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정치적인 올바름을 앞세워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검열론자”라는 비난을 들었을 때만 해도 저는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예술가가 인종주의자라는 말을 듣기 싫으면 인종차별적인 작품을 생산하지 말아야 한다”, “강간은 끔찍한 일이니 코미디언이 강간을 농담의 소재로 다룰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라는 식의 악의 없는 비평을 했을 뿐인데도 저런 말들을 들었기 때문이죠.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미디어가 그려내는 여성상에 대해 비판하거나, 여자 주제에 감히 “비디오게임”에 대해 논평을 한 다른 여성들도 비슷한 공격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난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아닌 개인에 불과한 제가 타인을 “검열”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제게는 위험한 강간 조크를 하는 코미디언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 감옥으로 끌고 갈 권한도, 능력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감옥 폐지론자이기도 하고요.
비평과 검열은 엄연히 다릅니다. 트위터에서 “표현의 자유 결사대”가 아무리 저를 공격해도 저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헌법이 저의 편이니까요.
하지만 이는 제가 팩트의 힘을 믿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실이 기준이 되는 대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의 유산을 보존하느니 가벼운 병에 걸려 죽기를 택하겠다고 외치는 삼촌들의 분노가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시대가 올 줄은 몰랐던 것이죠. “표현의 자유 결사대”의 공격을 체감하기 시작한 2012년까지만 해도, 저는 이 주장의 타당성이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만큼이나 희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문화 비평 전반, 특히 여성주의 담론을 겨냥한 “반(反) 표현의 자유” 혐의 제기는 점점 더 확대되어 갔습니다. 이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는 이들은 주로 지금까지는 남성권리포럼이나 비디오게임 블로그처럼 웹 주변부의 커뮤니티에서 불만을 토로하던 남성들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커뮤니티들은 억울함과 여성 혐오라는 정서를 기반으로 한데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외침으로써 스스로 도덕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이를 근거로 “자기 의견을 말하는 약자”를 괴롭히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인 특성입니다.
몇 주 전 열린 온라인 비디오 콘퍼런스 ‘VidCon’에서는 여성주의 문화비평가인 아니타 사르키시안(Anita Sarkeesian)이 여성의 온라인 경험에 관한 토론에 패널로 나갔다가 낭패를 봤습니다. 온라인에서 그녀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객석의 맨 앞 두 줄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들은 무대에 오른 사르키시안을 음흉한 눈으로 바라보며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어댔습니다. 사르키시안은 2012년부터 지속해서 스토킹과 협박에 시달려온 인물입니다. 비디오게임이 그려내는 여성상을 비판하는 유튜브 콘텐츠에 자금을 대는 킥스타터 캠페인을 시작했다는 이유로요. 이후 그녀는 강간, 살해 협박을 당했고, 개인 정보가 유출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녀가 등장하는 행사에서 총기를 난사하겠다는 협박에 이르면, 그녀의 입을 다물게 하는 데 무슨 대단한 내기라도 건 것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이들은 이런 행위가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르키시안 씨가 비디오게임 속 남녀 등장인물들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펼친 것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엄청난 위협이라는 듯이 말이죠.
“여성들은 저나 제 주변 사람들에게 저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해요. 제게 일어난 일을 겪고 싶지 않으니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겠다는 거죠.” 사르키시안 씨가 제게 했던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사라지고 만 목소리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두려워서 입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표현의 자유”는 사치입니다.
그런데도 침묵하기를 거부하는 사르키시안에게는 유무형의 벌이 주어집니다. 사르키시안의 유튜브 영상은 댓글난을 열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활발한 댓글이 달리는 혐오 영상들에 비해 홍보 효과를 누리지 못하죠. 유튜브의 노출 알고리즘에 따른 결과입니다.
