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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영화배우는 당연히 일반인과 뭐든 달라도 다를 겁니다. 화면에 비추는 것보다 실제 모습이 훨씬 호리호리할 테고, 외모는 당연히 수려하겠죠. 그러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스타성을 겸비했을 겁니다. 우리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비싼 옷을 입을 것이고, 우리가 꿈속에서나 그릴 법한 집에 살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와는 전부 다를 것 같은 유명 영화배우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일을 겪고 당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그것도 가장 고통스럽고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에서 말이죠.
배우 애슐리 주드 씨가 아직 무명이던 1997년, 스타 배우의 산실과도 같은 영화제작사 미라맥스의 대표 하비 웨인스타인이 그녀를 직접 보자고 했습니다. 약속 장소는 베벌리 힐스에 있는 한 호텔이었죠. 애슐리 주드의 설렘은 호텔 방에서 자신을 강제로 침대에 눕히려던 웨인스타인의 끔찍한 행동에 이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큰 충격을 받고 분노에 휩싸인 주드는 간신히 그 상황을 모면하고 방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많은 여성은 그런 일을 겪었을 때 수치심에 휩싸여 입을 다물지만, 주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주변에 알렸죠. <타임>과 인터뷰에서 주드는 말했습니다.
“하비 웨인스타인이 제게 무슨 짓거리를 하려고 했는지 바로 주변에 말하고 다니기 시작했죠. 1997년 그날, 베벌리 힐스에 있는 페닌술라 호텔에서 그런 일을 당하고 저는 황급히 하비 웨인스타인과 있던 그 방에서 빠져나와 곧장 로비로 내려갔어요. 마침 우연히 켄터키에 사시던 아버지가 LA에 오셨다가 저를 데리러 약속장소로 와 계셨죠. 나중에 아버지는 그때 제 표정만 보고도 무언가 심각한 일이 있었음을 바로 아실 수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당장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털어놨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요.”
시나리오 작가 친구 한 명이 웨인스타인이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는 상습범이라는 건 영화계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귀띔해줬습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가까운 지인들에게 누구누구를 만날 때는 각별히 조심하라거나 원치 않는 일에 휘말릴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일러줄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싹을 잘라내는 일은 요원했습니다. 주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화계를 특별 관장하는 암행어사라도 있으면 거기에 말하면 문제가 해결됐을까요? 사실 배우들이 이런 일을 당했을 때 하소연하고 신고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었어요.”
주드는 지난 10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하비 웨인스타인이 저지른 일을 폭로했습니다. 유명 배우 가운데 처음 내린 주드의 결단에 세상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웨인스타인은 자신은 절대로 주드를 어떤 식으로든 해코지하려 한 적이 없으며, 자신을 향한 폭로가 그야말로 물밀듯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자신은 합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명 영화배우에게도 피난처나 탈출구가 없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동료 직원으로부터 상습적으로 성추행, 성희롱을 당하지만, 괜히 문제를 크게 만들었다가 일자리를 잃기라도 하면 당장 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지니 억지로 입을 닫고 수치심을 속으로 삭이며 참아야 하는 청소부에게 이런 잔혹한 굴레에서 벗어날 희망이 있을까요? 부적절한 관계나 행동을 그야말로 끈덕지게 요구하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해도 이를 절대 거절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상사와 마주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어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행정 비서들은 어떻고요? 호텔 객실 청소부가 혹시 방에 남아있던 투숙객이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세워 놓고 해코지를 하려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면 어떻게 제정신으로 수건을 새것으로 갈고 화장실을 청소할 수 있을까요?
벌써 50년도 더 전에 베티 프리단은 저서 <여성성 신화>에서 안락한 백인 중산층의 현모양처를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정해놓고 모든 여성을 끊임없이 그 틀에 가두려 했던 이른바 “이름 없는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실질적인 불안과 매우 강력한 불만이 쌓여 있었습니다. 다만 아직 이를 조직해서 효과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지도부가 없었고, 그 전에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이론이 확립돼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등장한 것이 이제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해시태그 “#MeToo”입니다. (다른 언어권에서, 혹은 비슷한 맥락에서 #BalanceTonPorc, #YoTambien, #Ana_kaman 같은 수많은 해시태그가 있습니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라며 정말 수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MeToo라는 커다란 천막 아래에 모여 전에 없던 연대감을 느끼고 확인했습니다. 여전히 빙산의 일각일 텐데도 이야기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불만과 불안이 봇물 터지듯 분출된 건 정말로 한순간, 하룻밤 새였습니다. 직장 상사, 동료들 가운데 걸핏하면 ‘선을 넘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선이 어디인지, 그런 선이란 게 무엇인지조차 까마득하게 모르는 이가 너무 많다는 점에 수많은 여성은 더욱 좌절해야 했습니다. 직접 보복을 당하지는 않을까, 미운 오리 새끼처럼 찍혀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떨며 분을 삭이고 자신을 다독이는 가운데 쌓인 불안과 불만이었습니다. 밥 벌어 먹고살려면 악착같이 버텨야 한다는 신념으로 참고 눈감아야 했던 나날이었습니다. 상대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약자인 여성이 원하는 것을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침묵을 깨고 나선 이들은 하룻밤 새 당당히 거절을 외치며 어깨를 걸고 연대했습니다. 불과 두 달여 만에 그동안 쌓인 분노와 불만은 엄청난 변화를 낳았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CEO가 잘리고, 업계의 거물이 퇴출당했으며, 누군가의 성공 신화는 한낱 성추행범의 불결하기 짝이 없는 삶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법을 어긴 소지가 다분한 이들에게는 당국의 조사와 법의 심판이 가해졌습니다.
