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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가는 생선, 잃어버린 시장, 복잡한 통관 절차.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현실.

(CNN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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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크리스마스이브, 영국 정부는 유럽연합과 브렉시트 이행 협정을 체결하면서 축포를 터뜨렸습니다. 2021년 새해로 예정됐던 노딜 브렉시트의 혼란을 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브렉시트 이후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그동안 유럽연합의 관세, 규제 동맹 아래에서 안정적인 공급망에 의존했던 수많은 산업이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가 영국의 수출 기업에 큰 기회이며, 자유 무역 르네상스의 계기가 될 것이라 거듭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 딴판이었습니다. 물류 회사들은 장기적인 무역 위축을 걱정하고 있으며, 영국산 수산물의 유럽연합 수출이 지연되면서 생선이 썩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시장조사 업체 IHS 마켓은 브렉시트의 여파와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으로 2021년 1분기 영국 경제가 큰 폭으로 침체할 것으로 전망하며, 더블딥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존슨 총리는 자신이 브렉시트 수혜 업종으로 언급한 많은 산업이 오히려 어려움을 겪는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존슨 총리의 공개적인 발언을 들어보면, 총리는 영국이 직면한 현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국 정부 대변인은 CNN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브렉시트가 초래한 무역 장벽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브렉시트 전환 기간이 종료되면 영국이 EU의 관세 동맹과 단일 시장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명확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노딜 브렉시트를 피하면서 새로운 협정과 절차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공공 캠페인을 통해 국민에게 지속해서 알렸습니다.”

브렉시트로 피해를 본 대표적인 분야는 스코틀랜드 어업입니다.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 어업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고 말하지만, 불과 몇 주 만에 어업 자체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식음료 협회(Scotland Food and Drink)의 제임스 위더스 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범적인 적용 기간도 없이 수출업체들이 난생처음 사용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 나타날 것이 뻔했죠. 이것은 단순한 IT 결함이 아닙니다. 이전에는 간단히 서류 한 장만 있으면 식품을 신선한 상태로 수출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며칠이면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식품이 갔죠. 그러나 지금은 무려 26단계의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이 결과, 일부 수출업체들은 유럽 시장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습니다. 소셜미디어에는 텅 빈 어시장과 항구에 발이 묶인 어선들의 사진이 거의 매일 올라옵니다. 위더스 회장은 스코틀랜드 어선이 덴마크에 생선을 팔기 위해 거의 48시간 동안 바다에 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수익률이 낮은 어업 같은 산업은 통관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제품의 신선도와 사업의 수익성이 치명타를 입습니다.

하지만 존슨 총리는 이런 어려움이 제도 이행 초기의 사소한 문제일 뿐이고, 영국 정부의 협상 실패나 브렉시트로 인해 생긴 무역 장벽 탓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브렉시트를 밀어붙였습니다. 정부 대변인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300만 파운드(352억 원)를 지원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지난 1월, 존슨 총리는 어업의 위기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수산물 수출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브렉시트 협상 때문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레스토랑들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라고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위더스 회장은 현재 상황이 심각하다고 우려했습니다.

“지원금은 조만간 고갈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수출을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총리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던 바로 그 산업에서 영국 국민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입니다.”

물론 식량 부족 사태와 국경에 늘어선 트럭 행렬 등 과거에 우려했던 장면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브렉시트의 피해는 이미 경제 통계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IHS 마켓은 브렉시트가 팬데믹 경제 봉쇄로 인한 경기 둔화를 더 악화시켰고, 공급 업체의 납품 기간도 늦췄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이 수출 감소를 불러왔다고 응답한 제조업체는 33%에 그쳤지만, 브렉시트를 원인으로 지목한 업체는 60%에 달했습니다.

일례로 웨일스의 말 사육 업체인 포리지플러스(ForagePlus)는 유럽에 수출한 수십 상자의 상품이 반송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해운 업체가 새롭게 적용한 통관 처리 시스템에서 결함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수개월 내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물류, 운송 산업계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피해 분야 내 복수의 소식통이 CNN 비즈니스에 귀띔한 전망은 어둡습니다. 원래 1월은 무역이 활발하지 않은 시기이고, 영국 정부가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해 수입품을 비축해 두었기 때문에 아직은 영국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지 않았다는 거죠. 그러나 향후 몇 개월 동안 무역량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수출입 통관 시스템에서 더 큰 문제가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영국 상점에서 판매하는 신선 식품의 종류가 점차 줄어들 수 있습니다. 수십 년 뒤에는 영국에서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를 연중 항상 구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딸기를 먹으려면 원래 제철인 여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죠.

