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에는 어쩌면 남의 마음은 잘 몰라도 내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안다는 당연해 보이는 전제가 깔려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사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카카오 스토리펀딩 10화에 후보로 올렸던 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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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의 머릿속에 들어갈 수 없으며” 따라서 다른 사람의 진짜 속마음은 절대 알 수 없노라고 말합니다. 반면,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있는지를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의식 경험은 자신이 다른 누구도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속을 잘 안다”고 믿게 합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플라톤 이래로 철학자들은 자기 생각에 대한 확신을 당연하게 여겨왔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실험적 탐구 없이도 내적 관찰에 의해 확신할 수 있는 몇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중에는 영혼의 존재와 비물질성(아마 영원성을 포함해), 자유의지와 의미, 도덕적 가치에 대한 자각 등이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에 연재 중인 철학 칼럼 스톤 시리즈에서 게리 거팅은 이러한 철학적 전통이 “우리의 일상적 경험이 가진 의미를 알려줄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의식”을 찾으려는 현대 철학의 시도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설명했습니다. 반면 같은 시리즈에서 토마스 네이글은 이 분야에서 과학이 거둔 승리를 상기시켰습니다.
우리는 내적 관찰, 곧 “마음의 눈(the mind’s eye)”이 직접 우리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므로 내적 관찰이야말로 마음을 이해하는 최상의 방법이고, 때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인지 및 행동 과학의 연구 결과들은 이런 확신에 의문을 들게 합니다. 우리의 상식에 반하는, 인지와 감정, 감각에 관한 실험적 연구들이 거의 매주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우리의 기대나 가정, 편견이 오류로 드러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인식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인지과학, 뇌 영상, 사회과학 실험들은 우리가 자신의 실제 의도를 얼마나 잘 모르는지, 자신의 믿음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 또 우리가 가진 감각이 얼마나 부정확한지를 계속해서 보여왔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어떤 행동을 하려는 마음이 의식에 떠오르는 것은 뇌가 그 행동에 관한 결정을 내리고 난 뒤라는 것을 보인 심리학자 벤자민 리벳의 역사적 실험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1980년대 이루어진 이 실험은 그 후 수백 번 재현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영국의 내과 의사 노렌스 바이스크란츠는 “맹시(blindsight)”라는 능력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앞을 보지 못하는 원숭이들에게서 처음 발견되었고 후에 사람에게서도 발견된 능력으로, 의식적으로는 색깔을 알지 못하는 이가 물건을 색깔에 바탕을 두고 선택하는 능력입니다. 시각 정보에 의해 행동이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의식은 그 색깔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고 자신을 속이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하지만 철학은 수백 년 전 만들어진 데카르트 주의 – 그의 “성찰(Meditations, 1641)”에 실린 내용으로 우리가 자신의 마음에 대해 가진 지식은 다른 어떤 믿음보다도 더 신뢰할 수 있다는 주장- 를 고집해 왔습니다. 갈렌 스트로손은 이 오랜 확신을 역시 스톤 시리즈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의식적 경험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경험을 가진다는 것이 곧 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식적 경험을 가지는 것은 곧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 사실은 이 우주에서 우리가 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궁극의 고유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철학 분야에 존재하는 이런 확신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내적 관찰과 의식이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는 믿음직한 도구가 아니라는 많은 증거를 쌓고 있습니다. 심지어 의식 자체를 탐구하는 목적으로도 이들 도구는 종종 심각한 실수를 저지릅니다.
의식이 저지르는 실수를 알기 위해서는 데카르트가 저지른 실수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는 다른 동물들은 어떠한 정신적 활동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인 구달로부터 시작된 영장류에 대한 자세한 관찰은 이들에게 “마음 이론(Theories of mind)” 능력이 있음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다른 존재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한 “마음 읽기(mind reading)” 능력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마음 읽기란 심리학자들의 용어로, 다른 개체가 행동을 선택하는 데 있어 욕망이나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진화 과정에 있어 유기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개체가 나타내는 위협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했으며,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마음 읽기 능력은 진화에 유리한 특성이었습니다. 인간이 지적으로 이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면, 사바나의 대형 동물들 틈에서 우리와 같은 약한 신체적 조건으로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 읽기는 매우 불완전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으로 이를 유추해야 합니다. 우리는 상대의 머릿속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상대의 믿음이나 목적을 정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예측은 종종 상당히 모호하고 또 자주 틀립니다. 다른 진화적 적응처럼, 마음 읽기 역시 “디자인 관점”에서는 “적당한 수준으로 만들어진” 불완전한 해법입니다. 마음 읽기는 마음 이론과 함께 인간을 서서히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올려놓은, 딱 그 정도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가진 마음 읽기 능력은 인간의 언어 능력과 함께 발달했습니다.
