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편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2017년 11월 24일  |  By:   |  정치, 칼럼  |  1 comment

*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미셸 골드버그가 뉴욕타임스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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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방송인 리안 트위든도 #MeToo 캠페인에 동참하며 11년 전 자신이 겪었던 일을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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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서 잠이 든 것으로 보이는 트위든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놓고 카메라를 향해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성추행 가해자는 2006년 당시 트위든과 함께 미군 위문 공연을 다니던 코미디언 알 프랑켄입니다. 프랑켄은 2009년 미네소타주 출신으로 상원의원에 당선돼 연방 상원에 입성했죠. 트위든의 트윗을 보자마자 저는 프랑켄 의원이 당장 의원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칼럼을 썼습니다. 그 칼럼이 뉴욕타임스 홈페이지에 실리자마자 내가 너무 지나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말 내내 저는 그 일만 아니었다면 꽤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가차 없이 내쳤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어 랑켄 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가 또 나타났습니다. 린지 멘즈라는 여성은 2010년 미네소타주 박람회 현장에서 만난 프랑켄 의원이 사진을 찍을 때 자신의 엉덩이를 만졌다고 폭로했습니다. 프랑켄 의원은 의혹을 부인하지 않고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멘즈 씨가 우리의 만남에서 불쾌함을 느낀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프랑켄 의원의 처신은 상당히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저는 여전히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몰아세운 저의 주장이 옳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리안 트위든의 트윗을 보고 칼럼을 쓸 때만 해도 저는 상처가 더 곪기 전에 썩은 부위를 깨끗이 도려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앨라바마주 상원의원 직에 도전하고 있는 로이 무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저지른 성추행, 성폭행 의혹에 비하면 죄질이 나쁜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감싸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민주당은 최근 여성이 원하지 않는 신체적 접촉을 강제로 한 성추행범은 선출직 정치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거듭 주장해 왔습니다. 잠이 든 것으로 보이는 여성을 추행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보이는 사진 속 주인공에게 민주당 소속이라고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트위든이 입은 군용 방탄 상의 위로 가슴을 더듬으려는 듯한 프랑켄의 손이 그림자가 진 걸 보면 직접 손이 닿지는 않았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아 줄 사람을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이 가운데 찾기도 어려운 일이었죠. 특히 미네소타주는 민주당이 우세를 보이는 지역인데다 프랑켄 의원이 사임해도 남은 임기를 채울 사람을 임명할 권한을 가진 주지사도 민주당 소속입니다. (공화당에 상원 의석을 빼앗길 우려 때문에 프랑켄 의원의 잘못을 덮어줄 명분도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사퇴를 요구하는 칼럼을 쓰고서도 저는 한편으로 프랑켄 의원이 막상 사퇴하진 않을 것 같다는 전망에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공인으로서 프랑켄 의원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트럼프처럼 평생 온갖 윤리 따위는 깡그리 무시한 채 막살아온 사람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공인으로서 주어진 정치적, 문화적 소임을 충실히 해온 사람이 범죄라고 부르기 다소 애매한 잘못을 저지른 데 대해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을 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최근 들어 온갖 유명인의 성추행, 성폭행 의혹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가운데, 평소 행실은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저지른 잘못이 드러날 때는 그래서 더욱 혼란스럽고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저는 상충하는 두 가지 욕구 가운데서 괴로워해야 했습니다. 성추행이나 성희롱은 근절돼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점을 지지하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온통 잠재적 성희롱 위험 척도로만 바라보게 될까봐 걱정되기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성추행 스캔들에 휘말리면 일단은 그 사람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나섰다가 헛소리나 지껄여대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위선자가 되기는 싫지만, 특히 보수주의자들이 기계적 중립성을 의식하는 언론의 생리를 악용해 자신들의 훨씬 큰 허물을 덮으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보도해야 한다는 기계적 중립성에 갇혀 언론들은 지난 대선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을 지나치게 많이 보도했습니다. 다른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비 웨인스타인 스캔들 이후 속속 드러나는 성추행의 가해자들이 할리우드나 언론, 민주당처럼 대체로 진보 진영에 속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진보적인 문화계나 언론, 정당에 다른 곳보다 성추행이 만연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금융계나 출판계처럼 상대적으로 더 보수 성향을 띠는 업계라고 성추행이 없을까요?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최근 들어 소위 진보 진영에서 성추행 문제가 훨씬 더 불거지는 건 그만큼 진보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조직일수록 성차별과 성추행 같은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같은 인물이 기어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넘어 깊은 충격을 받은 페미니스트들은 공화당 사람들은 이 문제에 관해 아무리 말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신 그들은 넓은 의미에서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쪽을 택하게 된 겁니다. 그 결과 가끔은 진보 진영이 성차별이나 성희롱에 관해 상대적으로 사소한 잘못을 바로잡겠다며 요란을 피우는 사이 원래 양성평등 같은 문제에는 관심도 없던 보수 진영은 더욱 거리낌 없이 구악을 답습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게다가 수많은 사건이 한꺼번에 폭로되면서 그 심각성이 다른 사안이 한데 묶이기도 합니다. 웨인스타인이 거의 평생 수도 없이 저지른 성범죄는 노출증 증세로 보이는 루이스 CK가 저지른 잘못과 같지 않습니다. 프랑켄 의원이 가슴을 만지려 했다는 혐의와 로이 무어가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혐의도 윤리적으로 동일 선상에 놓고 비판할 사안이 될 수 없습니다. 프랑켄 의원은 지금까지 폭로된 사실만으로 의원직을 당장 내놓아야 하거나 적어도 다음번엔 상원의원에 도전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지만, 로이 무어는 지금까지 폭로된 죄질이 더 나쁜 잘못에도 불구하고 상원의원이 되겠다고 기를 쓰고 있습니다.