애슐리 주드의 용기 있는 외침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로즈 맥거원을 비롯해 많은 피해자가 주드와 함께 목소리를 냈습니다. 하비 웨인스타인이 아니더라도 헤아리기 어려운 피해자의 숫자만큼 잘못을 저지른 이도 당연히 많았습니다. 부적절한 행위, 모욕적인 행위, 때로는 범죄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자신이 겪었던 일을 떳떳히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NBC 투데이쇼의 터줏대감이었던 인기 방송인 맷 라우어도 자신이 평생 저지른 수많은 일이 폭로되자 천하의 몹쓸 놈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억울하고 속상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체념하던 피해자들은 이제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똑똑히 깨달았습니다. 영화배우가 앞장서 #MeToo를 외치니, 나도 용기를 내 연대의 물결에 몸을 싣는 겁니다.
피해자가 반드시 여성인 건 물론 아닙니다. 성별, 인종, 소득, 직업, 국적을 가리지 않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당하고도 참아왔던 이들이 침묵을 깼습니다. 캘리포니아의 농장에서 일하는 이부터 뉴욕 플라자호텔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는 사람, 유럽 의회에서 일하는 사람까지 온갖 사례가 다 있습니다. 아직 이 운동에 공식적인 이름이 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오랜 세월 침묵을 깨고 낸 이들의 목소리가 전 세계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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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미션 디스트릭트의 2층짜리 건물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에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모였습니다. 창문도 없는 방음 스튜디오에 모인 이들은 옷차림과 생김새부터 제각각이었습니다. 먼저 영화배우 애슐리 주드. 깎아지른 절벽처럼 높은 하이힐을 신은 주드는 이사벨 파스쿠알 씨와 악수를 했습니다. 멕시코에서 온 이민자 파스쿠알은 딸기 농장에서 일했습니다. 행여 자신의 신상이 알려지면 가족이 피해를 볼까 두려워 기사에는 가명을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파스쿠알 옆에서는 우버 엔지니어로 일했던 수잔 파울러 씨가 새크라멘토에서 기업 로비스트로 일하는 아다마 이우 씨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임신 8개월 차인 파울러는 만삭의 배를 이끌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텍사스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 한 명도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그녀는 자신도 성추행을 당했지만, 자신이 사는 공동체가 무척 작은 곳이라서 자신의 일터나 정보가 조금이라도 알려지면 금방 신상이 탄로 나고 가족 전체의 생계가 막막해질 수도 있다며 익명을 요구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이 자리에 모인 여성들에게서 공통점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이, 가족, 종교, 민족 등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기준에서 이들은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소득만 해도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기업 로비스트 아다마 이우가 월세로 내는 집값이 파스쿠알의 두 달 치 월급을 합한 것보다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토록 뚜렷한 차이점을 잠시 접어두고 공통의 경험을 바탕으로 11월 어느 날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6주간 <타임>은 최소한 각 업종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을 추려 수십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용기를 내 자신이 일하는 업계에 어떤 식의 성추행, 성희롱이 만연했다고 차분히 증언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겪었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비교해보면 소름 끼칠 만큼 비슷한 점이 많기도 합니다.
피해자들은 외설적인 발언 등 언어 성폭력, 강제 입맞춤, 걸핏하면 신체 특정 부위를 만지는 행위 등 성추행 자체가 얼마나 끔찍했는지와 동시에 그러한 성추행의 피해자가 되고 난 뒤 겪는 감정적, 정신적 피해가 막심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가장 힘든 건 피해자 본인인데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지우려는 듯한 주변의 시선이 이들을 더욱 수치심에 몸서리치게 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도 그럴 만한 여지를 줬던 것 아닐까?’, ‘피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가 이제 와서 저러는 거 아닐까?’, ‘별것도 아닌 일로 대단한 피해라도 본 것처럼 유난을 떠는 거 아닌가?’ 따위의 시선 말입니다.
“(성추행을 당하고 난 뒤)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왜 나는 즉각 대응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죠. 내가 뭘 잘못한 건가? 말실수가 있었나? 나도 모르는 새 저 남자가 이렇게 해도 괜찮을 거라고 여길 만한 신호라도 보냈던 걸까? 정말 끙끙 앓듯 계속 생각을 놓을 수 없었지만, 사실 혼자 아무리 생각해봐야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죠. 중요한 건 과연 내가 그 일을 막을 수 있었을까? 피할 수 있었을까? 그 문제였어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병원 노동자의 말입니다. 그녀는 그날 자신이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심지어 자신의 몸을 더듬던 가해자의 손에서 느껴지던 열기마저 또렷이 기억합니다.
