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같은 인플레이션, 같지 않은 효과

지난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19 사태는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지만, 팬데믹의 영향은 결코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뉴스페퍼민트도 코로나바이러스가 국가 간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이나 팬데믹으로 인해 더욱 부각된 미국 내 인종, 성별, 학력 간 불평등에 대한 기사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팬데믹 종반부에, 전쟁 등 다른 요인이 겹치면서 세계 각국이 경험하고 있는 인플레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국가의 물가 인상률은 하나의 숫자로 기록되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겪는 고통은 같지 않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미 지난 2월, “생존 모드”에 돌입한 저소득층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대출 끼고 집을 살 수 있는 돈을 15년간 저축해 마련한 여성은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직장을 잃고 말았습니다. 몇 달 후 다시 일자리를 찾은 사람도 있고, 팬데믹 기간 임금도 상당히 오른 것이 사실이지만, 일상이 제자리를 찾았을 때는 이미 저축한 돈을 다 써버리고 난 뒤였죠.

고소득층은 애초에 생필품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저소득층보다 낮고, 절대적인 여유 자금이 많기도 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도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덜 받습니다. 외식을 조금 줄인다거나, 차 바꾸는 것을 몇 년 미루는 정도로 유연성 있게 대처할 여지도 크죠. 특히 연금이나 투자는 장기적으로 보면 오른 물가를 상쇄하고도 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게 됩니다.

기사는 소득별 가구가 구입하는 식음료와 생활용품 가격 상승률을 조사한 결과 연 소득 3만 달러 이하의 가구가 연 소득 10만 달러 이상 가구보다 지속적으로 높은 물가 상승률을 경험하고 있다는 연구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진=Unsplash

UC샌디에이고의 경제학자가 컨버세이션(Conversation)에 기고한 올해 초 칼럼은 이러한 “인플레이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필자는 미국 노동통계청(Bureau of Labor Statistics)의 데이터로 계산한 결과, 최저소득층과 최고소득층이 경험하는 물가 상승률의 차이는 2021년 내내 증가하여, 연초에는 0.15%P 였던 것이, 연말에는 0.6%P에 달했다고 말합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인플레이션 불평등(inflation inequality)”이 각 소득 집단의 평균적인 소비 행태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합니다. 경기 침체나 불확실성의 시기에 휴가나 새 자동차 같은 사치품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고소득층과는 달리, 저소득층은 더 줄일 수 없는 생필품이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필자는 이런 불평등이 경기 침체 시기와 경기 회복 초기(예를 들면 2008~2009년)에 가장 높고, 경제 성장이 활발한 시기(2012~2018년)에는 줄어든다고 설명합니다.

이코노미스트의 5월 24일자 기사가 전하는 영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05~2021년 물가 상승률을 살펴보면, 소득 하위 10%는 연간 2.8%의 물가 인상을, 상위 10%는 2.6%의 물가 인상을 경험했습니다. 영국에서도 글로벌 경제 위기 직후인 2010년 초반에는 그 차이가 가장 크게 벌어졌습니다.

이 기사는 격차의 이유로 한 가지를 더 언급하고 있는데요, 저소득층이 주로 소비하는 저가 브랜드는 애초에 마진이 매우 낮게 책정되어 있어서 비용이 오르면 가격도 곧 민감하게 올릴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반면 고소득층을 겨냥한 프리미엄 브랜드는 처음부터 마진을 넉넉하게 잡아두었기 때문에 비용이 오르더라도 좀 더 오래 가격을 올리지 않고 버틸 수 있죠.

미국에서 각 분야 학계를 대표하는 과학원, 공학원, 의학원은 지난달 노동통계청에 인플레이션을 소득별로 발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영국 통계청(ONS)도 더 많은 품목의 물가 인상을 반영하기 위해 식료품 가격 측정 체계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팬데믹과 뒤이은 물가 인상으로 인한 고통을 더 힘든 사람들이 더 크게 겪지 않도록 사회가 데이터 수집부터 대책 마련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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