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 > 라니에리의 문제는 패배자(loser), 즉 우승할 줄 모르는 감독이라는 평판이었습니다. 실제로 29년 감독 경력 동안 우승 트로피를 단 한 개도 들어 올리지 못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죠. (삐딱하기로 유명한) 영국 기자들은 당장 비관적인 논조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레스터시티는 답이 없다”, “절망적”, “강등은 명약관화” 같은 기사가 쏟아졌죠. 도박사들도 여기에 호응하듯 레스터시티의 2015-16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확률에 5,000대 1이라는 배당률을 책정합니다.
5,000대 1이라는 배당률은 어차피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치고는 꽤 높은 수치이기도 했습니다. 더브너 부자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까요?
(솔로몬) > 아버지, 제가 내년도 슈퍼볼 우승팀으로 클리블랜드 브라운스를 꼽으면 뭐라고 하실 거예요?
(스덥) > 아들아, 뭐 잘못 먹었니? 어떻게 된 거니?
(솔로몬) > 맞아요. 레스터시티가 우승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정확히 미친 사람 취급받았을 거예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클럽의 우승. 깜짝 우승이란 말로도, 대이변이란 말로도 이 현상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할 만큼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물론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죠. 축구는 결국 피치 위의 11명이 뛰어서 승부를 가리는 일이니 선수들부터 살펴볼까요?
(로베) > 제가 인터뷰한 선수 몇몇도 사실 자기들도 어떻게 이런 기적을 일궈냈는지 잘 모른다고 말할 정도예요. 그렇지만 어쨌든 레스터시티는 선수단 구성을 기가 막히게 잘했습니다. 돈이 없는 구단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이 있다면, 부자 구단은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사실 잘 꿰기만 하면 보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구슬 서 말을 찾아내 저렴한 값에 모으는 것이겠죠. 레스터시티는 그 ‘머니볼’의 축구 버전에 해당하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겁니다.
리그 득점 공동 2위를 차지하며 잉글랜드 대표팀에도 발탁된 제이미 바디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4년 전만 해도 바디는 5부리그에서 뛰는 별 볼 일 없던 선수였습니다. 직업도 프로축구 선수라기보다는 세미 프로에 가까웠죠. 실제로 바디는 공장에서 일하며 축구도 하는 투잡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옮긴이: 제이미 바디는 현재 빅클럽 아스널로 이적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일단 다음 주 열리는 유로2016에 집중한 뒤 레스터시티에 남느냐 떠나느냐가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17골로 득점 5위에 어시스트 11개를 기록한 리야드 마레즈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영입이었습니다.
(로베) > 마레즈는 빅클럽들도 한때 눈여겨봤던 선수이긴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팀이 ‘피지컬’에 의문을 표하며 그를 영입하지 않았죠. 거친 잉글랜드 축구 리그에서 살아남기엔 몸싸움이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마레즈는 레스터시티의 공격 선봉에서 맹활약했고, 부상 없는 시즌을 보내며 피지컬에 붙었던 물음표를 지워버렸습니다. 바디나 마레즈뿐 아니라 모든 선수가 서로 잘 어울리며 하나의 팀으로 똘똘 뭉쳐 시즌을 치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입니다.
별 기대를 받지 못했던 라니에리 감독이 내린 몇 가지 결정도 주효했습니다.
(로베) > 라니에리는 레스터시티를 아주 빠르고 조직력을 극대화한 팀으로 만들었습니다. 레스터시티는 엄청나게 빠른 역습으로 상대편의 뒷공간을 유린했습니다. 강팀들이 상대적으로 주춤한 시즌이었던 것도 레스터시티에는 행운이었습니다. 아스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첼시, 리버풀 등 빅클럽은 모두 감독과 프런트의 갈등, 선수 영입, 전술 등 모든 측면에서 어딘가 완성도가 떨어진 채 시즌을 보냈습니다. 감독이 중간에 교체되거나 시즌 중에 기본 전술을 통째로 갈아엎기도 했죠. 레스터시티에는 운도 따랐던 겁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아무리 운이 좋고 팀 케미스트리라고 불리는 조직력이 물샐 틈이 없고 스카우트들이 평생 한 번 있을 법한 대박 영입을 성사시켰다고 해도 여전히 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레스터시티의 우승은 여전히 논리적으로 설명이 어려운 기적에 가깝습니다.
(지키) > 자, 제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선수 연봉 총액을 계산해봤습니다. 레스터시티는 (스무 팀 가운데) 12위에 해당합니다. 시즌 초중반 선두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맨체스터 시티 같은 경우 대략 선수들의 몸값 총액이 레스터시티 선수들의 네 배 정도 되죠. 선수 연봉과 리그 순위 사이에는 대개 높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비싼 선수가 많은 팀이 잘하는 건 당연한 이치죠.
(스덥) > 그럼 영국에서, 아니 축구사를 통틀어 이번 레스터시티처럼 선수들 몸값이 낮았던 약팀이 깜짝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나요?
