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시티, 축구, 스포츠, 자본주의, 그리고 경쟁과 평등 (2)
2016년 6월 7일  |  By:   |  경제, 스포츠  |  No Comment

1부 보기

지만스키 교수가 말하는 유럽의 각 리그란 스페인 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아, 프랑스 리그앙, 독일 분데스리가, 그리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이렇게 5대 리그입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는 총 20개 팀이 한 시즌 총 38경기를 치러 가장 많은 승점을 획득한 팀이 우승을 차지합니다. 20개 팀은 매시즌 달라집니다. (이 점이 미국 스포츠와 상당히 다른데, 뒤에 살펴보겠습니다) 경기에서 이기면 3점, 비기면 1점을 승점으로 얻고, 지면 승점을 얻지 못합니다. 플레이오프를 비롯해 포스트시즌 경기는 없습니다. 지구가 나뉘어져있거나 특정 팀과 더 많이 경기를 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8월에 시작해서 이듬해 5월에 끝나는 아홉 달간의 시즌에서 그 팀의 진가는 성적으로 나타납니다.

(로베) > 분명 아스널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같은 빅클럽이 프리미어리그를 주름잡아 왔죠.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지난 23년간 우승을 차지한 팀은 딱 다섯 팀밖에 없습니다. 마치 신이 주신 권리처럼 이를 나눠갖고 다른 팀에게는 좀처럼 물려주지 않았죠.

(지키) > 특히 미국 스포츠팬들에게는 이런 시스템이 아마도 낯설 겁니다.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미국 스포츠리그는 유럽 축구에서처럼 특정 클럽이 압도적인 전력을 갖추고 매번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도록 사실 구단에 여러 가지 제약을 두고 있습니다. 총연봉 상한제인 샐러리캡이나 구단들이 리그가 거둔 수익을 나누어갖는 것이 대표적이죠. 이밖에도 구단들끼리의 무한경쟁을 막는 장치가 상당히 많은데, 유럽 축구에는 이런 장치가 거의 없습니다. 소위 빅클럽이 돈만 있으면 매번 우승할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인 전력을 갖추어도 이를 견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죠.

(스덥) > 미국에는 또 드래프트 제도가 있잖아요. 프로에 오려는 아마추어 선수들을 모든 팀이 다같이 뽑는 일종의 공채 시험 같은 건데, 여기서는 대개 가장 약한 팀이 좋은 선수를 먼저 뽑을 권리를 얻곤 하죠. 유럽 축구에는 이런 드래프트 제도 같은 것도 없겠죠?

(지키) > 없습니다. 실제로 각 구단은 젊은 선수를 발굴하러 전 세계를 누비고 있습니다. 아니, 젊은 선수가 아니라 잠재력이 풍부한 어린 선수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열 살도 안 된 어린 선수를 스카우트해 오니까요. 돈 많은 명문 구단들은 전 세계 어디든 스카우트를 보낼 여력이 있지만 중소 클럽들은 꿈도 못 꾸는 일입니다.

(스덥) > 명문 구단이 돌아가며 우승을 차지하는 유럽 축구리그의 특징을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메이저리그 야구와 비교해주시면 어떨까요?

(지키) > 제가 동료 학자 몇 분과 함께 몇 년 전에 이 주제를 연구한 적이 있어요. 저희는 주어진 기간 동안 몇 팀이나 리그 전체 5위 안에 들 수 있는지를 산술적으로 계산해보고, 실제로 몇 팀이 5위 안에 들었는지 기록을 살펴봤습니다. 메이저리그 야구 같은 경우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20~30년의 기록을 살펴보면 전체 팀의 60~70%가 적어도 한 번은 리그 5위 안에 들었을 겁니다. 메이저리그는 지구별로 나누어 순위를 정하기에 공식적으로 전체 순위는 집계하지 않지만, 각 팀의 정규시즌 승률을 계산해 가상의 전체 순위를 매겼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똑같이 20~30년 동안 유럽 축구리그에서 한 번이라도 5위 안에 드는 팀이 몇 팀이나 되는지 살펴보면 대략 10~15%에 불과합니다. 이 공식은 “5위 안에 한 번이라도 든 팀의 숫자”를 “리그에 참가한 전체 팀 숫자”로 나눈 것이겠죠. 메이저리그 야구가 5위 안에 한 번이라도 드는 팀이 더 많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유럽 축구가 리그에 참가한 전체 팀 숫자가 더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바로 미국에는 없고 유럽 축구에만 있는 승격, 강등 제도 때문입니다.

(로베) > 축구 구단에 있어 강등(relegation)은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문 도어”처럼 다른 세상으로 떨어지는 문 같은 겁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경우 매 시즌 하위 세 팀은 한 단계 아래 리그인 하부리그로 강등됩니다.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매년 가장 성적이 안 좋은 몇 팀을 골라 마이너리그 트리플A로 보내버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네, 성적이 가장 안 좋은 세 팀에게 강등은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미국 프로스포츠에는 존재하지 않는 제도죠. 사실 그런 게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스포츠 말고 정치에서도 말이죠. 국회의원도 일 잘 못 하는 의원은 강등시키면 어떨까요?

