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동맹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말은 하도 많이 나와서 하나 마나 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현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질서를 회복하려면 많은 나라와 다양한 세력이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개별 국가들은 현행 체제가 완전히 파괴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오기 전까지는 지금의 질서를 유지하는 게 과연 무엇이 이득인지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다. 원래 동맹이나 연합의 필요성은 같이 품을 들여 유지해온 질서가 깨졌을 때 더 두드러지는 법이다.
헨리 키신저는 19세기 유럽의 상황에서 정확히 이 문제를 읽어냈다. 키신저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아시아에서 멀리 떨어진 유럽의 정치지도자들은 중국의 부상을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치지도자들만큼 시급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의 또 다른 우방인 유럽 각국에 역내 질서를 해치려는 중국의 위협을 적절히 알리고 전달하는 일이 미국에는 또 하나의 과제다. 중국의 경제력이 이미 커져서 유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과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당장 지난해 말 중국은 유럽연합(EU)과 단일 투자협정을 체결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하다가 막판에 극적으로 타결됐는데, 바이든 행정부는 대유럽 정책에 적잖은 부담을 안게 됐다.
여러 가지 제약을 고려하면 미국은 여러 세력과 유연하면서도 혁신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다루는 거대한 연합체를 구성하기보다는 사안별로 이해당사자를 규합해 연대하는 쪽이 낫다. 예를 들어 영국이 G-7에 인도, 호주, 한국을 포함한 D-10 협의체를 제안한 것이 좋은 예다. D-10이 꾸려진다면 가장 먼저 협의할 내용은 역시 무역, 기술, 공급망, 표준에 관한 문제가 될 것이다.
중국의 영토 확장을 견제할 군사적 동맹도 필요하다. 지금은 이른바 4개국 연합(Quad)이란 이름 아래 호주, 인도, 일본, 미국이 함께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또한, 인프라 투자 부문은 인도와 일본이, 인권 문제에서는 역내 24개국이 함께 신장, 홍콩에서 중국 당국이 자행한 인권 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다양한 연합과 폭넓은 전략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앞서 언급한 대로 흔들리는 균형을 바로잡는 것이다. 지역 질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들을 강화하도록 의견을 모으는 일이다. 동시에 중국의 행위와 의도가 아시아 전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수행해야 했던 국가 전략 차원의 과제 가운데 최근 들어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200년 전 메테르니히와 캐슬레이는 위태롭던 체제를 우려하던 비관주의자에 가까웠다. 그들은 국가와 정치인을 비롯한 개인이 결국엔 어두운 야망을 품고 있어서 협력하지 못할 거라는 회의론과 냉소주의를 품고 있었지만, 상당히 유연하고 튼튼한 체제를 만들어냈고 많은 사람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평화와 번영을 구가했다. 미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맹국, 나아가 유럽의 우방들에 지금 필요한 것도 200년 전 빈 체제를 구축하는 데 동원된 냉철한 현실 판단과 목표일지 모른다. 그에 따라 목표를 세우고 착실히 수행해나간다면 우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수 있고, 그 혜택은 전 세계가 골고루 나눠 가지게 될 것이다. 전 세계 경제의 절반,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 전 세계 핵무기 보유국의 절반이 이 지역에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평화는 곧 전 지구의 안전과 평화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