올바른 가치를 어느 곳에서나 구현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 페미니스트들이 먼저 말이 통하는 민주당부터 잘못을 바로잡자는 전략은 일방적 군축과 마찬가지로 훗날 더 큰 재앙을 초래할 위험이 있습니다. 케이트 하딩은 워싱턴포스트에 쓴 칼럼에서 프랑켄 의원의 사임이 해법이 될 수 없다며 비슷한 주장을 폈습니다.

민주당이 성희롱과 성폭행으로 피해받은 여성을 지지하고 이들과 굳건한 연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런 전례를 만든다면 그 결과 흠결이야 없을 수 없지만, 평소에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기꺼이 표를 던지던 유권자마저 민주당에 등을 돌릴 수도 있다.

게다가 다음번에 어딘가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서 민주당 의원이 의원직을 내놓아야 한다면, 그때도 남은 임기를 채울 사람을 지명할 주지사가 민주당 소속이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보수 진영에서는 즉각 이런 주장을 가리켜 “잘난 좌파들은 한 번쯤 여자 가슴 만져도 된다는 면죄부를 스스로 준다.”며 공격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누구나 아무리 원칙을 앞세울 때도 진영 논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보통 정당의 성격 자체가 개별 의원보다 실제 국민의 삶에 훨씬 더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진정 여성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유권자라면 개인의 흠결이 드러나 그 사람을 뽑지 않기로 마음먹더라도, 여성의 권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거나 심지어 억압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자들이 모여 있는 정당을 대안으로 뽑아서는 안 됩니다.

괜찮은 사람도 완벽하지 않기에 흠결이 두드러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을 내치는 것도, 안고 가는 것도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부담이 가는 일입니다. 진보 진영에서도 추문이 끊이지 않으면서 페미니스트가 내세운 원칙은 빛이 바랬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마저 힘을 잃었죠. 어떤 식으로든 딜레마는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 됐습니다. 우리는 도덕적인 정당성을 잃거나 우리가 좋아하고 심지어 사랑하기도 하는 우리편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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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찬영

    욕 먹을 각오하고 쓴 칼럼임에는 확실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