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을 뉴스페퍼민트에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깊은 감명을 받았기에, 독자들께도 지적인 즐거움을 드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본래는 한 편의 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분량이 상당하여 몇 부분으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이 기사는 2007년 뉴요커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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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의 어느 아침 브라질 북서쪽의 열대우림, 미국인 언어학 교수인 댄 에버렛과 나는 세스나 수상비행기의 수상착륙용 발(pontoon)에서 빠져나와 아마존 강의 좁게 굽이쳐 흐르는 지류인 마이시 강변에 내려섰다. 위쪽의 강둑엔 삼십 명 남짓의 사람들이 있었다. 키가 작고 검은 살갗을 지닌 남자, 여자, 아이들이었다. 몇몇은 활과 화살을 쥐고 있었으며 다른 이들은 갓난애를 엉덩이에 둘렀다. 피라한(Pirahã)이라 불리는 수렵-채집 민족의 일원인 이들은 선대의 전도목사처럼 우렁찬 목소리에 붉은 수염을 지닌, 단단한 체구의 55세 남자인 에버렛 교수를 향해 이국적인 새들이 한데 지저귀듯, 익숙하지 않은 이가 들으면 사람의 말소리로 식별하기 어려울 법한 음악적인 지껄임으로 응답했다.
현존하는 그 어떤 언어와도 관계가 없으며, 오직 여덟 개의 자음과 세 개의 모음으로 이루어진 피라한 어는 알려진 이래 가장 단순한 말소리 체계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피라한 어는 일련의 어조와 강세 및, 발화자들이 자모음을 생략하고 흥얼거리거나 휘파람으로 대화할 수 있을 정도의 음절 길이를 지니고 있다. 배우는 이들에겐 너무나 복잡한 언어인 탓에, 에버렛과 그의 아내인 커렌이 1970년대에 선교사로서 도착하기 전까진 그 누구도 피라한 어를 마스터하지 못했다. 에버렛은 마침내 기독교 신앙을 버렸지만, 그와 커렌은 지난 삼십 년 동안 부족과 함께 지내는 짬짬이, 다른 서구인들은 배우지 못한 피라한 어를 배워 왔다.
“Xaói hi gáísai xigíaihiabisaoaxái ti xabiíhai hiatíihi xigío hoíhi,” 에버렛은 뚝뚝 끊어지는 스타카토의 말투로 나를 마을에 “잠시 동안 머물” 사람으로 소개했다. 남자와 여자들은 입을 모아 합창으로 대답했다: “Xaói hi goó kaisigíaihí xapagáiso.”
에버렛이 몸을 돌렸다. “‘꼬부라진 머리’로는 뭐라 불리는지 알고 싶어 하는군요.”
“꼬부라진 머리”란 피라한 어가 아닌 모든 언어를 가리키는, 명백히 조롱조인 부족의 언어다. 피라한 인들은 자기네 것이 아니라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진 인간의 담화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열등하다 여기며, 아마존 부족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단일언어 화자로 남아 있다. 그들은 즐겁게 내 이름을 주고받으며, 되풀이할 때마다 약간씩 그 형태를 달리하더니 마침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음절로 바꿔놓았다. 그들은 내 이름을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으나, 대신 명랑하게 들리는 피라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Kaaxáoi. 그것은 강 아래쪽 마을에서 온, 나와 닮았다고 여겨진 피라한 남자의 것이었다. “이 부족에 관한 내 논문의 중심 주제와 완전히 일치하는 행동입니다.” 에버렛은 나중에 덧붙였다. “그들은 바깥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거부합니다. 그냥 원치 않아요. 천칠백년대 들어 브라질인들이 정글에서 그들을 찾아낼 때부터 그랬어요.”
지난 가을 일리노이 주립대의 문화, 문학 및 언어학과의 학과장으로 선출된 에버렛은 지난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피라한(피-다-한이라 발음한다) 어에 관한 논문과 학술서를 집필해 왔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2005년 초까지 상대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 전해 가을 문화인류학 저널에 실린 <피라한 족의 인지 및 문법에 관한 문화적 제약(Cultural Constraints on Grammar and Cognition in Pirahã)>이란 이름의 논문을 그의 웹사이트에 올릴 때까지는 말이다. 해당 논문은 피라한 족의 문화 및 삶의 조건이 지닌 극단적 단순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피라한 어엔 숫자도, 고정된 색채어도, 완벽한 시제도 없으며, 오래된 기억이나 예술 및 회화의 전통도 없다고 에버렛은 쓰고 있었다. ‘모든’ ‘각각’ ‘전부’ ‘대부분’ 혹은 ‘약간’에 해당하는 단어, 즉 몇몇 인류학자들이 인간의 인지능력을 구성하는 보편적 요소들 중 하나라 믿는 정량적 단어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가장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던 주장은, 피라한 어에서는 회귀성(recursion, 본문에서는 맥락에 따라 귀환성이나 재귀 용법, 재귀 구조 등으로 달리 옮겼다- 역자 주)의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화자가 둘로 나뉘어진 생각(“남자가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남자는 모자를 쓰고 있다”)을 한 문장(“모자를 쓴 남자가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에 담고자 할 때처럼, 하나의 구를 다른 구의 안에 삽입하는 언어적 조작을 일컫는 말이다. 영향력 있는 언어학 이론가인 촘스키는 최근 그의 보편문법이론을 검토하며 언어의 회귀성은 모든 언어의 시금석으로서, 인간의 독특한 인지적 능력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고 주장했다.