<타임>이 인터뷰한 피해자들은 이런 일을 당했다고 주변에 알리고 문제를 제기했다가 일자리를 잃거나 자신과 가족에게 또 다른 어떤 피해가 미칠지 몰라 두려웠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물리적인 해코지를 하겠다고 위협한 가해자도 있었습니다. 파스쿠알은 가해자가 자신의 집까지 따라오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덮쳐오던 무시무시한 공포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가해자의 행동을 제지할 방법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그녀를 더욱 무기력하게 했습니다. 가해자는 아예 대놓고 이 사실을 주변에 알렸다가는 그녀는 물론 그녀의 아이들까지 어떻게 해버리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이민자, 유색인종, 장애인, 저소득층 노동자, 성 소수자 등 우리 사회의 취약 계층에 속한 이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당했던 일을 문제 삼고 목소리를 높이면 한순간에 해고되지는 않을지, 공동체로부터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낙인찍히지는 않을지, 혹시 살해당하지는 않을지 이들은 두렵기만 합니다. 2015년 한 조사에 따르면 성전환자의 47%가 삶의 어느 시점에서든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일터 밖에서는 물론이고 일터에서 피해를 본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수십 년간 호텔 객실 청소부로 일한 후아나 말레라 씨는 객실을 청소하러 갔다가 난데없이 성기를 드러내놓고 자위행위를 하는 손님과 맞닥뜨린 적이 있습니다. 동료들도 비슷한 피해를 수도 없이 당했지만, 이를 문제 삼았다가 간신히 구한 일자리를 잃고 나면 가족을 먹여 살릴 길이 막막해 대부분 쉬쉬하며 일을 덮었습니다. 말레라는 객실을 청소할 때 누군가 자신을 뚫어지게 훔쳐보는 듯한 느낌에서 오는 압박감과 두려움이 크다고 호소합니다. 한 번은 청소하다가 돌아섰는데, 한 남자 손님이 객실 현관문 밖에 세워둔 청소 카트 옆에 서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바지를 내린 채 발기한 성기를 드러내놓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그녀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고 그를 쫓아내려 한 뒤 재빨리 현관문을 닫고 잠가버렸습니다. 천만다행으로 그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며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호텔 손님은 호텔을 나서면 그만이지만, 매일 사무실에서 마주쳐야 하는 동료나 상사가 가해자인 경우는 더욱 끔찍합니다. 크리스탈 워싱턴 씨는 뉴욕 플라자호텔의 고객관리팀에 채용됐을 때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습니다. 대단히 비싼 고급 호텔로 유명한 만큼 그곳에서 일하게 되는 것도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었죠.
“건물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너무 좋아서 숨이 멎을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 동료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태연히 해대며 자신을 끊임없이 성추행하기 시작한 겁니다. “어젯밤에 누구랑 잤어? 딱 보니까 엄청 좋았나보네.” 따위의 말을 하며 그는 틈만 나면 워싱턴의 몸을 만지고 더듬었습니다. 한 번은 그런 장면이 호텔 내 CCTV에 찍히기도 했지만, 워싱턴의 변호사는 경영진이 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워싱턴은 플라자 호텔을 상대로 성추행 가해자를 두둔하고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데 대해 소송을 냈습니다. 워싱턴을 포함해 플라자 호텔에서 일했던 노동자 일곱 명이 소송 당사자로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일을 그만두면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에게 끔찍한 짓을 했던 가해자가 있는 일터로 매일 억지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꿈의 직장에 온 것 같아 한없이 행복했죠. 실상은 끔찍한 악몽 같은 일터임이 밝혀진 뒤로는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플라자 호텔을 소유한 페어몬트 호텔&리조트 그룹은 <타임>에 보낸 성명을 통해 직장 내 성추행이나 괴롭힘이 사실로 밝혀지면 필요한 조치를 취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끔찍한 협박에 시달린 사람은 얼마든지 더 있습니다. 배우 셀마 블레어 씨가 털어놓은 경험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블레어는 영화감독 제임스 토바크가 자신에게 저질렀던 1999년의 일을 털어놓았습니다. 원래는 그날 토바크 감독을 한 호텔 식당에서 만나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토바크는 자기가 머무는 방에서 얘기하는 게 낫겠다며 방으로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방에서 토바크는 블레어에게 연약한 모습을 연기하는 걸 좀 더 다듬어야겠다며 옷을 벗어보라고 했습니다. 블레어는 상의를 벗었죠. 그러자 토바크는 갑자기 성관계를 요구했습니다. 블레어가 거절하자 토바크는 방문을 걸어잠근 채 그녀 앞에서 자위를 하고 강제로 그 모습을 지켜보게 했습니다. 이어 토바크는 그녀에게 “오늘 있던 일을 발설하는 날에는 볼펜으로 두 눈을 뽑아내 허드슨강에 던져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했습니다.
블레어는 토박이 이후 수십 년째 그 일을 들먹이며 자신을 괴롭혔다고 말합니다.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블레어는 토바크에게 시달린 지난날을 털어놓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토바크가 저를 모함하고 뒤에서 욕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제 앞에서 그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도 저를 협박하는 사람이 저에 관해 성생활이 어쩌고저쩌고 말을 하고 다닌다니 그가 더 무서워졌죠. 지난 20년 동안 이 사람이 언젠가 정말 저를 죽이려 들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살았어요.”
(블레어 말고도 토바크로부터 성폭행 시도나 성추행, 협박을 당했다는 피해자가 300명이 넘게 나타났는데, 토바크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거나 만났더라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모두 부인했습니다.)
