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란 수도 테헤란 도심의 한 고층 건물이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화마와 싸우던 20명 넘는 소방관이 목숨을 잃었고, 건물이 붕괴하면서 모두 70명 넘는 사람이 다쳤습니다.
화재 소식은 전 세계에 보도됐습니다. 페르시아어를 쓰는 이란과 주변국 시청자를 겨냥한 BBC의 BBC 페르시아 방송에도 화재는 시시각각 상황을 놓쳐서는 안 되는 무척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란 정부가 BBC 페르시아 기자의 이란 내 모든 취재 활동을 금지한 데다, 주요 언론사나 통신사들의 보도는 신뢰하기 어려웠으므로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BBC 페르시아가 찾은 해법은 이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신저 앱, 텔레그램이었습니다. (전체 이란인의 25% 이상이 텔레그램을 쓰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BBC 페르시아 채널의 팔로워는 71만 3천 명. 이용자들은 이 공식 채널 외에도 BBC 페르시아의 제보 채널도 자주 찾습니다. 테헤란 도심의 화재 이후 BBC 페르시아는 재빨리 팔로워들에게 현지 상황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해 공유해달라는 메시지를 띄웠습니다.
“현재 저희가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취재 방식이라 할 수 있죠. 이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재빨리 파악하고, 보도에 필요한 사진을 확보하려면 시청자와 팔로워들에게 다양한 채널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고, 텔레그램으로 제보 사진이나 영상을 받는 겁니다. 이란의 통신사와 언론사들은 각각 특정 정치 세력과 대단히 가까운 사이에요. 이들이 내보내는 뉴스를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죠. 그래서 같은 소식을 보도한 여러 뉴스를 모아놓고 교차 검증을 해야만 합니다. 시청자들이 보내준 제보와 언론의 보도를 비교해보는 작업도 중요한 검증 절차죠.”
BBC 페르시아의 멀티미디어 에디터인 레이라 코다바크시의 말입니다.
이란 정부는 인터넷을 엄격히 통제하고 검열해 왔습니다. 페이스북, 트위터를 비롯한 많은 소셜미디어 서비스가 폐쇄됐고, BBC 페르시아 웹사이트도 이란 안에선 접속이 차단돼 있습니다. 시민들이 검열을 피해 웹사이트에 접속하려면 VPN을 통해 우회해야 합니다. BBC 페르시아의 방송 콘텐츠도 일상적인 검열 대상입니다. BBC 페르시아는 이란 내에서 서비스가 허용된 소셜미디어 텔레그램을 통해 더 많은 이란 시청자들에게 뉴스를 전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정해진 경로로는 다가갈 수 없는 시청자들을 찾아가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일종의 우회 전략이랄까요? 기존의 소셜미디어 전략과는 다른 방식의 소셜미디어 활용법이죠.”
이란에서 서비스가 허용된 몇 안 되는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도 BBC 페르시아의 중요한 채널입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도 인기가 많지만, 최근 BBC 페르시아 인스타그램 채널의 팔로워 숫자도 1백만 명을 넘었습니다. 코다바크시는 특히 팔로워 가운데 여성이 많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인스타그램을 활용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 가운데 공동체의 확립도 있습니다. 특히 여성이 뉴스에 관해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게 저희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사실 인스타그램이 토론이나 대화에 최적화된 서비스가 아니다 보니 애로사항이 없지 않지만, 어쨌든 BBC 페르시아 시청자들이 중심이 된 토론이 인스타그램 페이지에서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인스타그램은 장단점이 뚜렷한 서비스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페이지 링크를 올리기가 무척 까다롭습니다. 켄트 주립대학의 에마드 카즈라이 교수는 이란 정부가 적어도 아직 인스타그램을 폐쇄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척 제한적이거든요. 특히 사회적인 행동이나 운동에 활용하기는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죠. 이란 정부는 이를 간파하고 대부분 소셜미디어를 차단하면서 시민들에게 몇 가지만 허용한 건지도 모릅니다. 페이스북에서는 예를 들어 비공개로 모임을 꾸리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시위를 조직하기도 쉽죠.”