하버드의 인지과학자인 스티븐 핑커는 에버렛의 논문을 들어 “파티에 폭탄을 던진 격”이라 평한다. 지난 몇 달 동안 그의 논문은 사회과학 블로그와 리스트서브(Listserv) 상에서 일어난 격렬한 논쟁의 중심이었다. 한때 촘스키 언어학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에버렛은, 피라한 어는 보편문법이론에 맞서는 “심각한 반례”일 뿐 아니라 유일한 반례 역시 아니라는 주장을 펼친다. “다른 그룹의 언어에서 이런 사례를 찾지 못한 이유들 중 하나는,” 에버렛은 말했다. “그저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피라한 족이 지닌 문화적 원시성과, 눈에 띄게 이례적인 그들의 언어에 대한 에버렛의 묘사에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 “그냥 보르헤스 식의 몽상가인지, 아니면 현지인에게 속아넘어간 마가렛 미드인지, 나는 도대체 모르겠군요.” 한 독자는 유명한 언어학 블로그의 편집자에게 그런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마을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을 즈음해서도, 나 역시 피라한 족에 대한 에버렛의 묘사에 의심을 가졌다. 우리가 아직 짐을 풀고 있을 때, 열한 살쯤 먹은 피라한 족의 소년이 강가 나무들 사이에서 달려나왔다. 소년은 씨익 웃으며 놀랍도록 정교하게 만든, 우리가 타고 있다 방금 내린 수상비행기 모형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발사목을 조각해 만든 그 모형은 4피트 길이에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동체와 날개, 수상착륙용 발을 지녔고 그에 못지않게 프로펠러엔 작은 와이어까지 달려 있어 손가락으로 날을 돌릴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에버렛에게, 피라한 족이 예술작품을 만들지 못한다는 주장을 이 모형이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에버렛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비행기가 도착할 때마다 매번 만들어요,” 라고 그는 답했다. “비행기가 없어지면 더이상 그 모형을 갖고 있지 않아요. 연쇄반응 같은 거라서 누군가 또 만들겠지만 결국엔 그칠걸요.” 과연, 나중에 나는 강가 잡초들 사이에서 부서지고 더러워진 비행기 모형을 보았다. 내가 마을에서 보낸 다음 6일 동안 그 누구도 또다른 비행기 모형을 만들지 않았다.
그의 논문이 마주한 논란의 파장에서, 에버렛은 아마존으로 함께 떠나 직접 피라한 족을 관찰할 것을 학자들에게 권유했다. 그 제의를 수락한 첫번째 사람은 테쿰세 피치라는 마흔셋의 미국인 진화생물학자로, 2002년 촘스키와 하버드의 생물학자이자 진화심리학자인 마크 하우저와 함께 언어의 회귀성에 관한 중요한 논문을 공동으로 집필했다. 피치와 그의 사촌이자 파리 출신 소믈리에인 빌은, 에버렛과 내가 도착하고 나서 두어 시간 후에 수상비행기를 타고 피라한 마을에 내리기로 되어 있었다. 비행기가 물 위에 착륙하자 강가에 모여 있던 피라한 족은 환호했다.
두 사람은 조종석에서 빠져나왔다. 피치는 (피라한 족에게 실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일주일 분량의 언어학 실험 프로그램이 담긴 노트북을 끼고 있었다. 그들은 곧 호기심에 찬 부족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함께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한 덕분에 피치와 그의 사촌은 낯선 이들과 즉각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들은 손을 둥글게 오므려 입에 갖다댄 뒤 앞뒤로 움직이며 되강오리 소리를 흉내냈다. 피라한 족은 굳은 얼굴로 쳐다보기만 했다. 빌이 한 손의 손가락을 맞은편 손바닥에 부딪쳐 꺾으며 뚜두둑 소리를 냈다.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두 남자는 민망한 듯 어깨를 으쓱하곤 노력을 그만두었다.