피해자들은 또 “불만을 토로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 문제는 어떤 의미에서는 부차적인 일이지만, 절대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수잔 파울러에게는 “유명한 성추행 피해자”라는 달갑지만은 않은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파울러가 블로그에 자신이 우버에서 겪은 일을 폭로한 글은 일파만파 퍼져 결국 임직원 20여 명이 사실상 우버에서 쫓겨났고, 마침내 말도 많고 탈도 많던 CEO 트래비스 칼라닉마저 물러났습니다. 유명 셰프 존 베시가 경영하는 레스토랑 그룹의 만연한 여성 차별 문제와 후진적인 문화를 폭로한 내부고발자 린지 레이놀즈도 사실 (겉보기엔) 멀쩡한 조직에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베시 그룹은 동료 직원을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사규를 새로 제정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베시는 사내에서 일어난 “용납할 수 없는 잘못된 행동”과 “윤리적 실패”에 책임을 지고 사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로비스트 아다마 이우도 다른 동료들이 버젓이 함께 있는 한 행사 중에 누군가 자신의 몸을 더듬은 뒤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할 때 비슷한 고민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무엇보다 남자 동료 가운데 방금 이우에게 한 그 행동이 잘못됐으니 사과하라는 말을 한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음 주에 그녀는 비슷한 일을 겪은 여성 피해자 147명을 모아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 공개서한을 보내 이 문제를 고발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꺼낼 때마다 그녀를 격려하는 이보다 경계하며 걱정하는 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정말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겠느냐며 아니타 힐의 사례를 생각해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성추행 가해자가 앞으로 짊어져야 할 죗값이 너무 크지 않느냐며 그 사람의 사정도 좀 생각해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스위프트는 데이비드 뮬러라는 덴버의 한 라디오 DJ가 자신의 치마 속에 손을 집어넣어 엉덩이를 만졌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뮬러는 해고됐습니다. 이어 그는 스위프트 때문에 해고됐다며 수백만 달러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고, 스위프트는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뮬러를 맞고소했습니다. 스위프트는 상징적으로 1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죠. 그리고 지난 8월 스위프트가 법원에 출석해 그간 있던 일을 증언할 때 뮬러 측 변호사는 증인석에 앉은 스위프트에게 결과적으로 뮬러가 해고된 데 책임감을 느끼거나 미안한 마음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스위프트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지금 변호사님과 변호사님의 고객은 어떻게 해서든 제게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느끼게 하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지금 저더러 가해자의 결정으로 저지른 가해자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일의 책임을 나누어지라는 말씀이시잖아요? 제가 내린 결정이 아니고, 저는 그 결과에 관해 안타까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뮬러는 항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특히 바로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화가 치밀어올랐다고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데도 뻔뻔하고 대담하게 제게 그런 짓을 저지른 자가 저보다 훨씬 더 약자인, 을의 처지일 수밖에 없는 젊고 힘없는 아티스트에게는 틈만 나면 얼마나 비열한 짓을 저지를까 안 봐도 훤했어요.”
샌프란시스코의 스튜디오에 모인 여성 다섯 명처럼, 아니면 오랜 침묵을 깨고 단단히 연대하며 당당히 사실을 알리고 잘못을 바로잡고자 한 수천, 수만 명처럼 테일러 스위프트도 더 이상 겁에 질려 아무것도 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배우, 작가, 기자, 주방 보조, 농장 노동자 등 어느 직종이든 ‘이제 정말 참을 만큼 참았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해 수치심을 주고 사실상 침묵을 종용하던 사회에 대한 분노가 동시에 터져 나왔습니다. 두려움은 분노가 되었습니다.
이는 #MeToo 해시태그로 상징되는 소셜미디어상의 흐름을 실질적인 운동으로 이어주는 기제가 됐습니다. 사실 이 문구가 처음 쓰인 건 벌써 10년 전의 일입니다.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폭행과 괴롭힘을 당하고 살아남은 이들과 연대하고 이들의 재활을 돕는 운동을 조직하면서 이 말을 활용했죠. 배우 알리사 밀라노 씨는 한 친구로부터 “Me Too”라는 문구를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 별 생각 없이 10월 15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겼습니다.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했던 적이 있으시면 ‘me too’라고 쓰고 이 트윗에 답을 남겨주세요.
이튿날 아침 밀라노가 일어났을 때 #MeToo 해시태그는 이미 트위터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3만 명 넘는 사람이 밤사이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밀라노는 트위터를 보고 바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언론계,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먼저 용기를 내 흐름에 동참했고, #MeToo 물결은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Me Too”라는 문구의 원저자에 해당하는 버크는 밀라노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친구가 됐습니다. 버크는 미투 캠페인에 크게 고무됐다며 “계급과 인종, 성별을 뛰어넘어 차별받는 모든 약자가 연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1월에는 캘리포니아 농장 노동자들이 할리우드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휘황찬란한 할리우드 조명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성추행의 사각지대에 놓인 약자와 배우들을 향한 연대의 표시였습니다. 파스쿠알도 그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이제 더는 여성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수잔 파울러는 점점 더 내부고발자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지 않고 일종의 명예 훈장처럼 느껴진다며 이제는 옳은 일을 위해 연대하고 함께 떨쳐 일어나는 거대한 사회적 흐름이 형성됐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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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이나 성희롱 문제를 논의할 때 대개 완곡하게 에둘러 표현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성추행 혹은 괴롭힘(harassment)은 “부적절한 행위(inappropriate behavior)”로, 폭행(assault)은 “잘못(misconduct)”으로, 강간(rape)은 “학대(abuse)”로 바뀌어 불립니다. 모두 그 언어와 개념을 직접 입에 담기 어려워서 쓰인 말일 테지만, 우리에게 더 익숙해진 순화되고 완곡한 표현으로는 피해자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온전히 담지 못합니다. “액세스 할리우드”라는 프로그램 촬영 당시 벌어진 일을 담은 동영상이 지난해 10월 공개됐을 때 충격적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2005년 촬영된 동영상에는 45대 미국 대통령이 된 사람이 했던 말이 여과 없이 담겼는데, 이 말은 어떻게 보더라도 천박하기 그지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그냥 어떻게 해보려고 했다거나 그 여자를 애무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로, 옮겨적을 수 없는 표현으로 그는 한 여자를 거의 성폭행할 수 있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 천박하고 저속한 언행이 드러났는데도 도널드 트럼프는 기어이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사람들은 아연실색하고 분노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트럼프 취임 이튿날 거리로 나와 ‘여성 행진’을 벌이며 트럼프 당선에 항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에게 면죄부를 준 꼴이 된 순화된 표현을 단호히 거부하며 여성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는 트럼프 취임식 참가자 규모를 압도했습니다. 노스웨스턴대학교 사회학과의 알돈 모리스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회 운동에는 기폭제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역시 하비 웨인스타인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겠죠. 그 전에는 트럼프가 있었습니다.”
