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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그레이엄 – 우리가 버려야 할 습관(1/2)

학교에서 배우는 것 중 가장 해로운 것은 특정 과목이 아닙니다. 바로 좋은 학점을 받는 방법 그 자체입니다.

대학 시절 나는 한 철학과 대학원생에게서 자신은 수업에서 어떤 학점을 받게 될지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으며 자신이 무엇을 배우는지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그의 말을 특별하게 생각한 이유는 그때까지 누구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른 대부분의 학생들처럼 어떤 수업에서 성적이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실제로 내가 무엇을 배우는지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성실한 학생이었고, 대부분 과목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열심히 공부한 때는 바로 시험을 준비할 때 였습니다.

이론적으로, 시험(test)은 말 그대로 수업에서 뭘 배웠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혈액 검사를 위해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시험을 위해서도 이론적으로는 따로 준비를 할 필요가 없어야 합니다. 수업을 듣고, 참고자료를 읽고, 과제를 하는 동안 이미 그 수업은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시험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확인하는 단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아는 것처럼, 수업과 시험은 원래 의미와 전혀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현실에서 “시험을 위해 공부한다”는 말은 “공부한다”와 거의 같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시험을 위해서만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성실한 학생과 게으른 학생의 차이는 성실한 학생은 시험을 앞두고 열심히 공부하는 반면, 게으른 학생은 그마저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나도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학교에서 내가 한 거의 모든 공부는 성적을 잘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내가 위 문장에서 “~었지만”이라고 말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겁니다. 내가 너무 당연한 사실을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겠지요. 성실한 학생이 바로 ‘올A’를 받는 학생이 아니냐는 말일 겁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이야말로 성적의 의미가 우리 생각 속에 얼마나 깊게 파고 들어있는지를 말해줄 뿐입니다.

공부가 성적과 동일시 되는 것이 문제냐고요? 물론입니다. 그건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실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수십 년이 지나, 와이 컴비네이터를 운영하기 전까지는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물론 나도 학생 때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실제 공부와는 크게 다른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시험 전날 밤에 외운 사실들이 머리 속에 오래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죠. 하지만 문제는 그보다 심각합니다. 진짜 문제는 대부분의 시험이 원래 시험이 측정하려고 하는 것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시험이 학생의 학습 정도를 제대로 판단한다면, 위에서 내가 말한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좋은 성적이 학습의 수준과 어느 정도라도 일치한다면 말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학생들이 치는 거의 모든 시험은 꼼수가(hackable)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성적이 좋은 대부분의 학생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그 사실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정도로 여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중세 역사 수업의 기말고사를 준비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기말고사는 당신의 중세 역사 지식을 측정할겁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시험 전 며칠 동안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세 역사에 관한 좋은 책을 읽는 것이 되겠지요. 당신은 중세 역사와 관련된 많은 지식을 쌓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겁니다.

하지만 시험에 익숙한 학생들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할겁니다. 당신이 중세 역사에 관해 아주 훌륭한 책을 읽었다 해도, 그 내용 대부분은 시험에 나오지 않습니다. 당신이 읽어야할 것은 좋은 책이 아니라 강의 노트와 수업중에 과제로 제시된 것들입니다. 그리고 강의노트와 과제 중에도 대부분은 시험 문제로 적당하지 않기 때문에 무시해도 된다고 말할겁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전체 내용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양이 됩니다. 과제 중 하나에 나오는 흥미로운 뒷이야기는 시험 문제로 적당하지 않기 때문에 무시해도 됩니다. 하지만 수업 중 교수님이 이야기한 1378년 교회 대분열의 세 가지 숨은 원인이라든지, 흑사병이 만들어낸 세 가지 변화 같은 것은 외워야 합니다. 그 원인이나 변화가 진짜 원인이나 변화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수업에서 그렇게 나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웬만한 대학에는 수업마다 족보라는 것이 있고, 이는 시험 준비를 더 쉽게 만들어줍니다. 교수님이 어떤 문제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으며 때로 똑같은 문제가 그대로 나오기도 합니다. 많은 교수들이 예전의 시험문제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사실 한 과목을 십 년 넘게 가르치다보면 그러지 않기가 더 어려울겁니다.

