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궁지에 몰린 페이스북(과 저커버그)

2021년은 페이스북(과 저커버그)에게 쉽지 않은 해였습니다. 기업의 이윤 앞에서 고객의 안전, 청소년들의 건강은 늘 뒷전이었다는 폭로가 월스트리트저널의 탐사보도 페이스북의 자료들로 밝혀졌죠. 보도를 가능하게 했던 건 내부고발자 프랜시스 하우건이었습니다. (의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하우건의 모두 발언)

페이스북 파일에 관해선 아메리카노 팟캐스트나 뉴스페퍼민트를 통해 더 자세히 소개하고 다뤄 보겠다고 이야기했지만, 다른 이야기 하느라 끝내 못 했네요. 지난달 실망스러운 실적 발표 이후 주가 하락, 실리콘 밸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트럼프 지지자로 유명한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 피터 틸(2004년에 50만 달러를 투자하고, 8년 뒤 페이스북이 기업공개했을 때 6억 3800만 달러를 벌었죠)이 메타 이사 자리를 내려놓고 친 트럼프 성향 정치인들의 당선을 위해 남은 2022년을 보내겠다고 선언하는 등 메타(와 저커버그) 관련 뉴스는 계속 나올 겁니다. 오늘은 지난해 9월 20일 프리미엄 콘텐츠에 올린 글을 소개합니다.

 


지난 3월 미국 하원에서는 이른바 빅테크(Big Tech)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구글의 순다 피차이, 트위터의 잭 도시,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 ‘거물’들이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의원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다양한 폐해를 지적하며, 각 기업에 책임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캐시 맥모리스 로저스(워싱턴, 공화) 의원은 특히 (페이스북이 소유한)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소셜미디어 사용이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지적하며, 저커버그 CEO를 향해 날 선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로저스 의원과 저커버그 CEO가 주고받은 대화 일부를 옮겼습니다. (청문회 영상 링크에선 1시간 23분 30초부터의 대화입니다.)

로저스: 최근 들어 저희 지역구에서 점점 더 많은 청소년이 자살로 죽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 2016년, 불과 3년 사이에 워싱턴주 스포캔(Spokane) 카운티의 자살률은 두 배 이상 높아졌어요. 최근 6개월 새 한 고등학교에선 무려 학생 3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었고요. 워싱턴주에선 15~19세 청소년의 사망 원인 가운데 자살이 두 번째로 큽니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과 커뮤니티는 아픔 속에서 왜 아이들이 자살에 이르게 됐는지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원인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고 치유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도대체 그 아이들은 어쩌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한없는 공허함과 절망을 느끼게 된 걸까요? 유권자들 중 자녀가 있는 부모들이 제게 하는 말들이 있는데, 그 말을 뒷받침하는 연구들이 벌써 꽤 많이 있더군요. 바로 소셜미디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온종일, 너무 오랜 시간을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보면 사람이 더 외로워지고 절망에 빠진다는 연구입니다. (중략)

증인으로 나온 저커버그 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네, 아니요로만 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을 쓰면서 그저 수동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일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하십니까?

저커버그: 의원님, 제가 그동안 접한 연구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컴퓨터와 소셜미디어를…

로저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예, 아니요로만 답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커버그: 연구 결과를 말씀드리려 하는데, 그 결과가 단정적으로 어느 쪽이라고 보기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양해해주신다면 제가 연구 결과를 통해 알게 된 점을 간략히 답변 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로저스: 그 답변은 나중에 따로 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질문을 드린 건 이미 페이스북이 페이스북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다 보면 사람들이 더 우울해지고 기분 나빠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저커버그: 의원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어쨌든 제가 지금껏 확인한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된다는 건 그 자체로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고, 사람들이 덜 외롭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효용도 크다는 겁니다.

지난 3월, 비대면 의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마크 저커버그.

