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12월 31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국어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영감(令監)이란 단어가 “급수가 높은 공무원이나 지체가 높은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고, 그래서 “중년이 지난 남자를 대접해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는 걸 배웠을 때 적잖이 놀랐습니다. ‘영감은 영감탱이란 말에서 보듯 나이 든 남성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 아니었나?’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걸 친구들 표정에서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영감’이란 단어를 듣고 부정적인 느낌이 먼저 떠오르게 된 연원은 무엇일까요? 제 경우엔 바로 찰스 디킨스의 고전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소설을 제대로 읽은 건 더 뒷일이니, 어렸을 때 원작을 각색해 만든 만화영화나 동화책에서 본 악독한 인물의 표상과도 같은 캐릭터 “스크루지 영감” 때문이었겠죠. 지독한 구두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수전노 같은 인물 스크루지에는 ‘영감탱이’라는 표현이 꼭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실제로 영감은 원래대로 높임말의 뜻이 있지만, “-탱이”가 예외적으로 붙은 ‘영감탱이’라는 말은 오늘날 나이 많은 남성을 낮잡아 부르는 말로 분류됩니다.
‘영감’이란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는 글은 아니니,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오늘은 무려 180년 가까이 이맘때, 즉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만 되면 사람들이 다시 찾아 읽고 꺼내보는 고전 중의 고전, 최고의 스테디셀러 가운데 하나인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이 주는 울림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먼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저 로젠블라트가 쓴 ‘크리스마스 캐럴’의 의미를 짚은 칼럼을 번역했습니다.
전문 번역:200년 전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여전히 공감 불러일으키는 이유
현대인들이 고전을 다시 찾는 이유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울림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크리스마스 캐럴’도 주인공 에비니저 스크루지를 비롯한 등장인물을 통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여러 가지 마음, 즉 탐욕과 관대함, 증오와 사랑, 후회와 용서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책을 읽는 내내 스크루지를 욕하면서도 여러 장면에서 문득 ‘내 안의 스크루지’를 떠올리게 되고, 과거와 현재, 미래의 유령을 통해 개과천선하고 구원받는 스크루지를 보고는 마침내 위안을 얻죠. 책을 덮으면서 마음속으로 스크루지처럼 지은 죄 많아도 스크루지처럼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결론에 안도하게 됩니다.
로젠블라트는 칼럼에서 미국 사회의 최근 두드러진 변화를 언급하며, ‘크리스마스 캐럴’의 교훈을 제대로 새기고 실천에 옮기자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떨까요? 2024년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진단하는 데 찍는 방점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탐욕과 관대함, 증오와 사랑, 후회와 용서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보면 한국 사회도 미국 못지않게, 어쩌면 미국보다도 더 자기 자신에게만 관대하고 남에게는 인색한 사회가 된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그렇다는 분석도 있고, 실제로 불평등 지수가 점점 더 나빠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몇십 년 전에 비하면 경제가 이만큼 눈부시게 성장했는데도 서로 돕고 사는 인정은 예전보다 오히려 보기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자리를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가 대체하면서 돈으로 서열을 정하고, 재산을 신분처럼 여기는 세태는 훨씬 더 뚜렷해졌습니다.
예전에는 부자가 되더라도 어떻게 부자가 됐느냐에 적어도 겉으로라도 신경을 쓰고 체면을 차리려 했다면, 언젠가부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가 된 사람은 맹목적인 부러움의 대상이 됐습니다. 심지어 스크루지 영감 이야기가 주는 교훈, 즉 “착하게, 남한테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말에 예전에는 수긍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속으로 (때로는 대놓고) 그런 고리타분한 교훈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거부하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는 어느덧 고전의 가치와 교훈이 점점 더 통하지 않고, 빛을 잃어가는 사회로 변했는지 모릅니다.
고전이 주는 울림
고전은 오래된 텍스트, 오래된 붓 터치, 오래된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선율이니, 고전을 현대에 맞춰 다시 쓰고 바꾸기란 불가능합니다. 대신 시대에 맞춰 해석을 보완하고 새로 쓰는 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죠. 사람들이 돈을 좇다 못해 돈이 신격화된 사회에서 돈 말고 다른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분명한 답은 없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택할 수밖에 없는 뻔한 답이 어쩌면 고전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일 겁니다.
그건 바로 로젠블라트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묻지 않지만, 실은 남을 위해 살 때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는 뻔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게 돈과 돈을 잘 버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만 채워진 세상인 듯해도 우리가 정말 인생의 최종 목표로 삼는 것들은 대개 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거나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냉소적인 이들은 “결국엔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돈만으로 얻을 수 없는 가치가 더 고귀한 세상”이 됐습니다.
무척 어려운 일 같지만, 역설적으로 우리가 돈 대신 좇을 만한 가치 중에는 돈이 많든 적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베푸는 삶이 대표적입니다. 자신을 희생해가며 헌신하는 삶을 산다면 물론 위인전에 오를 수 있겠지만, 굳이 그 정도가 아니라도 그냥 내가 힘들면 남도 힘들겠구나 생각해 보고 사소한 배려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워낙 많고, 우리도 조금만 일상에 치여 살다 보면 쉽게 잊고 사는 가치니까요.
평생 이기적으로 산 스크루지 영감이 하룻밤 세 가지 다른 시기에서 온 유령과의 만남이라는 ‘문학적으로 허용된 속성 과외’를 받고 깨달은 건 이기심은 결국, 우리를 고통으로 내몰 뿐이라는 겁니다. 재산이 아무리 불어나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다면, 은행 계좌에 돈은 쌓이는데 내 삶은 오히려 점점 더 의미를 잃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원인은 나눠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불어나는 행복과 베풂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저는 현대 사회의 문제는 개인의 인식을 바꾸는 것보다 제도를 바꿔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편입니다. 개인의 인식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기도 하고, 제도를 통해 인센티브를 바꾸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 오는 해를 맞이하는 시기에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니는 고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도 소중합니다. 게다가 우리의 일상을 보장해 주는 정치 제도의 근간이 위협받은 데다 끔찍한 참사까지 또 일어난 상황에서 지금이야말로 서로서로 돌봐주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로젠블라트가 칼럼 마지막에 한 말처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남에게 못 베풀고, 나누지 않고 사는 게 아닙니다. 아는데도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것들이 늘 쌓여서 문제입니다. 한 해의 시작, 새 학기의 시작, 이직하고, 인사로 팀을 옮기고 나서 첫 출근일에 다짐한 것들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해 다짐을 적어 보는 시간인 세밑에는 그 다짐 중에 스크루지 영감이 밤사이 얻은 깨달음을 넣어보는 건 어떨까요?
대단한 실천도, 거창한 다짐이 필요한 일도 아닙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에 헌신하는 단체에 정기적으로 기부를 할 수도 있고, 기부가 번거롭다면 일상에서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날 때 진심으로 도와보는 것도 좋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갚는 게 아니라 꼭 그렇지 않더라도 먼저 나누고 돕는 일은 좋은 선순환을 만들 뿐 아니라, 그 자체로 가장 큰 보람과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걸 직접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작은 실천을 끌어내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면 ‘크리스마스 캐럴’은 앞으로도 쭉 빛을 잃지 않는 고전으로 남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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