트럼프 후보가 대선 과정에서 콕 집어 비난을 퍼부었던 앵커 메건 켈리는 폭스뉴스에서 일하던 시절 경영진에 간판 앵커 빌 오라일리의 여성을 대하는 태도를 여러 차례 보고하고 문제 삼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현재 폭스뉴스를 떠나 NBC로 방송국을 옮긴 켈리는 자신에게도 트럼프의 해당 동영상이 공개된 순간이 정치적인 행사였던 선거가 개인적인 문제로 바뀐 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켈리는 여성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 사람이 아니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클린턴이 선거에서 이겼다면 이 모든 문제를 과연 똑같이 겪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거둘 수가 없었어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건 분명 모든 여성에게 치명적인 퇴보였고, 여성이 별로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었으니까요.”
2017년 정초부터 워싱턴D.C. 거리는 너도나도 분홍색 고양이 털모자를 쓴 여성들의 분노의 연대로 뒤덮였습니다. 고양이 털모자는 영어로 “pussy hats”로,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단어 “pussy”가 있어 트럼프가 직접 그 단어를 입에 올리며 쏟아낸 천박한 언사에 대한 항의의 뜻이 담겼습니다. 시위대의 규모는 모두를 놀라게 했는데,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위였을 뿐 아니라 미국 전체 50개 주는 물론 전 세계 50개가 넘는 나라로 퍼져나갔다는 점도 놀라웠습니다.
리얼리티쇼 <견습생(The Apprentice)>에 출연했던 서머 저보스 씨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한 20여 명의 여성 가운데 한 명입니다. 트럼프가 자신은 성추행한 적이 없다며 거짓말쟁이라고 그녀를 비난하자 그녀는 대통령 취임식 며칠 전에 트럼프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뉴욕주 법원은 곧 대통령이 재임 중에 민사 소송에 관해서도 불소추특권이 있다고 봐야 하는지 판결을 내릴 예정입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이번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여성들의 타오르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습니다.
2월이 되면 운동의 물결은 억만장자를 꿈꾸는 테크 업체들이 모여 있는 실리콘밸리로 넘어갑니다. 진원은 우버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며 겪은 너무나 이상했던 한 해를 털어놓은 수잔 파울러의 글이었죠.
그 당시 특히 아무도 여성 문제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무기력했었죠. 성폭행을 하려다 못했다는 걸 아쉽게 여기며 입맛이나 다시던 사람이 버젓이 백악관에 입성했으니까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두 달여 뒤 빌 오라일리는 폭스뉴스를 떠났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오라일리와 폭스뉴스가 오라일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 다섯 명과 합의금으로 총 1,300만 달러를 썼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지난 10월, 뉴욕타임스는 여섯 번째 피해자와도 합의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보도했습니다. 합의금 총액은 무려 4,500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오라일리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람 가운데는 폭스뉴스에 패널로 출연했던 심리학자 웬디 월시 씨도 있습니다. 월시는 처음에는 자녀들과 혹시 모를 보복이 두려워 자신의 이름이 공개되기를 꺼렸습니다. “저는 남자들이 화가 나면 어떤 짓을 벌일 수 있는지 잘 알아요.”
고심 끝에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을 널리 알리는 것이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임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제 딸들에게 솔직한 엄마이고 싶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의 모든 여성, 특히 성범죄를 당하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끝까지 모든 혐의를 부인하던 오라일리가 사실상 경질됐지만, 여전히 방송계와 연예계 전체로 놓고 보면 오라일리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지난 6월 안드레아 콘스탠드라는 이름의 여성을 약취유인 후 성폭행한 혐의로 빌 코스비에 대한 재판이 또 열렸습니다. 지금까지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은 거의 50명에 육박합니다. 재판부는 판결을 연기했고, 내년 4월에 재심 일정이 잡혔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일이 뒤늦게나마 법정에서 재판에 회부됐다는 건 아무리 유명하고 사랑받는 인물이라도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는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인식과 사고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로체스터대학교에서 여러 건의 성희롱, 성추행 관련 항의가 접수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계 전반의 성범죄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총 자산규모 40억 달러에 이르는 대부업체 소파이(SoFi)의 최고경영자가 잇단 성추행 혐의를 받다가 사임했습니다. 그리고 10월 초, 마침내 이 사건의 방점을 찍을 만한 사건이 터집니다. 마치 둑이 터지듯 이후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범죄를 처음으로 보도한 건 <뉴욕타임스>였습니다. 10월 5일 신문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제작자이자 민주당의 대표적인 후원자로 잘 알려진 웨인스타인이 실은 거의 평생 끊임없이 성폭행을 하려 하거나 성추행을 일삼았다고 보도했습니다. 곧바로 <뉴요커>가 보도를 이어받았습니다. 웨인스타인에게 성추행이나 성적인 문제로 협박을 당했던 피해자의 목록은 삽시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실로 건드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병적인 수준이었는데, 웨인스타인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느냐와 별개로 그가 영화계와 정치권에서 행사하던 영향력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영화계 인사들 가운데 누구도 그를 두둔하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한때 그를 추켜세우기 바쁘던 정치인들도 그가 낸 후원금을 돌려주고 토해내기 바빴습니다. 당장 그는 자기 회사 이사회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며칠 뒤에는 영향력 있는 예술 제작사인 아마존 스튜디오를 이끌던 수장과 피델리티 금융그룹의 임직원 여러 명이 한꺼번에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돼 회사에서 쫓겨났습니다. 10월 말이 되면 <타임>에서 일하기도 했던 정치 평론가 마크 할퍼린, 영향력 있는 문화 비평가 레온 위셀티어를 비롯해 수많은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가해자로 지목됐습니다. 아카데미상을 받았던 배우 케빈 스페이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람이 나타난 뒤 스페이시는 제작 중이던 영화에서 퇴출당하기도 했습니다.
