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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빠지는 이유는 숫자때문입니다

인간관계는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말이 있지만, SNS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요즘 SNS 웹서비스를 보면 거의 전부 첫 화면에 굵은 숫자를 내보이며 우리 인간관계의 누적 총량를 보여줍니다. 트위터 팔로우가 300명, 페이스북 친구가 500명 하는 식으로요. 3시간 전에 게시판에 올린 글의 조회수가 3이라면 삭제하는 편이 낫겠지요. 제가 아는 한 친구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이 ‘좋아요’를 얼마나 받는지 지켜보고 있다가 두 자리수에 못미치는 사진은 삭제하곤 합니다.

아마도 저렇게 숫자를 매기는 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에 어떤 형태를 잡아주려는 의도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술가이자 개발자인 벤자민 그로서(Benjamin Grosser)는 SNS가 보여주는 숫자들이 우리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2012년 그는 ‘페이스북 숫자제거기‘라고 불리는 웹브라우저를 개발해 배포했습니다. 이 웹브라우저는 (이름이 말해주듯) 페이스북에 접속할 때 보이는 각종 숫자를 가려줍니다. ‘페이스북 숫자제거기’를 통해 페이스북에 접속하면 날짜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글이 언제 작성된 글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수천 명이 벤자민의 저 숫자제거기를 내려받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사용자들은 벤자민에게 사용후기와 평을 전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숫자가 사라진 페이스북은 더이상 우리가 아는 페이스북이 아니었습니다. 사용자는 ‘좋아요’를 많이 받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좋아요’ 숫자가 낮은 글을 지워야 겠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와졌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집착과 걱정이 사라진 것입니다. 숫자가 사라진 SNS는 더는 인기 경쟁의 장이 아니었습니다….. 즉 더 진정한 사회적 관계 맺기가 됐습니다.

“숫자제거기를 쓰고나서부터 ‘좋아요’를 얼마나 많이 받는지, 다른 글의 ‘좋아요’ 수는 얼마인지, 언제 쓴 글인지에 신경쓰기보다는 ‘누가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에 신경쓰게 됐습니다.” 벤자민 그로서는 숫자제거기의 장점을 설명합니다. 양보다 질이 중요해졌다는 겁니다.

숫자로 측정되는 결과가 우리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에 관한 연구는 많습니다. 다이어트를 할 때 칼로리를 계산하고 교사가 학생 성적을 100점 만점 기준으로 점수 매기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이 현상을 연구한 토마스 괴체는 2011년 쓴 글에서 숫자 피드백이 “인간의 행동을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바꾸는 수단”이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벤자민 그로서의 숫자제거기는 SNS가 알려주는 숫자 때문에 우리 삶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할 수도 있음을 새삼 확인시켜줬습니다. 그 숫자들은 내 온라인 정체성이 ‘친구 수’와 ‘좋아요 수’에 달려있는 것처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내가 올리는 글과 사진은 누군가가 ‘좋아요’를 눌렀을 때만 가치있는 것이라고 SNS는 가르칩니다.

저는 지난주부터 그로서의 ‘페이스북 숫자제거기’를 깔아서 쓰고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에 페이스북에 제 강아지 사진을 올렸습니다. 친구들에게 ‘좋아요’를 끌어올만한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진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좋아요’를 눌러 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정확히는 친구들이 ‘좋아요’를 눌렀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숫자제거기를 쓰고 있어서 반응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건 놀라온 경험이었습니다. 문제가 명확해졌습니다. 이제 저는 친구가 올린 글이나 사진을 볼 때, 이미 그 전에 남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에 연연하지 않고 글과 사진 자체만 보고 판단할 수 있게 됐습니다. 광고성 게시물을 덜 읽게 되고 낚시성 게시물에 빠지는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페이스북 게시물을 덜 읽게 됐습니다.

혹시 이게 페이스북의 본질과 관련이 있을까요? 벤자민 그로서는 숫자 안내가 우리가 좀 더 페이스북에 시간을 많이 쓰게 하고 특정 게시물을 더 클릭해서 읽도록 유도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건 페이스북의 광고주에게 이익이 되고 페이스북의 장사에도 이득이 되겠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도 과연 좋은 일일까요?

“숫자 때문에 정신이 어지럽습니다.” 한 네티즌이 벤자민 그로서에게 남긴 말입니다. “숫자가 얼마나 변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중독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는 벤자민의 ‘숫자제거기’를 쓰고 나서 삶이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숫자가 사라지니) 마치 명상을 얻게 된 느낌이었어요. 이제야 편안해 졌습니다.”

원문출처: 워싱턴포스트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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