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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제도 후진국인 미국, 선두주자 캘리포니아의 변화상

2002년, 캘리포니아 주는 요건을 갖춘 일부 노동자들에게 유급 가족 휴가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육아를 위해 일을 잠시 쉴 수 있는 이 제도는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지만, 미국에서는 최초였습니다. 이 제도는 기존 연방 복지 제도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월급에서 미리 제한 부분을 모아 기금을 마련해두었다가, 중병에 걸린 가족을 간호해야 하거나 새로 태어난 아기를 돌봐야 하는 사람이 유급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새로운 법에 따라 캘리포니아에서 아기를 낳은 부모는 기존 급여의 55%를 받으며 6주 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샌디에고에 사는 아이리스와 일라이 부부도 5개월 전 아들 잭을 낳으면서 이 제도를 활용했습니다. 엄마인 아이리스는 출산 직후 6주를 모두 썼고, 일라이 역시 지금까지 3주를 썼으며 남은 3주는 앞으로 수 개월에 걸쳐 조금씩 쓸 계획입니다. 이들은 유급 휴가 기간이 부모 모두 새로 태어난 아기와 친해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이런 제도가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처음 이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재계의 우려는 매우 컸습니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규모가 작은 사업체는 큰 타격을 입을 거라는 우려였죠. 하지만 뉴욕 시티대학교 루스 밀크먼(Ruth Milkman)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지 않았습니다. 법 시행 5년만에 대형, 중형, 소형 사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기업의 90% 이상이 새로운 제도에 대해 중립 또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응답에 대한 원인으로는 생산성 증진과 직원 사기 진작이 꼽혔습니다. 가족들의 반응도 당연히 좋습니다. 점점 더 많은 아빠들이 이 휴가를 사용하고 있고, 엄마들의 모유 수유 기간도 평균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물론 제도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대형 식품 체인점의 매니저인 일라이와 변호사인 아이리스 부부만 해도 저축해놓은 돈으로 급여가 줄어든 휴가 기간을 버틸 수 있었지만, 저소득 가정에서는 휴가가 있어도 쓰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헐리우드에서 의상 디자이너의 개인 비서로 일하는 키티 젠슨은 출산 직후 상사로부터 충분히 휴가를 사용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남편이 실직 중이었기 때문에 사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원래 나가던 집세에 각종 공과금, 보험료, 생활비는 물론 아기와 관련된 병원비와 기저귀값까지 추가로 들어가는 마당에 그다지 높지 않은 월급의 절반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했죠. 결국 가족은 집안에 있는 값 나가는 물건은 모조리 내다 팔았고, 역시 형편이 좋지 않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이 힘든 시기를 버텼습니다. 휴가 덕에 아기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분명히 좋았지만, 중상층이 아니고서야 마음놓고 휴가를 다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키티 부부의 지적입니다. 밀크먼 교수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분의 1 가량이 새로운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형편이라고 답했습니다.

유급 육아 휴가라는 제도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았죠. 특히 이런 혜택이 누구보다 필요한 이민자, 청년층, 저소득층이 제도에 대해 더 모르고 있었습니다. LA에 사는 클라우디아 치쿠는 대형 세차장 체인에 근무하면서 넷째 아이를 임신했던 몇 년 전까지도 유급 휴가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적은 돈이라도 큰 도움이 되었을거라고요. 지금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유급 육아 휴직 제도를 널리 알리는 시민 단체에서 일을 돕고 있죠.

캘리포니아의 유급 육아 휴가 제도는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휴가 기간 중 받을 수 있는 돈이 월급의 55%에서 60%로 늘어나고 저소득층의 경우는 70%로 늘어납니다. 주 의회는 유급 휴가를 사용하는 노동자들의 일자리 보호를 강화할 수 있는 조치도 취해갈 예정입니다.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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