(지키) > 없지는 않습니다. 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요. 1979년 잉글랜드 사람들이 역대 최고 명장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이 이끄는 노팅엄 포레스트가 당시 1부리그였던 잉글리시 풋볼리그를 제패했었죠. 클러프 감독은 특히 저평가된 선수들을 한데 묶어 저력 있는 팀을 만드는 데 비상한 재주가 있었습니다. 앞서 1974년 마찬가지로 약팀이었던 더비 카운티를 이끌고도 비슷한 성공 신화를 써내려갔으니 클러프 감독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명장이었죠.
(스덥) > 그럼 교수님은 미국 팀 스포츠에서는 연봉 총액이나 구단의 재정 상황과 팀 성적 사이에 상관관계가 훨씬 약한 이유가 앞서 언급된 이윤 공유나 드래프트 제도 등 구단에 부과되는 제약 때문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지키) > 분명 그렇습니다. 종목마다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예를 들어 메이저리그 야구의 경우 팀 성적이 선수들의 몸값과 대체로 비례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미식축구 NFL을 보면 선수들 몸값의 총액이 구단별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거든요. 그래서 돈이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자체가 되지 못하죠. NFL에 현재 존재하는 각종 제약을 다 걷어내고 나면 돈과 성적이 비례하는 현상이 반드시 나타날 겁니다. 아니, 따로 상황을 가정해볼 것도 없이 대학 미식축구가 현재 딱 그런 상황입니다. 현재 선수를 뽑고 팀을 꾸리는 데 대학교들은 사실상 제약을 받지 않거든요. 그 결과가 어떤지는 다들 아시겠지만, 특정 강팀이 매년 각 지구에서 우승을 반복하고 있죠.
(스덥) > 그럼 좀 거창한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스포츠 시스템과 유럽의 스포츠 시스템이 팀 간 전력 균형, 혹은 평등과 관련해 왜 이렇게 추구하는 게 다른 걸까요?
(지키) > 글쎄요, 사실 저도 이 사실에 아직도 가끔 놀라곤 합니다.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문제는 기회의 평등이냐 결과의 평등이냐 문제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유럽 사람들은 대체로 결과의 평등을 추구합니다. 사회복지와 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죠. 하지만 전통적으로 기회의 평등에는 취약했던 사회가 또 유럽이죠. 귀족과 농노라는 계급제가 있었고, 아직도 사회적인 계층에 따라 삶이 상당히 다르니까요. 미국은 정반대입니다. 기회는 훨씬 더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누구든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큰 편이죠. 대신에 사회적인 안전망은 상당히 부족합니다.
유럽은 또한 금융 위기가 잇따른 경기 침체를 겪었습니다. 스포츠 리그는 눈 뜨고도 코를 베일 만큼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됐습니다. 밀려나면 아래로 떨어지는, 강등되는 시스템이 그런 정서에 잘 맞는지도 몰라요. 반대로 미국의 프로스포츠 세계는 굉장히 닫혀 있고, 치열한 경쟁보다 거의 사회주의식으로 보일 만큼 자원을 골고루 나누어 쓰며 구단들끼리 함께 번영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스포츠 세계의 사고방식은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만큼 치열한 경쟁을 장려하는) 사회 전반적인 사고방식과 그렇게 달라요.
(스덥) > 그렇다면 전력의 균형, 공평함을 추구하다 보니 거의 카르텔을 형성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데요, 분명 제가 이해하기로도 ‘일단 우리 안에 들어와서 같은 편이 되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성공은 보장해줄게.’와 같은 사고방식은 정치 시스템에서도, 사회적으로도 미국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교수님은 어쩌다 미국 스포츠가 이렇게 미국답지 않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도 연구해보셨나요? 연구 결과 얻은 결론이 있다면요?
(지키) > 우선 리그가 성공을 거두려면 약팀을 배려해 전력이 엇비슷한 팀들이 경쟁해야 한다는 믿음이 미국 스포츠에 오래전부터 뿌리 내리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느 정도 오래되었냐면, 1880년 미국의 전국 야구리그 기록에도 이런 논의가 나와요. 반면에 유럽 축구 역사 어디를 살펴봐도 팀 간의 균형, 평등이 중요했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현재 각국 리그를 봐도 알 수 있는데, 현재 유럽 최강 리그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여전히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라는 양대 클럽이 수익이나 구단 운영에서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리그입니다. 전통적으로 구단 간 격차가 큰 프리미어리그도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죠. 여러 나라의 유럽 축구리그가 올리는 수입이 연간 250억 달러 정도 됩니다. 이는 NFL, MLB, NBA의 연간 수입을 합친 것과 맞먹는 액수죠. 결코, 사업적으로 실패했다고 보기 어려운 숫자입니다. 여전히 유럽 축구팀은 매력적인 투자처이고, 실제로 미국 자본도 많이 진출해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팀 가운데 미국 자본이 소유한 구단도 여럿 있고요. 그러니까 전반적으로 유럽 축구팀 간에 전력이 엇비슷하지 않아서 사업에 차질이 생긴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다만 미국의 경우 팀 간 균형을 맞춘다는 명목하에 사실상 카르텔이나 다름없는 짬짜미가 일어나면 리그의 수익을 공평하게 나누어 구단주만, 투자한 자본만 이득을 보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는 점은 구단들이 유념해야 할 문제죠. (프리코노믹스)
(4부는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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