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한데 섞이는 증상을 일컫는 공감각은 전체 인구의 4% 정도에서 나타납니다. 제임스 워너튼 씨도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살고 있습니다. 영국 공감각 협회 회장이기도 한 저는 무척 독특한 공감각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소리에서 맛을 느낍니다.
공감각이란 무엇인가요?
공감각이란 신경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대개 분리돼 있는 다른 감각이 한데 어우러지고 뒤섞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한 가지 감각을 자극하면 자기도 모르게 또 다른 감각이 같이 반응하는 식입니다. 예를 들어 공감각이 활성화된 사람은 색깔을 듣거나 소리를 보는 식입니다.
공감각은 왜 생기는 건가요?
성인은 청각, 시각, 촉각, 미각, 후각 이렇게 다섯 가지 기본 감각을 우리 뇌에서 각기 따로 처리합니다. 원래 태어났을 때는 이 감각이 서로 연결돼 있죠. 그러나 성장과 함께 뇌가 발달하면서 유전자가 서로 다른 감각 사이의 연결 고리를 자연스레 끊어놓는 시기가 옵니다. 그런데 이때 몇몇 예외적인 경우 이 연결 고리가 다 끊어지지 않고 남아서 계속 서로 다른 감각을 이어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공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즉, 한 가지 감각을 우선 느끼는 대부분 사람은 그저 특정 자극에 더 잘 반응할 뿐이지 이른바 약한 자극조차 없지는 않다는 겁니다.
후천적으로 공감각이 생겨난 사례를 기록한 연구도 있습니다. 선천적으로는 공감각이 전혀 없다가 어느 순간 공감각이 생겨난 거죠. 주로 머리를 다치거나 심각한 감정적 트라우마를 겪을 때 이런 일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언제 처음 당신의 공감각 능력을 알게 됐나요?
이건 사실 정확히 답하기 무척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제가 소리를 듣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는 그 소리에서 맛을 느꼈기 때문이죠.
더 명확하게 남아있는 기억을 말씀드리자면, 제가 4살 반쯤이었던 때로 기억하는데요, 유치원에서 어떤 맛을 정확히 느꼈었어요. 일종의 조회 시간이었는데, 유치원 원생들이 다 같이 모여 주기도문을 외고 있었죠. 그땐 다 그랬어요. 그때 저는 주기도문을 외는 소리에서 지방이 가득한 베이컨의 맛과 질감을 아주 강렬하게 느꼈습니다.
스무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공감각이라는 것이 의학적으로 일종의 질병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알았죠.
그럼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어떤 맛이 느껴지나요?
네, 사실 저는 늘 어떤 맛을 느끼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이라고 아무 맛이 안 날 리가 없죠. 네, 저희 대화에서도 어떤 맛이 납니다. 그 과정을 한 번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묘사해 볼게요.
어떤 소리를 들을 때마다, 특히 주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단어로 들을 때마다 어떠한 맛과 질감이 그 단어에 딸려 오는 듯한 느낌인데요, 그냥 추상적으로 소리와 맛이 연동되는 것이 아니라 제 입에서 그 맛이 실제로 느껴져요. 제가 기르는 개가 짖는 소리를 들을 땐 커스터드 소스 맛과 질감이 나고요, “좋아한다(like)”라는 단어를 들으면 요거트 맛이, “마틴(Martin)”이란 이름에서는 뜨뜻한 베이크웰 타르트 맛과 질감이 나요. 소리마다 각기 다른 맛과 질감이 있어요.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소리가 들리는 한 이런 맛은 쉼 없이 느껴지는데, 마치 제 혀에 어떤 맛이 나는 안약을 계속해서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듯한 느낌이에요. 이 소리가 들릴 때는 이 맛이, 그랬다가 또 저 소리가 들릴 때는 저 맛이 나는 식으로요. 소리의 크기에 따라 맛의 강도도 달라지고, 지금 느끼는 맛의 어딘가에는 앞서 느낀 맛이 조금 남아 있기도 해요.
각기 맛이 어떤지는 아마도 (구식) 형광등을 켰다 끄는 장면을 떠올려 보시면 가장 이해가 빠를 것 같은데요, 스위치를 켜면 바로 불이 들어오듯 그 맛이 느껴졌다가, 스위치를 끄면 맛이 사라지는 건 천천히 사라져요. 특별히 공감각을 많이 자극하는 맛인 경우에는 그 맛이 미각에서 사라지는 데도 더 오래 걸리죠. 반대로 약한 맛은 금방 사라지거나 또 다른 맛으로 바로 대체돼요. 제가 맛을 느끼고 싶을 때만 느끼는 게 아니라 무조건반사처럼 자동으로 맛이 느껴져요. 맛을 덜 느끼도록 억제할 수도 없어요.
