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현재의 팬데믹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언론은 정보를 주고, 과학은 혁신을 추진하고, 정부는 자신의 역할을 그 어느 때보다도 잘해야 합니다. 하지만 악의적인 정치적 공격으로 그 셋의 신뢰를 떨어뜨려 온 역사는 수십 년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 분야에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장을 열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 대중은 매우 취약한 입지에 놓인 상태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꾸준히 전국 단위 매체들을 악마화했습니다. 대선 운동 당시에도 그는 미디어를 향해 “완전 쓰레기”, “전적으로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과 같은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언론사를 향해 매일 같이 “가짜 뉴스”, “국민의 적”과 같은 말을 내뱉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의 책임을 언론에게 돌린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습니다.
과학은 또 다른 타겟이었습니다. 질병통제본부(CDC)에 수백 개의 빈자리를 채우지 않고 놓아둔 것, 국가안전보장회의의 팬데믹 태스크포스를 해체한 것을 필두로, 행정부의 과학적 전문성과 행정적 역량을 완전히 끌어내리고 말았죠. 코로나 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대통령은 일상적으로 과학자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인체에 소독제를 주입하자거나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하이드로 클로로퀸을 치료제로 쓰자고 제안한 것은 여러 사례 중 일부일 뿐입니다. 외출 금지령을 언제 해제할지를 두고 말을 여러 번 뒤집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대통령은 혼란을 가중시키고 대중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끝으로 대통령은 심지어 국무부에까지 “딥스테이트” 낙인을 찍으며 필수적인 정부 기관들을 지속적으로 깎아 내렸습니다. 정보 기관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1월과 2월 내내 일일 브리핑에 등장한 코로나 경고를 무시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전임자들과 달리 트럼프는 임기 내내 일일 브리핑 메모를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트럼프의 특이한 통치 스타일이라고 여기고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 트럼프는 언론과 과학, 정부에 대한 신뢰를 깎아내리는 보수주의적 운동의 오랜 전통을 절정으로 이끈 인물에 불과합니다.
배리 골드워터와 리처드 닉슨은 1960, 70년대 미디어를 비판하는 것을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이어 1990년대의 보수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들과 2000년대의 폭스뉴스는 이를 비즈니스 모델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러시 림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기성 미디어 비판은 가장, 또는 두 번째로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입니다. 폭스뉴스의 오랜 슬로건인 “공정하고 균형잡힌 뉴스(Fair and Balanced)”는 은연중에 다른 매체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 슬로건은 2017년 이후 쓰이지 않지만, “주류 미디어” 비판은 폭스뉴스의 단골 소재입니다.
이 같은 역사는 대중,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언론에 대한 신뢰를 하락시켰습니다. 1973년 설문조사에서 언론에 거의 신뢰가 없다고 답한 사람은 민주당원 13%, 공화당원 16%였지만, 2018년 같은 조사에서는 그 수치가 민주당원 28%, 공화당원 65%로 늘어났습니다.
과학계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보수주의 운동은 기후변화에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기초 학문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데 동의하고, 대학이라는 기관 자체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과학계에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습니다. 1991년만 해도 과학계를 많이 신뢰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공화당원 가운데 47%, 민주당원 가운데 32%였던 것이, 2018년에는 공화당원 39%, 민주당원 50%으로 나타났습니다.
중앙 정부는 그 규모와 영향력, 목적을 생각할 때 팬데믹과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일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연방 정부는 보수주의 운동의 가장 꾸준한 공격을 받은 존재입니다. 미국 현대 보수주의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6년 직접 “영어로 가장 무서운 아홉 단어는 ‘저는 정부에서 나왔고, 당신을 돕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I’m from the government, and I’m here to help)’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오랫동안 계속된 끈질긴 공격은 상당한 효과를 거뒀습니다. 1960년대에는 70%의 미국인이 연방 정부가 항상, 또는 거의 매번 옳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몇십 년만에 이 수치는 10~20%대로 떨어졌습니다.
이 세 갈래의 공격은 10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재해 앞에 몹시 당파적인 대응을 가져왔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가족 중 누군가가 코로나로 심각한 상태가 될까 봐 매우 우려한다는 사람은 공화당원 가운데 2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민주당원 60%) 또한 공화당원의 80%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민주당원 약 30%) 조지아, 테네시, 플로리다 등 공화당 주지사가 이끄는 몇몇 주들은 14일 연속 신규 확진자 수가 줄어들면 경제를 재개한다는 트럼프 정부의 지침을 어기고 이미 외출금지령을 해제하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는 연방 정부의 지침과 이 주지사들에 대한 응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트럼프 본인의 정부, 과학, 언론에 대한 불신 때문에 미국 정부의 대응이 느려졌을 수 있다는 것은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CBS 시사 프로그램 “60분” 등이 자세히 보도한 바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국의 기관들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과학적인 관행은 계속해서 개선되어야 하며, 미디어의 편견을 없애는 일, 정부의 효율과 효과를 높이는 일도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언론과 과학, 정부의 신뢰를 깎아내린 역사 때문에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질병관리본부와 다른 정부 기관의 보건 정보를 믿어야 합니다. 친구가 소셜미디어에서 추천한 변두리 사이트 상의 뉴스나 루머를 믿기보다는, 주요 뉴스 매체가 주는 정확한 정보들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외출금지령이 해제되어도 언론이 전달하는 전문가의 지침을 따르며 생활해야 또 한 번의 유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는 당파적인 주제일 필요가 없습니다. 공화당원과 보수주의자들은 오랫동안 정부의 전문가, 과학의 발견, 비당파적인 전국 언론을 믿고 존중했지만, 1964년 배리 골드워터의 대선 주자 지명과 함께 보수주의 운동이 공화당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과학과 언론, 정부 기관을 깎아 내리는 것이 보수주의자들에게 유용한 정치 전략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리고 이 전략은 이 기관들이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정치에 대한 냉소적이고 파괴적인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오래전에 지적되었어야 합니다.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은 얼마든지 언론과 과학, 정부 기관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그런 변화가 필요합니다.
(브루킹스연구소, Marc Hetherington & Jonathan La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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