하비 웨인스타인이 저지른 잇따른 만행이 폭로되자 용기를 내 대중 앞에 선 피해자들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바뀌었습니다. <타임>과 서베이몽키가 11월 28~30일 사흘 동안 진행한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2%는 웨인스타인 스캔들이 터지면서 다른 피해 여성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고 봤습니다. 또한, 응답자의 85%는 피해 여성이 하는 말을 신뢰한다고 말했습니다.
캠페인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가해자가 뒤늦게 밝혀져 대가를 치르기도 했죠. 영국의 마이클 팰론 국방장관은 2003년 당시 29살이었던 제인 메릭 기자에게 몸을 들이밀며 추행했던 사실이 밝혀진 뒤 사임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여성들이 “#MeToo”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Balance ton porc”를 외쳤습니다. 이 말을 옮기면 “당신에게 해코지하려 했던 돼지 같은 놈을 낱낱이 까발리라” 정도가 됩니다. 산드라 뮬러 기자가 생각해낸 이 말은 해시태그로 빠르게 퍼졌습니다. #MeToo가 주목을 끈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전 세계 85개 나라 사람들이 캠페인에 폭발적으로 응답했습니다. 최근 들어 여성을 상대로 한 성폭행과 묻지마 폭력이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된 인도는 물론이고, 중동, 아시아를 비롯해 거의 모든 나라에서 성폭력과 성추행이 주요 의제로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때 친구부터 제가 안 지는 꽤 됐지만 어떤 기준으로 봐도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도 없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을 사람들이 갑자기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0월 25일 자신이 당했던 성희롱과 성추행을 언급하면서 독일 출신 유럽의회 의원인 테리 라인트케가 한 말입니다.
11월이 되자 이번에는 다시 미국 정치인의 행적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레이 코프먼이란 여성을 인터뷰한 기사를 특종으로 내보냈는데, 코프먼은 자신이 14살일 때 당시 32살 지방검사였던 로이 무어가 자신을 추행했다고 폭로했습니다. 로이 무어는 앨라배마주 상원 보궐선거에 나선 공화당 후보였습니다. 이어 총 아홉 명의 여성이 로이 무어로부터 성추행 혹은 희롱을 당했다며 나섰습니다. 이 가운데 자신이 10대 미성년자였을 때 로이 무어가 자신을 추행했다고 주장한 이도 여럿 있었습니다. 무어는 이들의 말을 악의적인 거짓말로 치부하고 자신을 둘러싼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습니다. 그는 11월 말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제게 피해를 봤다는) 이 여성들을 전혀 알지도 못하거나 알더라도 성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일을 저지른 적이 결코 없습니다.”
그 다음 주에는 라디오 진행자 리안 트윈든이 민주당 소속 미네소타 상원의원 알 프랑켄이 2006년 자신과 미군 위문공연을 가던 중 자신의 가슴을 만지려 했다고 폭로했습니다. 당시 프랑켄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이었습니다. 이어 프랑켄 의원으로부터 비슷한 추행이나 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이 몇 명 더 나왔습니다. 프랑켄 의원은 상원 윤리위원회에 직접 자신의 잘못을 낱낱이 조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12월 5일 민주당 소속 미시간 하원의원 존 코니어스는 자신의 비서였던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려 했다는 혐의가 불거지던 와중에 의원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둘러싼 혐의가 “정확하지 않게 부풀려진 측면이 있으며, 틀린 사실도 많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공화당 소속 텍사스 하원의원 블레이크 패런트홀드는 2014년 자신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한 전 부하직원과 합의하는 데 든 8만4천 달러를 세비로 충당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진 뒤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패런트홀드 의원은 자신이 규정을 어긴 것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합의금은 다시 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당적은 사실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리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직접적인 파장은 제한적이었고, 특히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문제를 달리 봤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의 영역에서 자격 미달을 논할 때 사람들은 실제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느냐보다 그 사람이 우리편이나 상대편이냐를 더 따졌습니다. 1990년대 페미니스트들은 성추행을 저지른 빌 클린턴을 규탄하는 대신 감싸고 돌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공과를 더 엄밀히 따져보게 된 뒤에야 많은 이들이 그때 내린 전략적 판단을 후회했죠. 로이 무어가 받은 혐의는 절대 가벼이 볼 수 없는 범죄에 해당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지지했습니다.
