니다. 어쩌면 혈액형은 단순히 피의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는 점을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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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it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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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무리 잘보았습니다. 저는 글보며 임신쪽에서 생각해봤어요. 입덧이 면역거부반응의 하나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와 엄마의 거부 반응이 유산을 일으킬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요. 아기집 속에서 아기와 엄마의 혈액이 어떻게 순환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탯줄에 음식물이 타고 오지는 않겠지요. 그렇다면 분명히 혈액형은 배 밖으로 나온 뒤 스스로 면역력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결정되어야 하겠지요? 그 과정에 실수가 있다면 아기는 유산이 되겠지요. 우리 몸의 면역에 대한 중추가 흉선이라면 분명히 아기가 태어난 뒤 흉선이 제기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아기의 혈액에 변화를 일으키는 신호를 내보낼지도 모른다는 근거없는 소설을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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