“표현의 자유 옹호론”은 디지털 시대의 거의 모든 문화 전쟁 전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슨 말만 하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공격이 튀어나오니, 이런 세태를 조롱하는 단어까지 생겼습니다. 진보 인사들이 “표현의 자유(free speach)”와 발음이 같은 “복숭아를 얼려(freeze peach)”라는 말로 툭하면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는 사람들을 놀리기 시작한 것이죠. 일부 남성 네티즌들이 그토록 열렬히 옹호하는 헌법 수정 1조는 이들에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나를 비난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정 1조는 당연히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버드대학교의 헌법 전문가 레베카 투시넷(Rebecca Tushnet) 교수는 “헌법 수정 1조는 정부의 행위만을 규제한다”고 설명합니다. “A의 작품에 대해 누군가가 비평을 하면 그것이 표현의 자유 침해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투시넷 교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그럼에도 “표현의 자유 옹호론”은 꽤 효과적인 말싸움 전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국인들은 수정 1조의 적용 범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도, 무한에 가까운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미국 문화에 지나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곧 역사의 옳은 편에 깃발을 꽂는 행위이고, 인기 없는 언행을 옹호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양인의 표식이죠.
“‘표현의 자유’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전가의 보도 같은 단어고, 자기 구미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문화적 지배력을 유지하고자 ‘표현의 자유’를 무기로 삼은 것입니다.” 사르키시안 씨의 주장입니다.
사르키시안 씨를 공격하는 트롤들의 진짜 목적은 수정 1조의 수호가 아닙니다. 그랬다면 사르키시안과 조 퀸(Zoe Quinn)을 구속하라는 청원에 8천 명 이상이 서명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겠죠. UN에서 온라인 폭력에 대해 연설했다는 것이 이들의 죄목입니다. 청원에 서명한 한 유저는 이들이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인터넷상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외세(UN)의 개입을 끌어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수정 1조를 지키는 것이 이들의 진정한 목표였다면 백악관이 대통령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언론인들을 기소하기 위해 명예훼손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도 반발을 했어야죠. 정치적 올바름을 박살 내는 것이 진짜 목표였다면 캐시 그리핀이나 스티븐 콜베어, 조니 뎁을 “검열”하는 대신, 마일로 이아노풀로스의 트위터 계정이 정지를 먹었을 때 보여준 정도의 화력으로 지지했을 것입니다.
자유로운 공공 담론을 활성화하는 것이 이들의 진짜 목적이라면, “트럼프는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말한 영상이 폭스뉴스를 탄 후 각종 협박에 시달린 프린스턴대 키앙가-야마타 테일러 교수에게도 열렬한 지지를 보냈어야 합니다. 테일러 교수가 외부 강연 일정을 취소하며 침묵을 강요당할 때, “표현의 자유 결사대”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요?
이들이 진짜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일에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유는 진짜 목표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옹호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닙니다. “사회가 가치의 이름으로 표현의 자유에 제한을 둔다면, 그 선을 정하는 것은 우리여야만 한다”는 것이 이들의 속마음입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유색 인종과 여성이 백인 남성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2016년에 그런 회귀를 약속했던 대통령 후보는 단 한 명뿐이었죠.
트럼프의 당선과 “표현의 자유 옹호론”의 부상은 동떨어진 현상이 아닙니다. 소외된 사람들의 반대 목소리를 수정 1조 위반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그런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될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일견 이성적인 태도로 비칠 수 있는 사이비 지식인의 주장일 뿐입니다. “토론”은 좋은 거니까, 햇볕이야말로 최고의 살균제니까, 우리가 비이성적이고 편견으로 가득한 주장에도 똑같이 “공정하게” 지면과 방송 시간을 할애하면 결국 대중이 그것을 간파하고 외면하게 될 거야! 과연 정말 그럴까요?