BBC 페르시아는 인스타그램에 거의 모든 뉴스를 올립니다. 플레이보이 잡지가 나체 사진을 다시 싣기로 했다는 결정부터 오스트리아 정부가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이슬람 전통 복장을 금지했다는 소식까지 다양한 소식이 올라옵니다. 동시에 인스타그램은 BBC 페르시아의 주요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주요 수단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용자를 새로운 페이지로 끌어오기 어려운 텔레그램이나 인스타그램의 특성에 이란 정부의 엄격한 감시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더 많은 시청자를 BBC 웹사이트로 불러오는 건 중요한 목표가 아닙니다. 대신 BBC 페르시아는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널리 알리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코다바크시는 말합니다.
지난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포함한 이슬람 국가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 행정명령을 발동했을 때 BBC 페르시아는 이번 행정명령이 정확히 무엇인지, 해당 국가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등을 상세히 전했습니다.
“요점만 간추린 메신저용 뉴스를 만들어 텔레그램에 뿌렸습니다. 행정명령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 이란 국민이 정확히 어떤 영향을 받을지 등을 정리했죠. 인스타그램에도 맞춤형 인포그래픽, 도표 등을 만들어 올렸습니다. BBC 페르시아 홈페이지에 훨씬 자세한 설명과 해설 뉴스가 있었지만, 인스타그램에 그 링크를 올리지 않았어요. 우리 홈페이지 트래픽이 올라가는 게 우선순위가 아니거든요. BBC 페르시안의 원칙은 그렇습니다. 일단 어디서든 우리를 통해 정보를 얻는 독자의 효용이 우선입니다.”
많은 이란 국민이 메신저 앱을 씁니다. 기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보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 보안 측면에서 뛰어난 점이 메신저 앱의 장점으로 꼽힙니다. 카즈라이 교수는 메신저 앱에는 이용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API 자체가 없다는 점을 대표적인 이유로 들었습니다.
“공개 채널에서 오간 메시지 전체를 긁어서 이를 감시하고 검열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이 메시지를 주고받은 게 누구인지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보를 통제하려는 정부 당국 말고 저처럼 메신저 앱의 이용 환경을 연구하려는 사람에게도 이건 대단히 불편한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데는 대단히 효과적이죠.”
기본적으로 채팅창에 메시지를 주고받는 형태의 텔레그램은 특히 BBC 페르시아의 속보 채널로 많이 쓰입니다. BBC 페르시아는 보통 하루에 텔레그램 메시지를 20개 정도 띄우는데,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1보를 전하는 동시에 이용자들에게 관련 소식이나 사진, 영상 등을 제보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라프산자니 이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한 BBC 페르시아의 텔레그램 메시지 조회 수는 270만 번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슬림 입국 금지 행정명령으로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은 일이 있으면 제보해달라는 메시지에 제보가 잇따랐고, BBC는 이 가운데 몇 가지 이야기를 갈무리해 전체 뉴스 네트워크에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텔레그램과 인스타그램은 이란에서 인기가 높지만, 언제 정부가 서비스를 차단하거나 소비자들이 다른 플랫폼으로 떠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난 2014년, BBC 페르시아는 채팅 앱 바이버(Viber)를 통해 뉴스를 전하려 했지만, 이란 정부가 바이버 서비스를 금지하면서 계획을 바꿔야 했습니다. BBC 페르시아가 여러 채널을 전전하다 텔레그램에 둥지를 튼 건 2015년 말의 일입니다.
BBC 페르시아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이란 국민에게 제약 없이 소식을 전하는 뉴스 채널이 되는 겁니다. 이란의 상황이 바뀌면 BBC 페르시아도 전략을 수정하며 대책을 세울 겁니다.
“항상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대책을 세워놓고 있기는 합니다. 갑자기 정부가 소셜미디어 서비스를 폐쇄하면? 어디에 검열을 강화하면? 갑자기 오늘부로 텔레그램은 문을 닫으라고 통보해 온다면? 그때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우리는 항상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니먼 언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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