fMRI 연구결과와 자폐증에 관한 연구, 신생아의 “거짓-믿음” 감지에 대한 실험 등은 마음 읽기 능력이 인간 뇌의 특정 부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이것이 타고난 능력임을, 그리고 유전적 문제로 손상되기 쉬우며 신생아/유아에게도 발견된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각 능력이 실은 타인의 마음을 읽는 이 불완전한 능력을 그저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라는 여러 증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흄이 말했듯이 우리가 자신을 인식하는 방법은 심상과 마음의 목소리입니다. 이 두 감각과 감정이 의식의 유일한 내용이며, 내적 관찰을 통해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이런 내적 관찰의 재료는 우리가 다른 이의 행동을 설명하고 예측할 때 우리 마음이 사용하는 재료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바로 시각, 청각, 후각, 촉각, 그리고 때로는 미각 등입니다.
물론 우리는 자신의 욕망과 믿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 실제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보다는 더 많은 정보를, 곧 심상과 마음의 소리를 이용함으로써 다른 이들에 대해서보다 더 많은 것을 자신에 대해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의 마음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더 잘 아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정보의 양에 의한 것일 뿐, 본질적인 차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직접 알 수 없습니다. 피터 캐러더스가 주장한 것처럼, 자의식은 내부를 향한 마음 읽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요? 흄은 아마 이 질문에 대해서도, 내적 관찰을 통해 이를 알게 되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험 과학자들은 그 말에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증거를 토대로 판단합니다. 자폐아는 자신의 동기를 말하는 능력과 자각 능력에 한계가 있으며, 또한 다른 이의 행동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능력 역시 부족합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fMRI 연구에서 마음 읽기 기능이 뇌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증거가 발견되었습니다. 조현병 환자들 역시 다른 이의 마음을 읽는 능력과 자신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종종 모두 상실합니다. 만약 이 두 능력이 독립적인 것이라면, 적어도 어떤 자폐아나 조현병 환자들은 둘 중 하나의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이의 마음을 읽는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인지과학이 밝힌 의식과 작업기억에 대한 연구 결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인지과학은 의식과 작업기억이 “마음에 떠오르기 직전(immediately before the mind)” 여러 가능한 대상 중에 이를 계산하고 결정하고 선택하는 심상과 마음의 소리를 통한 과정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의식에 대해 심리학자들에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은 의식을 “실행(executive)” – 결정과 ‘감정 표현(affective)’을 하는 –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입력된 감각에서 나오는 “전역 방송(global broadcast)”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의식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계획을 파악하는 데 사용하는 감각 정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위의 모든 사실은 철학적인 의미를 넘어 인간에 대한 매우 심오한 결론을 가져다줍니다. 그것은 곧 일인칭 관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자신의 생각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추측할 때처럼 간접적이며 부정확합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의 마음에 직접 접속하는 특권이 없습니다. 만약 자신의 생각으로 자기의 행동과 말, 삶에 진정한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말, 행동, 또는 우리의 생각과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절대로 확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생각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확실히 알 수 있으며 지식을 쌓을 수 있고, 자유의지를 나타낼 수 있으며,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철학자들의 주장은 모두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 위협은 과학적 세계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위협이 아닙니다. 인지과학과 뇌과학이 우리의 마음을 자세히 이해하게 되면서 나온 위협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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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모르고 자신도 모른다는 말이니 참... 어떻게 해야 할 지 알수가 없어지네요.
음.. 데카르트를 인용한 글이긴 한데 뭔가 초점이 잘 맞추어져 있지 않는 글처럼 느껴지네요;
어떤 믿음보다 신뢰할수 있다.. 가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런거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구중 최고 성능이다. 가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구중 그나마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른건 다 엉망인데. 이런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싶네요.
라고 썼는데 글쓴이가 철학자이네요. ㅋㅋㅋ
본문에 명상이라고 번역되어있는 책은 성찰이라고 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네요. 국내에 제가 들고 있는 책은 성찰이라고 제목이 되어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정하였습니다~ :)
데카르트의 실수라.....
다른 동물들의 정신적 활동과는 별개로 나는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끊임없는 부정을 통해서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 순간 만큼은 무엇으로도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서 나온
궁극의 진리가 아닌가요? 인간으로서 존재의 인식이랄까....
본질이나 진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
실제로 그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