불행히도 과학자들에 따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햇볕은 균을 죽이기보다 성장을 촉진하는 경우가 더 많죠. 비판을 검열이라고 몰아세우는 행위는 모든 입장과 시각이 똑같은 대접을 받는 사회, 나쁜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나오는 사회, 거짓이 진실과 같은 대우를 받는 사회를 만들어냅니다.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는 인터넷 문화 전쟁 워리어들과 오늘날 미국 사회의 기후변화 부정, 반(反)낙태 운동, 순결만을 강조하는 성교육, 의료보험을 사치재 취급하는 정서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 옹호론”은 “가짜 뉴스”를 낳았고, 이는 곧 “대안적 진실”로 이어졌죠. 우파가 뽑은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앞장서 표현의 자유를 적대시하는 마당에, 우파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때로는 살균제가 가장 우수한 살균제죠. (뉴욕타임스)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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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처럼 표현의 자유가 없는 후진국도 없을듯. 한국 포탈 사이트에 연예인이나 한국여자 비판하는 댓글 올리면 여자들이 댓글 신고질해서 댓글 바로 삭제 시켜버리는 우스운 나라. 연예인한테 고소 당할까봐 인터넷에서까지 부들부들 떨면서 할말못하는 ㅂㅅ들만 득시글데는 freedom of speech가 전혀 보장이 안되는 후진국
굳이 그런데까지 시간 써가며 댓글 달기도 귀찮고, 누구 욕하는 것 가지고 발언의 자유가 없다고 징징대는것도 우습습디다. 발언의 자유가 소중한 만큼 좀 더 대승적인 차원에서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발언에 자유가 소중하면 왜 유독 한국만 댓글 삭제가 심함? 욕하는것도 칭찬하는것도 다 개개인의 의견 아닌가요? 외국생활 십년넘게 한 사람으로서 한국이 인터넷 센서쉽이 가장 심한거 같던데 님처럼 한국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은 그걸 전혀 모르는거 같더군요. 정치인 대통령 한테는 입에 담지도못할 말을 자유롭게 하면서 연예인이랑 한국여자는 무슨 천연기념물 입니까? 그리고 연예인이 할일없이 인터넷 돌아다니면서 자기 비방 댓글들 모아서 국민들 상대로 고소하는 나라는 세상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을겁니다. 논리적으로 자기 의견 표현 못하고 무조건 남자들 댓글 신고해서 그 댓글 삭제 시키는 자존감 낮은 한국여자도 문제지만 신고 한다고 무조건 댓글 삭제 시키는 시스템이 더 문제더군요. 정말 한국 포털사이트에 코멘트 박스가 왜 있는지 궁금함
개개인의 의견이 무제한으로 허용된다고 하면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나요? 다른 나라에서 허용된다고 해서 그게 꼭 국내법에 적용되어야 할 필요도 없고, 건전하지 않은 비판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걸 자유란 이름으로 포장해 주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인터넷 센서쉽, 그러니까 검열이 중국처럼 '논리적으로 자기 의견 표현 못할' 정도까진 아니라고 전 보는데, 혹시 아닌가요? 혹시 논리에 뭘 좀 많이 섞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유익하고 소중한 글을 읽는 공간인데. 네이버 뉴스에 댓글달던 남자들 좀 안왔으면 좋겠네요. 본인 글 몇 개 삭제당했나봐요?
남자들이 유익하고 소중한 댓글 남기면 신고해서 댓글들 삭제 시켜버리는 열등감 폭팔 여자들 다 사라졌으면 좋겠네요. 외국여자 이쁘다고 글 올리면 삭제. 애 뻑하면 때려죽이는 한국여자 비판하면 삭제. 난 네이버 안하거든? 네이버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인터넷 문화 자체가 신고 좋아하는 여자들 때문에 점점 괴상해 지는데 어디가 찔리세요?
글도 못읽는걸 보니 아마 본인 아이큐 수치가 칼럼니스트 bmi보다 밑에 있을 것 같은데..
5천자가 길다니 평소에 무슨 글을 보고 사는지 이해가 되네요.
남 아이큐 타령하지말고 님 영어 공부나 더 하셔아 할듯. 님이 올린 엉터리 영어 댓글들 영어권 사람들이 보면 아이큐 60 저능아가 쓴거처럼 보일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