“우스꽝스런 몇 가지 행동으로 사람들을 정말 쉽게 낚을 수 있거든요.” 피치는 나중에 말했다. “하지만 딱히 소용이 없더군요. 피라한 아이들이나 부모들이나.” 에버렛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건 그들의 문화가 아니라니까요.” 그는 말했다. “흥미가 없을 수밖에.”
몇 주 전, 나는 스코틀랜드, 성 앤드류스 대학에서 근무하던 피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 이걸 사실-탐험적 여행이라 봐요.” 피치는 대답했다. “댄이 말하는 얘기들이 얼마나 확인 가능한 건지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요.”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에버렛은, 학계의 격식 앞에 유난히 성마르고 까다롭게 구는 것으로 이름나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와 멕시코의 국경에 접한 소읍인 홀트빌에서 노동자 가정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술꾼이었던 그의 아버지 레너드는 기계공, 카우보이, 바텐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집에 책이 있었던 적이 없어요.” 에버렛은 말했다. “아버지에겐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들과 넥타이를 맨 사람들은 죄다 ‘계집애 같은 놈들’이었죠. 아마 그렇게 여기는 부분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을 거에요.”
지적인 삶을 접할 수 있도록 에버렛을 이끈 사람은 웨이트리스였던 그의 어머니로, 그가 열한 살 때 뇌동맥류로 사망했다. 그녀는 집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와 의학백과사전 몇 권을 가져다 두었고, 에버렛은 그걸 외울 정도로 읽었다. 고등학교 때 <마이 페어 레이디>를 본 에버렛은 언어학자가 되기로 결심하는데, 헨리 히긴스의 작업은 “지적으로도 흥미로웠을 뿐더러, 음성학자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고 그는 나중에 적고 있었다.
십대 무렵, 에버렛은 락밴드에서 기타를 쳤고(그 밴드의 키보디스트는 나중에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초창기 멤버가 된다), 마리화나를 피웠으며 LSD를 했다. 1968년 여름 레이크사이드의 엘 카피탄 고등학교에 다니던 커렌 그레이엄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선교사의 딸이었던 커렌은 브라질 북동부의 사타레 족들 사이에서 길러졌다. 커렌은 에버렛을 교회로 초대했고 집에 데려가 함께 가족들을 만났다. “애정이 넘치고 상냥하고 아마존에서 온갖 근사한 경험들을 겪은 사람들이었죠,” 에버렛은 말했다. “커렌의 가족은 날 지지했고 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알려줬어요. 그동안 지내온 방식과는 너무 달랐어요.” 1968년 10월 4일, 열일곱살의 에버렛은 기독교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느꼈어요. 마치 어둠에서 빛으로 걸어나간 것 같았죠.흔히 하는 표현대로.” 그는 마약을 끊었으며 커렌과 그가 열여덟이 되던 해 둘은 결혼했다. 일 년 후 그들의 세 자녀들 중 첫번째가 태어났고, 둘은 함께 선교활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976년, 시카고의 무디 성경학교에서 해외선교 학위와 함께 졸업한 에버렛은 커렌과 함께 S.I.L.로 알려진 서머 언어학 기관에 등록했다. 문맹사회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신의 말씀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국제적 전도 기관이었다. 그들은 멕시코의 치아파스로 보내졌다. 커렌은 아이들과 함께 정글의 오두막에서 지냈으며 — 이제 자식은 셋으로 늘어났다 — 에버렛은 혹독한 현지훈련을 견뎌냈다. 그는 오십 마일의 행군을 버텨냈고 정글 깊은 곳에서 오직 성냥과 물, 밧줄, 마체테, 손전등만 가지고 여러 날을 생존했다.
그들 부부가 함께 받은 번역기술 강좌에서, 에버렛은 두각을 드러냈다. 에버렛의 친구이자 컬럼비아 대학의 언어학자로서- 피라한 어에 숫자가 부재하는 현상에 대해 논문을 펴낸 바 있는 피터 고든에 따르면, 에버렛은 군중들 속에서 이전에 들어본 적도 없는 언어를 구사하는 이를 한 명 골라내, 자신이 지닌 언어적 능력을 시연함으로써 학계 청중들을 놀래킨다고 한다. “거의 20분도 못 되는 시간에 에버렛은 그 사람이 말하는 언어의 기초적 구조와 문법이 작동하는 방법을 말해줄 겁니다.” 고든은 말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넓은 지식을 자랑하고, 정말 굉장히 똑똑해요. 뭐든 속속들이 꿰고 있죠.”