옮기지 않은 부분의 영상을 다 돌려봐도 저커버그는 소셜미디어 사용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효과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거나 애써 축소하려 합니다. 그런 문제가 있더라도 미미한 부작용에 불과하고, 결론을 내리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식의 답변을 고수하죠. 이런 태도는 지난 3월 청문회뿐 아니라 페이스북에 만연한 가짜뉴스와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이른바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 때문에 열린 청문회 때도 그렇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변함없이 유지됐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월스트리트저널이 페이스북의 자료들(Facebook Files)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탐사보도 기사를 시리즈로 펴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페이스북의 내부 자료를 확보하고 관련 있는 사람들, 연구 결과들을 방대하게 취재해 페이스북의 치부를 드러냈습니다. 무엇보다 페이스북이 내부에서만 돌려보고 자기들에게 불리한 내용이라서 겉으로는 쉬쉬했던 내용을 취재하고 확보해 기사를 쓴 것만으로도 특종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앞서 3월 청문회 때만 해도 로저스 의원의 질문에 저커버그는 충분히 예, 아니요로 답할 수 있었지만, 알면서 모른 척했다는 사실이 이번 기사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 버렸죠.

월스트리트저널 “페이스북의 자료들” 기사 첫 화면 갈무리.

월스트리트저널의 시리즈 기사는 크게 다섯 꼭지로 구성돼 있습니다.

  1. 모든 고객에게 똑같은 규칙을 적용한다고 해놓고, 정작 이름 있고 힘 있는 연예인이나 CEO, 정치인 등 ‘우수 고객’들에게는 특별 대우를 해줬다.

  2. 인스타그램이 특히 10대 여성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 아주 해롭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3. 지난 2018년 플랫폼을 개선하기 위해 페이스북은 알고리듬을 바꿨다. 가족, 친구들과 소통을 강화해 건전한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후 오히려 페이스북은 분노와 화가 전보다 더 여과없이 표출되는 플랫폼이 돼버렸다. 이 문제를 시정하려던 페이스북 직원들을 저커버그가 가로막았다. 저커버그는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덜 하게 돼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까 봐 우려했다.

  4. 마약밀매 조직, 인신매매 조직이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도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5. 저커버그는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데 페이스북이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페이스북은 백신 회의론이나 백신 관련 가짜뉴스를 걸러내지 못했다.

이 가운데 오늘은 인스타그램이 10대 청소년들에게 미친 해악에 관한 내용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로저스 의원이 청문회에서 언급한 자료는 워싱턴주 15~19세 여자 청소년의 자살률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보건부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미국 전체로 보더라도 어린이 사망 원인 가운데 자살이 두 번째로 많습니다. 가장 큰 사망 원인인 각종 사고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2007년부터 2018년 사이에 미국 어린이들의 자살률은 57.4%나 높아졌습니다.

10대 여성 청소년의 32%는 자신의 몸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인스타그램을 하면 기분이 더 나빠진다고 답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끝없이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다 보면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생각도 변하기 마련이다.

2020년 3월에 페이스북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연구 결과입니다. 지난 3년간 페이스북은 내 일상을 사진, 동영상으로 공유하는 소셜미디어 앱이 특히 젊은 이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쉬지 않고 연구해 왔습니다. 연구 결과가 가리키는 방향은 대체로 일정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이 젊은이들, 특히 10대 여성 청소년에게 상당히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은 자존감이 떨어지고,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 원인으로 인스타그램을 지목했습니다.

자살의 중요한 징조 가운데 하나가 자살 생각입니다. 자살 생각에 시달리는 청소년 가운데 영국의 13%, 미국의 6%는 자신이 이 세상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으로 인스타그램을 지목했습니다.

연 매출 1천억 달러가 넘는 페이스북에도 인스타그램은 중요한 서비스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페이스북에 소중한 고객인데, 인스타그램 이용자의 40% 이상이 22세 이하입니다. 미국에선 매일 10대 2,200만 명이 인스타그램을 합니다. 페이스북에 한 번이라도 접속하는 10대는 계속 줄어 하루 500만 명에 불과(?)합니다. 젊은 고객을 계속해서 인스타그램에 붙들어놓는 게 중요했던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이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한 수많은 우려, 연구 결과를 잇달아 묵살하고 덮었습니다.