특히 식량난이 빠르게 확산하는 지역은 북아일랜드입니다. 소셜미디어에는 북아일랜드 슈퍼마켓의 텅 빈 선반 사진이 심심치 않게 올라옵니다. 이런 현상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국경을 접한 북아일랜드의 지역적 특수성 때문입니다.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영토이지만, EU와 결별한 영국의 다른 지역과 달리 EU 단일시장에 남았습니다. 따라서 영국으로부터 식품 수입이 까다로워졌습니다. 사이먼 코브니 아일랜드 외교부 장관은 북아일랜드 슈퍼마켓의 텅 빈 매대를 두고 “브렉시트가 초래한 문제”이며, 영국이 EU 시장을 떠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통상 전문가들은 영국과 EU의 교역이 점진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우려합니다. 유럽 국제 정치경제 센터의 영국 담당 국장인 데이비드 헤닉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무역이 서서히 감소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갑작스러운 식량난보다 더 위험합니다. 특히, 수출업체들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해 고객을 잃거나 사업을 포기하는 상황이 걱정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투자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벼랑 끝에 몰리기 전까지 영국에는 대비할 시간이 몇 년이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왜 상황이 이렇게 나빠질 때까지 손을 놓고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유럽 기업의 교역을 지원하는 업체인 트레이드앤보더스(Trade and Borders)의 창립자인 안나 제르제프스카는 “우리는 지난 5년간 대비할 시간이 있었고,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을 때 부닥칠 위험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제르제프스카 씨는 고객사들이 수출입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영국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내놓은 지원책이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전했습니다.

“영국 정부에 새로운 통관 시스템에 대한 기술적 질문을 하면 답을 받기까지 48시간이 걸립니다. 이것은 신선 식품 유통에 심각한 문제를 유발합니다. 콜센터 직원은 업무 지침에 따라 매뉴얼대로 답변하지만, 사전에 정해진 지침은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제르제프스카 씨는 모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어려움을 겪는 영국의 수출업체들을 구제하는 데 충분하지 않을 것으로 우려합니다. “당장은 단기적 충격으로만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임대료 등 미래에 지불해야 할 고정 비용은 전혀 줄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의 손실이 늘어날 것입니다. 이윤이 낮은 무역 업체들은 2%의 추가 손실 때문에 망할 수도 있습니다.”

영국의 집권당인 보수당의 의원들은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답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있습니다.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놓고 비판할 수 없는 한 보수당 의원은 답답한 상황을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당에서는 브렉시트 이행 협상을 거대한 성공으로 발표했습니다. 동시에 의원들에게 브렉시트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모범 답변을 배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편, 영국의 중소기업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기업들이 유럽에 상품을 수출하기 위해 방문하려면 해당 국가 정부의 노동 허가서나 수출을 위한 서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보수당 내 온건파 사이에는 가까운 미래에 상황에 나아지리라는 낙관론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많은 이들은 브렉시트로 인한 교역 감소와 경기 침체가 영국의 핵심 산업인 금융업을 위축시킬지도 모른다고 우려합니다. 글로벌 금융 허브인 런던의 지위가 유럽 대륙으로 넘어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한 보수당 국회의원의 우려 섞인 언급입니다.

“코로나19의 안개가 걷히면, 글로벌 시장의 금융 서비스 기업들은 영국과 런던이 상당한 수준의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점을 알아챌 것입니다.”

영국 정부는 이번 교역 협정에서 영국 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금융 기관과 무역 업체에 대한 이슈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금융 기관, 무역 회사들이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EU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계속 제공하기 위해서는 EU로부터 동등성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번역자 주: 동등성 평가란 영국의 서비스 규제가 EU와 동등한 수준이라고 인정하는 절차입니다. 이 평가를 통과해야 EU 내 영업에 대한 인허가 절차가 면제됩니다.)

헤닉 국장은 앞으로의 상황을 이렇게 전망했습니다. “영국이 금융 서비스 규제와 데이터 개인정보 보호 규제에 대한 EU 동등성 평가를 받지 못하면, EU 규제 당국은 금융 허브인 런던을 압박할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런던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필요성이 줄어들면 런던의 지위가 흔들릴 것입니다.”

당초, EU와 영국은 오는 3월까지 금융 서비스에 대한 합의를 맺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당장의 분위기를 보면, EU 규제기관이 영국의 요구를 이른 시일 내에 들어줄 것으로 예상되지 않습니다.

브렉시트 직후 브렉시트 반대 진영에서 주장했던 대혼란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브렉시트 찬성파는 자신들이 옳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점진적인 침체가 이어진다면, 경기 침체가 불가피할지도 모릅니다.

영국의 집권당과 정치인들은 브렉시트의 폐해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브렉시트를 밀어붙였는지 유권자들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브렉시트가 유발한 문제를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쏟아질 때까지 앞으로 두어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과연 얼마나 더 암울한 현실이 닥쳐야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진실을 마주하게 될까요? 세계 최대의 경제 블록인 EU를 무턱대고 떠나버린 영국은 곧바로 그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male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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