지난 이십 년간 피라한 어를 습득하는 데 거의 진전을 보지 못한 S.I.L.의 교수진에게 에버렛의 재능은 명백한 것이었다. 1997년 10월, S.I.L.의 초청으로 에버렛과 커렌, 그리고 그들의 세 자녀들은 브라질로 떠나 벨렘이라 불리는 도시에서 포르투갈어를 배웠으며, 일 년 후 마이시 강 입구의 피라한 마을로 보내졌다. “당시엔 피라한 어가 언어적으로 그토록 어려울 줄은 생각도 못했죠.” 커렌은 내게 말했다.
마이시와 마르멜로스 강을 따라 퍼져 있는 작은 마을 여럿에 약 350명 가량의 피라한 족이 살고 있었다. 에버렛과 방문한 마을은 그들 중 한 전형이었다: 네 개의 막대기 위에 야자잎으로 지붕을 이은 일곱 개의 오두막이었다. 오두막은 흙바닥이었으며, 잔가지들을 써서 바닥보다 높게 짠 잠자리 용도의 단상 외에 다른 벽이나 가구는 없었다. 보통 서너 명으로 이루어진 한 가족이 지내는, 그처럼 부서질 듯한 거처들이 강둑에 자라난 풀이며 잡초들 사이로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오두막에 많은 걸 두지 않았다. 솥과 팬 몇 개, 마체테 한 자루, 칼 한 자루, (화살촉을 만드는 데 쓰이는) 긁어내는 도구, 느슨하게 짠 야자잎 가방, 목제 활과 화살 외에 어떤 도구도 만들지 않았다. 그들의 유일한 장신구는 씨앗과 이빨, 깃털, 구슬, 알루미늄 캔따개 등으로 만든 목걸이였다. 이러한 것들은 보통 피라한 족과 브라질너트, 목재, 소르바(추잉검을 만드는 데 쓰는 고무 같은 진액)를 물물교환하는 장사치들에게서 얻어졌다. 피라한 족은 목걸이를 걺으로써 악령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다.
아마존의 다른 수렵-채집 부족들과는 다르게, 피라한 족은 농업을 가르치려는 선교사들이나 정부기관들의 노력을 줄곧 거부해 왔다. 그들은 삐죽삐죽 돋아난 매니오크(카사바)를 심어 기르는, 숲 초입의 잡초투성이 밭뙈기들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 마을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누군가 심었거나 먹고 뱉은 씨앗에서 저절로 자란 것들이지요,” 어느 날 아침 마을을 산책하며 에버렛이 한 얘기였다. 피라한 족은 그날그날 잡은 생선이나 사냥감들로 연명하며 소금절이나 훈제 등으로 고기를 보존하는 법을 일체 무시했다. 매니오크 가루도 꼭 며칠 먹을 분량만큼만 만들었다 (에버렛이 연구한 또다른 아마존 부족인 카와히브의 경우 한 달 정도 먹을 분량을 만들었다). 그들이 허락한 몇 안 되는 현대의 산물은 옷이었다: 성인 남자는 장사치들에게서 얻은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었으며, 여자들은 스스로 짠 무늬 없는 목면 드레스를 입었다.
“여기 머문 첫 몇 년 동안, ‘다채로운’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한 게 실망스러웠었다”고 에버렛은 말했다. “칭구(Xingu)에 있던, 몸에 칠을 하고 입술연지 접시를 쓰고 축제를 여는 그런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윽고 이 문화야말로 내가 경험하길 바라는 한 가장 강렬한 문화란 걸 깨달았죠.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문화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아마존에서 가장 강력한 문화에요. 아마존 역사상 이 정도까지 변화를 거부해온 이들은 없었어요. 아마 전세계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출처: 뉴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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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원제 Don't sleep, there are snakes)를 정말 감명 깊게 읽었어요. 다른 저작들도 국내에 소개되면 좋을 텐데요..
뉴스페퍼민트는 최근 뉴스를 다루는 줄 알았는데요?
이건 2007년 뉴요커에 실린 것인데 --
책도 2009년인가에 이미 번역판도 나와있고요 --
이미 오래된 기사라는 것을 분명히 명시해야 할 것 같아요
안그러면 오해와 혼란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question 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뉴스페퍼민트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뉴스'에서 ''뉴스'를 포함한 최근, 혹은 가까운 과거의 읽을만한 글'을 올리게 된 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만, 8년 전이 '가까운 과거'인지는 충분히 이견이 있을 수 있으며 특히 이를 명시하지 않는 것이 독자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일리있는 지적입니다. 이를 받아들여 글의 앞 부분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뉴스페퍼민트의 열혈 독자로서 제 의견을 반영하여 수정하여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 글의 충격파는 8년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하다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에버렛이 제기한 근대 서양학문의 이상적 보편적 합리성의 횡포는 오늘날 가장 뜨거운 이슈이기도 하니까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