잘 몰랐다고 발뺌하기엔, 더 많은 연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고 있었다고 하기엔 월스트리트저널이 확인한 페이스북의 내부 문건이 너무 많은 사실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2019년과 2020년에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포커스 그룹과 온라인 설문 조사를 진행했고, 청소년들이 쓴 일기의 텍스트를 분석해 소셜미디어가 이용자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도 살펴봤습니다. 올해는 인스타그램 이용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설문조사를 해 그동안 모아둔 자체 페이스북 데이터와 비교해보기도 했습니다.

페이스북의 자체 분석은 안타깝게도 인스타그램이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 가운데 10대 청소년들에게 가장 해롭다는 결론을 가리킵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는 것이 정신건강에 특히 해로운데, 인스타그램이 이런 면에서 가장 위험하다. 경쟁 서비스인 틱톡은 짧은 영상을 올리는데, 주로 춤을 비롯한 퍼포먼스에 초점이 맞춰진다. 또 다른 경쟁 서비스 스냅챗은 마찬가지로 사진, 동영상을 올리는 앱이지만, 우스꽝스러운 필터링을 통해 주로 얼굴 사진, 영상을 올린다는 점이 인스타그램과 다르다.

인스타그램은 일상을 빠짐없이 보여주게 되고, 사진과 영상도 얼굴보다 전신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들은 가장 멋진 순간, 완벽한 하루에 가까운 것들이 많아지고, 남들의 화려한 삶, ‘흠잡을 데 없는 몸매’ 등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나는 한없이 초라해지고 우울해진다. 특히 본인의 몸에 예민한 10대 소녀들이 거식증과 같은 식이 장애에 시달리거나 만성적인 불안 장애,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 페이스북 내부 보고서 “(소셜미디어와) 10대들의 정신건강 집중 분석”

이어 보고서는 인스타그램의 여러 가지 특징이 결합돼 청소년에게 심각하게 해로운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팔로우하지 않거나 친구가 아닌 계정에서 올린 사진, 영상을 볼 수 있는 “Explore” 버튼이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이어 저커버그를 포함한 경영진이 2020년에 이 보고서를 검토하고 보고받았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 내용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앞서 3월에 있던 청문회 전에 저커버그는 최소한 한 번은 인스타그램에서 수동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청소년에게 얼마나 해로운지 보고를 받은 겁니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여전히 소셜미디어와 청소년의 정신건강 사이에 명확한 관계를 찾기 어렵다며, 일부 부작용에 대해서는 오히려 안전장치를 강화한 13세 이하 어린이를 위한 인스타그램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미국 각 주 법무부 장관들은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 키즈 개발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올해 초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주춤했던 청소년 자살률이 올해 2~3월 들어 다시 많이 높아졌는데, 특히 2월 21일 ~ 3월 20일 사이 12~17세 여성의 자살 시도가 (코로나 이전인) 2019년과 비교했을 때 51%나 늘었습니다. (같은 나이대 남성 청소년의 자살 시도는 4% 증가.) 청소년기 우울증이나 자살률의 증가를 소셜미디어와 곧바로 연결 짓기는 어렵지만,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소셜미디어 이용 시간도 덩달아 늘어난 건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스타그램의 잠정적인 폐해를 알고도 모른 척했던 페이스북과 과거 청문회에서 사실상 거짓말을 했던 저커버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정신건강은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도 외면할 수 없는 사안인 만큼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정치인도 많을 겁니다. 앞으로 의회가 이와 관련한 청문회를 열게 되면, 저커버그는 기존에 해오던 답변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용자 수가 가장 많은 5개 소셜미디어 가운데 4개(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페이스북 메신저)가 페이스북 소유입니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선 페이스북이 곧 소셜미디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페이스북은 당장의 이용자와 매출 감소, 브랜드 이미지 훼손 등의 타격을 떠나 과연 지금의 소셜미디어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보다 가져오는 혜택이 더 큰지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에 사람들이 수긍할 만한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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