당신이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의 맛, 즉 실제로 맛본 적 없는 맛도 공감각을 통해 느껴지기도 하나요?
제가 즉각 어떤 맛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맛과 질감을 느낄 때가 꽤 자주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든 전에 먹어봤던 음식의 어떤 맛과 이 맛을 이어보려고 제 마음이 무던히도 노력합니다. 무의식중에도 모르는 맛으로 남겨놓기보다는 이 맛이 무엇이라고 어떻게든 이름표를 붙이고 싶은 거겠죠. 아무튼, 낯선 맛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 신경을 쓰느라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 할 정도입니다.
공감각을 통해 느껴지는 맛, 그러니까 소리의 맛은 대개 제가 과거에 맛본 맛 중에 나오는 것 같아요. 특히 제가 어릴 때 맛본 듯한 맛이 많습니다. 특이한 예외라 할 만한 것이 하나 있다면 “커피(coffee)”라는 단어의 맛일 텐데, 그 단어에서는 실제로 아주 강한 커피 향과 질감이 느껴집니다. 제가 처음 커피를 마셔본 게 중학생이 되고 나서였으니까 커피라는 단어에서 커피 맛이 난다는 건 제 공감각의 어휘가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다는 뜻일 테죠.
어떤 소리에서는 음식이 아닌 맛이 나기도 합니다. “마크(Mark)”라는 이름에서는 연필심의 맛이 나고, “데이비드(David)”라는 이름에서는 옷 맛이 납니다. 옷이 어떤 맛일지 궁금해하시겠지만, 뭐랄까 옷 소매를 계속 입으로 빨면 나는 그런 맛이라고 할까요? 또한, 정확히 이 맛이 무얼지 생각해내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쇳덩이 맛이 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공감각에서 오는 맛과 질감은 거의 바로 느껴지는데, 오히려 그 복잡 미묘한 맛과 질감을 다른 사람이 들으면 떠올릴 수 있게 풀어내 설명하는 일이 더 어렵기도 합니다.
공감각 때문에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세요?
냄새를 맡고 무언가를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감각도 하나의 감각이기도 해요. 그 덕분에 제 삶도 상당히 많이 바뀌었죠. 저는 어려서부터 친구를 사귈 때 그 친구의 이름에서 공감각적으로 좋은 맛이 나는 친구들과 더 잘 어울렸어요. 저랑 친했던 아이들 이름은 모두 ‘맛있는 이름’이었죠. 나중에 여자친구를 사귈 때도 같은 기준을 적용했어요. 제게는 이름의 맛이 상대방의 매력을 가늠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요소였죠.
공감각 덕분에 생겨나는 감정은 상당히 강력했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혹은 심지어 사람도 그 이름에서 느껴지는 맛이 제가 싫어하는 맛이면 실제로 그 사물이나 사람을 마주하거나 떠올릴 때마다 거부감이 들어 이를 떨쳐내기 어려웠습니다. 감각이란 것이 무척 내밀한 것이라 감각으로 인해 어떤 감정이 제 안에 생기고 나면 그 감정은 꽤 오래갔습니다.
그밖에도 공감각이 제 삶에 미친 영향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무엇을 먹을지, 어떤 TV 프로그램을 시청할지 결정할 때도 공감각이 제게 알려주는 선호를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름이 맛이 없는 사람과는 도저히 사귀지 못하셨다는 말씀이죠?
그렇지는 않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런 거예요. 당신이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 사람은 외모도 준수하고 성격도 최고죠. 그런데 그 사람에게서 나는 맛이나 향은 좀 이상하고 어색한 정도인 수준? 그렇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그 맛이라는 것이 항상 바탕에 깔려서 있으니, 그 사람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에 영향을 안 미칠 수가 없죠.
그렇다면 당신 자신의 이름은 어떤가요? 어떤 특별한 맛이 나나요?
제 이름에서는 한참 씹어 단물이 다 빠진 풍선껌 같은 맛과 질감이 느껴져요. 그나마 갈수록 제 이름의 맛이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전 단 한 번도 제 이름이 썩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어요.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저를 지미(Jimmy)라고 불렀고 자라면서 짐(Jim)으로 바뀌었는데, 둘 다 똑같이 정식 이름인 제임스(James)보다 훨씬 맛이 없어요!
소리에서 맛이 느껴지면 음식을 먹는 건 어떠세요? 지장이 있나요?