<타임>과 서베이몽키가 벌인 여론조사에서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태도가 무척 다르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공화당원들은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이 저지른 성추행 등 성적으로 잘못된 일에 대체로 훨씬 관대한 편입니다. 심각한 문제로 여기지 않죠. 성추행 혐의를 받는 민주당 의원이 사임해야 하는 의견은 응답자의 당적을 불문하고 비슷하게 높지만, 공화당 의원이 혐의를 받을 때 그 의원이 의원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화당원은 적었습니다.
내년이면 벌써 중간선거가 치러집니다. 미국 정치권은 벌써 어떤 잘못이 더 큰 잘못이고 표를 깎아 먹을 결정적인 하자가 될지를 분주히 계산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허락 없이 특정 신체 부위를 더듬는 행위가 빼도 박도 못하게 카메라에 촬영된 것이 더 나쁠까요? 아니면 오래전 이야기지만 신뢰할 만한 언론이 대서특필한 과거 성추행 전력이 더 나쁠까요? 정치 성향이나 정책 방향이 나와 같은 정치인에게는 어느 선까지 잘못을 눈감아주거나 덮어주거나, 혹은 아예 두둔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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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어티 TV쇼나 주요 시트콤에서 직장 상사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비서를 쫓는 장면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입니다. 40여 년 전만 해도 성희롱(sexual harassment)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단어를 처음 쓴 건 코넬대학교 행정직원으로 일했던 카미타 우드라는 여성으로, 우드는 자신의 상사가 자신의 몸을 더듬어 일을 그만둔 뒤 실업 수당을 신청할 때 사유서에 성희롱을 당했다고 썼습니다. 1975년의 일입니다. 코넬대학교는 당시 우드가 단지 개인적인 사정상 일을 그만뒀다고 판단하고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학교 내 인사위원회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아 우드는 “일하는 여성 연합”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고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규합했습니다. 우편물실 관리인부터 식당 종업원, 공장 노동자와 사무직 비서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기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털어놓고 서로 이야기를 들어줬습니다.
이 모임은 현재 소셜미디어상에서 펼쳐지는 캠페인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해 여성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불어넣는 것이죠. 하지만 성희롱, 성추행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법적인 보호장치나 정책적 뒷받침은 사실상 전무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소위 성희롱 예방 규칙이나 준칙을 마련해둔 회사나 조직은 단 한 곳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있는 힘을 다해 문제를 제기하고 목이 터지라 부당함을 외쳐도 성희롱 문제는 문제로 여겨지지도 않은 채 묻혀버리곤 했습니다.
1980년, 민권법을 일터에 제대로 정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발족한 고용평등위원회(EEOC,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는 새로 지침을 내고 성희롱이 민권법 7조를 어기는 범법행위임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분명한 진전이었지만, 한계는 여전했습니다. 성희롱은 이제 엄연한 범법행위가 됐지만, 성희롱을 분명히 규정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성희롱을 당했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란 여전히 무척 어려웠습니다. 법을 어긴 성희롱과 그냥 성격이 괴팍해 마주치기도 싫은 직장 상사나 부하직원과 같이 일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사이의 경계는 과연 얼마나 명확할까요? 어디까지는 그냥 능력도 없고 일도 못 하는데 재수 없게 내 상사로 있는 사람이고, 어디서부터는 선을 넘은 범죄자가 되는 걸까요? 사실 민권법에 구체적인 정의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법을 해석하는 데 판례가 쌓이는 만큼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37년이 지난 지금도 이 법을 둘러싼 해석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셈이죠.
1991년, 상원에서 열린 클라렌스 토마스 대법관 인사청문회에 아니타 힐이 증인으로 나섰습니다. 힐은 토마스 당시 대법관 후보자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전국적인 관심이 쏠렸죠. 힐은 당시 청문회가 일터에서 성희롱을 근절하는 문제보다 이 사안의 몰고 올 정치적 파장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다고 말합니다.
성희롱을 정확히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는 사실 지금까지도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최근 불거진 몇몇 사례 가운데는 누가 봐도 선을 넘은 범법행위가 있는가 하면 모호한 사례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 앞에서 자신의 성기를 일부러 노출하거나 부하 직원을 자기 무릎 위에 앉히려는 행위는 처벌받아야 한다는 데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겁니다. 하지만 동료의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도 되는 기준이 과연 있을까요? 엄연한 사생활이기 때문에 자칫 함부로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성희롱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같이 한잔하러 가자는 말을 함부로 꺼내는 것도 친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해를 살 수 있는데, 과연 언제부터 그래도 되는 걸까요?
필라델피아에 있는 법무법인 듀아네 모리스의 선임 변호사 조나단 세갈은 일터의 인식을 제고하고 훈련하는 데 전문가입니다. 그는 요즘 특히 남자들이 새로운 문화에 혼란스러워하고 지나치게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요즘에는 누구한테 ‘오늘 예쁘네, 멋지네.’ 같은 말도 함부로 못 하고, 만나서 반갑게 나누는 자연스러운 포옹도 괜히 부담스러울 때가 많으며, 어쩌다 회의실 같은 공간에 여자 직원과 단둘이 있게 되면 괜히 내가 뭐라도 오해를 사서 문제에 휘말릴까 두려워진다고들 합니다.”
불확실성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며 커지기 마련입니다. 마치 중독된 사람처럼 성범죄를 끊지 못하는 사람이나 강간범 같은 사회악은 신상을 다 밝혀 완전히 격리해버리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지만, 그러다 보면 자칫 선을 넘어 애먼 사람을 가해자로 몰아세울 위험도 있습니다. 여성을 차별하는 옛날식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사람은 분명 꼴불견이지만, 그 사람이 부하 직원의 몸을 직접 더듬은 상사와 비슷한 범죄자로 취급받는 건 지나칩니다.
