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미국과 유럽의 언론을 매일같이 장식했던 보스니아 내전을 비롯한 발칸반도의 혼란을 보도하는 기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톱 기사를 쓰고 싶은 욕망이 없지 않았을 테고, 생사를 오가는 전쟁터를 누빈다는 공명심도 있었겠지만 근간에는 분명 이 사태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반인륜적이고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온 세상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건 이런 일이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37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UN 인권보고서를 작성한 이들의 동기도 20년 전 기자들과 비슷했을 겁니다. 고문과 노동 교화형, 집단수용소부터 심각한 식량난과 처절한 가난에 이르기까지 보고서는 심각하게 유린된 북한 인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아마도 보고서는 이렇게 소리 없이 외치고 있을 겁니다.
“이제 실상이 이런 줄 몰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당장 북한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읽는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당장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찾고 계신가요? 아니면 그냥 또 그런 북한 관련 뉴스인가 하고 심드렁하신가요? 적나라한 현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행동이 뒤따를 거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당장 북한 정권과 군부 세력을 국제형사 법정에 세우려는 시도라도 있으면,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즉각 반대를 표하며 가로막을 겁니다. 최악의 시리아 내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내전의 사망자 숫자에 둔감해졌고, 상황은 그렇게 악화를 거듭하다 수렁에 빠졌습니다.
아마 미국과 유럽의 강대국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기나긴 전쟁을 치르면서 모든 종류의 개입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분명 20년 전 발칸반도에는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강대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했지만, 지금 북한과 시리아는 계속 이대로 두었다가는 정말 큰 일이 날 것 같은 상황이 계속되는데도 뾰족한 해결책 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전쟁과 개입에 지친 강대국들 탓에 독재자들은 어느 정도 덕을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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