어떤 교수들은 나름의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며, 이 경우 학생들도 그 방법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수학이나 과학, 공학의 경우 이런 요령이 불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과목의 경우 교수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면 좋은 성적을 받기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과 그 과목의 내용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며,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대학원, 취업, 장학금, 그리고 부모 조차도 학점으로 학생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공부를 좋아했고, 학창시절에 제출한 몇몇 과제나 프로그램을 할때는 무척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그 과제를 제출한 다음 그저 재미로 다른 보고서를 쓰거나 프로그램을 짠 적이 있을까요? 당연히 없지요. 항상 다른 과목의 과제를 해야 했습니다. 공부와 학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 학점을 선택했습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대학을 들어오지 못했겠지요.

좋은 성적을 원하는 모든 이는 이 선택에서 성적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적을 선택한 다른 이에게 밀리고 말겁니다. 그리고 좋은 대학에 들어온 이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성적을 선택해온 이들입니다. 그 결과, 모든 학생들은 성적과 공부 중에 가능한한 성적을 선택하는 쪽으로의 경쟁을 펼치게 됩니다.

그럼 시험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왜 시험에는 꼼수가 가능할까요? 컴퓨터 개발자라면 그 답을 알겁니다. 해킹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따로 하지 않은 프로그램이 얼마나 해킹되기 쉬운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프로그램에는 채반처럼 많은 구멍이 존재합니다.

곧, 모든 시험은 기본적으로 꼼수가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시험에 꼼수가 가능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시험을 만든 사람이 이를 막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험에 꼼수가 가능하다고 선생님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의 본업은 가르치는 일이지 꼼수가 불가능한 시험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짜 문제는 성적에 있습니다. 곧, 성적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에 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시험 결과를 알려줄 때, 그저 코치가 운동 선수에게 운동을 더 잘하도록 하기 위해 주는 조언 정도로 받아들여진다면, 학생들은 시험을 앞두고 꼼수를 쓰려하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험 성적은 조언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이제 무엇을 배우든 당신은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나는 대학의 시험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 대학의 시험은 꼼수가 가장 적은 시험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일생 동안 치르는 거의 모든 시험은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학 입학시험은 특별히 심각합니다. 대학입시가 마치 과학자가 물체의 질량을 측정하는 것처럼 입학사정관이 학생이 준비가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저 아이에게 대학 입학을 위해 “공부를 많이 하라”고만 말하면 됩니다. 대학입시가 시험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고교 생활이 대학입시 때문에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면 됩니다. 실제 고등학교에서 능력있는 학생이 하는 모든 기괴한 활동들은 정확히 대학 입시를 위한 꼼수와 관련이 있습니다. 관심도 없는 수업을 신청해서 듣고, 자신이 “다방면”에 재능이 있음을 보이기 위해 특이한 “비교과 활동(Extracurricular Activities)”을 하며, 체스처럼 인위적인 수능시험(SAT)을 준비하며, 누구일지 모르지만 아주 구체적인 대상에게 먹힐 “에세이”를 써야 합니다.

대학입시는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해롭지만, 아주 쉽게 꼼수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나쁩니다. 대학입시에 꼼수를 쓰기 위해 거대한 산업이 존재할 정도입니다. 대입 준비 학원과 입시 상담관들, 그리고 사립학교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이 여기에 속합니다.

대학입시는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요? 나는 그 이유가 이들이 측정하려는 그 대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주 똑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상위권 대학의 입학 사정관들은 그 점만을 보지도 않으며 이를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어떤 학생을 찾을까요? 바로 단순히 영리할 뿐 아니라 총체적으로 모범적인(admirable) 학생을 찾습니다. 그럼 이 총체적으로 모범적인 학생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입학사정관이 이를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학생을 받아들입니다.

즉, 대학입시는 특정한 집단의 취향에 당신이 맞아 떨어지는 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이런 시험에는 꼼수가 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의 당락에 걸린 것이 매우 많기 때문에 (적어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매우 많은 꼼수가 횡행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 꼼수의 영향을 아주 오랫동안, 아주 많이 받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의 삶은 완전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시험이 주어졌을 때 꼼수를 써서 통과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미묘한 문제이며, 나는 사람들이 실제로 이렇게 훈련되었다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이 문제를 알지 못했습니다.

2부로

(폴 그레이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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