그러는 사이 회사들도 나름대로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규범을 받아들이려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웬만한 대기업은 모두 사내에서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따르는 원칙을 상당히 꼼꼼하게 마련해두었고, 많은 회사가 직원들에게 성희롱, 성추행 예방 교육을 하고 성희롱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일터를 만들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지난해 고용평등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트래비스 칼라닉이나 하비 웨인스타인, 빌 오라일리처럼 그 분야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업적을 쌓아온 사람이 성희롱이나 성추행의 가해자로 지목됐을 때 이 거물들을 차마 내칠 엄두조차 못 내는 경영진과 이사회가 성희롱을 근절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혔습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은 그야말로 유명무실이겠죠. 고용평등위원회의 빅토리아 리프닉 위원장 대행은 성희롱 예방 교육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성희롱 예방 교육이 역효과를 낼 때도 있습니다. 오마하에 있는 네브라스카 주립대학교에서 산업조직 심리학을 가르치는 리사 쉐러 교수가 2001년 발표한 논문을 보면 성희롱 예방 교육 덕분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것이 성희롱인지 더 잘 알게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육 때문에 사내 문화가 오히려 더 안 좋은 쪽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쉐러 교수는 특히 교육을 받은 남자 직원들이 사내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을 인지하고도 이를 오히려 보고하고 공론화하는 대신 덮고 쉬쉬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지적했습니다.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지 않은 직원들에 비해 이런 경향이 강해 역효과가 나는 셈입니다.
회사들도 앞으로 있을지 모를 비판이나 소송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보험회사 네이션와이드에 따르면 고용 과정과 경영 중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로 회사가 손해를 볼 때 대비해 가입하는 보험 상품 판매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5% 늘었습니다. 보험 시장 동향을 추적해 분석하는 회사 어드바이센은 이러한 보험상품 가격도 2011년보다 지금이 30% 정도 더 비싸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더 많은 회사가 실제로 손실을 보아 보험금을 신청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여자 직원들은 물론 소비자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을 두려워하는 기업 이사회는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주체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우버는 한때 모든 스타트업이 동경해 마지않던 꿈의 이름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업계의 우버가 되겠습니다!” 같은 말이 지겹도록 들리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규범을 자꾸 어기는 기업이라는 평판이 쌓이면서 이제는 누구도 우버를 본보기로 삼으려 하지 않습니다. 수잔 파울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이를 해치거나 다른 이의 희생을 발판으로 이윤을 내고 착취하는 그런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누구도 주고 싶어 하지 않는 거죠. 대신 기업들은 소비자도 혜택을 보고 회사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도 정당한 대우를 받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합니다. 그 첫걸음이 우버 같은 기업과의 거리 두기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주 정부와 지방 정부도 의미 있는 변화에 동참했습니다. 지난 10월 시카고 시의회는 호텔 객실에서 홀로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위급한 상황이 올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긴급 호출 버튼을 구비하게 하는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일리노이 주의회는 또 의회에 그동안 접수된 성희롱, 성추행 신고부터 자세히 살펴보고 필요하면 사건을 다시 조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애리조나 주의회에는 현재 성희롱 피해자가 문제를 발설하지 않기로 한 약속에 마지 못해 도장을 찍었으면 이 계약을 무효로 하는 법이 발의돼 있습니다.
미국 전체로 범위를 넓혀보면 먼저 연방의회 의원과 의회 직원들이 의무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는 규정을 상하 양원이 통과시켰습니다. 몇몇 상원의원은 이른바 강제중재계약이라 불리는 조항을 제약하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강제중재계약이란 노동자를 고용할 때 회사를 어떤 이유라도 고소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삽입하는 것으로 이 조항이 있으면 성희롱이 일어나도 절대로 회사에 직접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됩니다. 현재 미국 노동자 6천만 명가량이 강제중재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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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상황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무언가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 같다가도 이내 주장과 의견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그라들 수도 있습니다. 다만 분노가 혁명으로 이어질 수는 있어도 진짜 사회를 변혁하는 데 필요한 아주 정교한 규범을 새로 짜는 데는 감정을 앞세운 접근법이 최선이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욱 중요한 것은 법으로 강제하거나 규정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는 일상적인 대화와 설득의 과정입니다.
규범은 시대상에 맞춰 진화합니다. 이제 성희롱이나 추행 자체를 묵인하고 받아들이는 문화는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규정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변화의 정도가 결정될 것이고, 이는 남녀 모두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우리는 범법행위를 찾아내 처벌하고 우리 사회의 다른 구성원을 괴롭히고 갉아먹는 부적절한 행위가 줄어들도록 막아야 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제대로 된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로 기초적인 물음이었지만요. 메건 켈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때 바로 문제를 제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속으로 분을 삭이며 뒤에서 투덜대는 대신 진실을 알리고 주변에도 떳떳이 도움을 청하며 함께 연대하자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서 만약 그런 전략이 먹혔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은 어떻게,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요?”
물론 이렇게 말하는 켈리도 이런 물음과 가정이 여전히 미래의 일처럼 들린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적어도 올해만큼은 세상이 이 물음과 가정에, 그동안 외면해 오던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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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고 야심찬 기사입니다. 긴 글 번역 감사합니다. 뉴스페퍼민트 덕분에 이렇게 쉽게 읽게 되네요.
법이나 규제보다 일상적인 대화와 설득이 사실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와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