자자, 어쨌든 성적이 안 좋은 세 팀을 하부 리그로 강등시키면, 그 자리는 반대로 하부 리그에서 성적이 가장 좋은 세 팀이 채웁니다. 상위 리그로 승격(promotion)하는 것이죠. 그래서 매시즌 상위 리그에서 하위 리그로 세 팀이 내려오고 반대로 하위 리그에서는 세 팀이 상위 리그로 올라갑니다.

(옮긴이: 미국 프로축구 메이저리그 사커(MLS)는 유럽식 승강제 대신 연고지 이전 등의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프로축구 K리그는 지난 2013년부터 1부리그 K리그 클래식과 2부리그 K리그 챌린지를 운영하며 각각 12팀인 클래식과 챌린지리그 팀들 가운데 최대 두 팀씩 자리를 바꾸는 승강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884년 창단한 레스터시티도 승강제에 따라 여러 리그를 오르내렸습니다. 7년 전에는 3부리그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유럽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잉글랜드 축구리그에는 엄청난 돈이 오가는 프리미어리그부터 세미프로, 아예 아마추어 리그인 주말리그까지 다양한 층위의 리그가 있습니다. 실은 프리코노믹스 라디오가 후원하는 클럽도 있습니다. 슈루즈버리(Shrewsbury)를 연고로 하는 던카우FC라는 구단인데, 던카우FC가 속한 리그는 프리미어리그보다는 한 20단계 아래에 있는 아마추어 주말 리그입니다. 갈 길이 멀죠. 그래도 이번 시즌을 잘 치른 던카우FC는 한 단계 승격했습니다. 이제 프리미어리그까지는 열아홉 번만 더 승격하면 되겠네요! 어쨌든 레스터시티는 2년 전에 2부리그인 챔피언십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습니다. 오랜만에 승격한 프리미어리그는 녹록치 않았습니다. 시즌 후반부에 접어들어서도 좀처럼 힘을 내지 못했죠. 많은 사람이 레스터시티도 승격 첫 해에 바로 다시 강등당하는 운명을 피하지 못하리라 예상했습니다.

(로베) > 2015년 4월 17일, 그러니까 2014-15 시즌 종료를 한 달 정도 앞둔 시점만 해도 레스터시티는 리그 최하위였어요. 가망이 없어 보였죠. 아홉 경기 남은 시점에서 여전히 무기력한 최하위였는데,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프리미어리그 잔류에 성공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그런데 여기서 기적이 일어나요. 레스터시티가 남은 아홉 경기 중 일곱 경기를 이기고 극적으로 살아난 겁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죠.

이 놀라운 기록이 바로 레스터시티의 “위대한 탈출”입니다. 더브너 부자가 런던에서 관전했던 토트넘과의 경기는 레스터시티가 갑자기 승점을 쌓고 강등권 탈출에 시동을 걸기 직전 경기였죠. 시동은 그때부터 걸렸는지 모르지만요. 어쨌든 마지막 아홉 경기 중 일곱 경기를 승리하며 극적으로 잔류에 성공했지만, 문제는 또 다른 곳에서 터졌습니다.

(로베) > 당시 레스터시티는 나이젤 피어슨이라고 고집불통 독불장군식 스타일로 유명한 감독이 이끌고 있었어요. 좋게 말해 독불장군이지 경기 중 상대편 선수의 목을 조를 정도로 도가 지나칠 때가 많은 인물이죠.

시즌이 끝난 뒤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최악의 사건이 터졌습니다.

(로베) > 태국의 사업가 비차이 스리바다한나프라바가 구단주로 있는 레스터시티는 잔류에 성공한 직후 태국으로 투어를 떠났습니다. 태국에 가는 것부터 팀의 전열을 정비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이었죠. 어쨌든 그러다 태국에서 레스터시티 선수 몇 명이 매춘부를 불러놓고 노골적으로 인종차별 행위를 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유출됩니다. 선수들 가운데는 피어슨 감독의 아들이자 레스터시티 소속으로 다른 구단에 임대를 갔다 복귀한 제임스 피어슨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태국인인 구단주에게 개인적인 모욕이었을 뿐 아니라, 동영상으로 인해 구단 전체의 명예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아무리 나이젤 피어슨이 위대한 탈출을 이끈 감독이라도 이번 만큼은 징계를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소셜미디어상에서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자 피어슨은 결국 경질됐습니다.

구단은 새로운 감독으로 이탈리아의 신사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을 선임합니다. 선발 명단을 자주 바꾸고 다채로운 전술을 실험하는 것으로 알려진 감독이었습니다. 문제는 라니에리에 대한 전반적인 평판이었습니다. (프리코노믹스)

3부 보기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