저는 항상 맛과 질감을 느끼기 때문에 배고프다는 신호가 와도 굶주림에 쓰러질 정도로 힘들어질 일은 없어요. 계속 뭔가를 먹고 있는 것처럼 저 자신을 속일 수 있으니까요. 가끔 어떤 음식이 너무 먹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런 허기도 쉽게 달래고 조절할 수 있죠. 초감각적인, 즉 실제로 먹지 않으면서도 무언가를 먹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가끔은 반대로 제가 거의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도 배고프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럴 땐 뭐라도 꼭 챙겨 먹어야죠. 안 그러면 정말로 영양실조에 걸릴 테니까요.
음식을 지칭하는 단어에서는 그 음식의 맛이 나나요?
대부분 그렇습니다. 치즈(cheese)에서는 치즈 맛과 질감이 나고, 감자(potato)는 감자 맛이 납니다. 공감각적 미각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묘사하는 그 맛이 나죠. 예외가 몇 가지 있긴 한데, 굴(oyster)란 단어에서는 왠지 모르지만 부드럽고 가느다란 초콜릿의 맛과 질감이 강하게 납니다.
공감각적으로 느낄 때 음식이나 먹을 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대체로 더 맛있는 편인가요?
네, 정말 그래요. 심지어 대부분 단어에서 나는 맛이 실제 음식보다 더 맛있어요. 그래서 저는 진짜 음식을 입에 넣을 때마다 실망하곤 하죠.
그렇다면 단어를 들을 때만 공감각이 발동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모든 소리에서 공감각적 맛과 질감이 느껴져요. 과학자들이 저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어요. 만들어낸 단어도 들려 줘보고, 단어가 아닌 소리도 들려줬는데, 그때마다 저는 그 소리에서 맛을 느꼈습니다. 공감각을 자극하는 건 어떤 단어를 발음할 때 나는 소리 그 자체지, 그 단어의 뜻이나 맥락이 아닌 거죠. 외국어가 문제를 일으킬 때도 있어요. 저는 학교에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웠는데, 이상하게 프랑스어에서는 날달걀에서 나는 비린내가 심하게 나서 견딜 수 없었어요. 반면에 독일어는 마멀레이드처럼 아주 향긋하고 맛있었죠. 결국, 제가 어떤 언어를 외국어 과목으로 선택했을지는 말 안 해도 아시겠죠? 저는 지금도 프랑스어 악센트가 싫어요.
실제로 예전에는 제가 겪는 공감각이 각기 다른 언어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이론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칼리지(college)”나 “메시지(message)”의 “-지(-ge)” 발음에서 거의 예외 없이 소시지 맛이 나요. 색깔에도 각기 다른 맛이 있고요.
참여하셨던 실험이나 연구가 어떤 것이었는지 소개해주실 수 있으세요?
잘 아시겠지만, 공감각이라는 것이 다분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잖아요. 그래서 수량화하거나 객관적으로 분류하고 분석하기가 정말 어렵죠. 누구나 “X를 들으면 Y 맛이 난다.”라고 말은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느끼는 건지 아니면 머릿속에서 지어낸 말을 하는 건지 어떻게 분간할까요? 그게 문제죠.
저를 처음 본 신경학자는 우선 제 말이 일관성이 있는지부터 검사했어요. 여러 단어를 보고 각각 어떤 맛이 나는지 적어서 제출했죠. 여섯 달 뒤에 다시 실험실을 찾아가 또다시 단어마다 나는 맛을 적어 냈는데, 여섯 달 전에 제게 줬던 단어들의 순서만 뒤바꿔놓은 목록이었죠. 당연히 일관성 검사를 통과하긴 했는데, 연구진이 보기에는 제가 머리가 좋아 답을 기억했다가 달달 외워서 시험을 통과했다고 의심할 수도 있었죠.
fMRI 촬영을 하게 된 것이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원래 비용이 만만찮은 탓에 fMRI 촬영은 계획에 없었지만, 뇌를 촬영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을 거라며 관계자들을 끈덕지게 설득한 연구진의 노력이 마침내 통한 거죠.
뇌스캔 결과 공감각을 지닌 제 뇌가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방법은 공감각이 없는 사람의 뇌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사실이 잇달아 밝혀졌고, 저는 그때부터 쭉 관련 연구의 실험 대상이 돼 왔습니다. 최근에는 공감각이 나이가 들면서 감소하거나 사라지는지를 측정하는 연구에도 참가했습니다.
만약 공감각을 없앨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시겠어요?
아뇨. 공감각은 이미 제가 제 주변을 포함해 세상을 이해하는 아주 근본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았어요. 모든 소리에 딸려 오는 맛을 느끼지 못하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제가 연관된 맛을 느끼지 못한다면 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걸요?
지금껏 공감각을 지닌 이들을 수백 명 만나봤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특별한 감각을 재능이나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저주받았다며 괴로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남들이 범접할 수 없는 공감각을 활용해 독특한 경험을 해보며 이를 즐기며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에요.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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