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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노스 사태의 숨은 범인

지난 몇 년간, 언론이 테라노스 사의 신동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와의 인터뷰를 요청하면 홍보팀은 딱 두 가지, 곧 언제 그리고 어디서 인터뷰를 하면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홈즈는 스타였습니다. 그녀는 마치 유세중인 정치인처럼 텔레비젼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스탠포드의 바늘을 무서워하던 신입생이 피 한방울로 모든 병을 진단한다는 테라노스를 창립하는 이 매력적인 이야기는 방송에 적절했고, 블로거, 리포터 등과 카메라 앞에 앉은 그녀의 모습은 끝없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4월, 월스트리트저널의 심층취재전문가 존 카레이루는 자신에게 어떤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말하며 홈즈와의 인터뷰를 요청합니다.

두 달 동안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던 테라노스 홍보팀은 6월 23일 오후, 한 무리의 변호사를 월스트리트저널의 맨하탄 사무실로 보냈습니다. 5층의 뉴스룸으로 들어온 그들을 이끈 이는 빌게이츠의 담당 변호사이자 앨 고어의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로 유명한 슈퍼스타 변호사 데이비드 보이즈였습니다. 테라노스 대변인과 다른 4명의 변호사와 함께 그는 긴 테이블의 양쪽 끝에 녹음기를 설치한 후, 카레이루와 그의 상사, 그리고 월스트리트저널의 변호사와 마주 앉았습니다.

그들은 앉자 마자 월스트리트저널이 테라노스의 “거래비밀”과 “지적 재산권”을 위협했으므로 소송을 걸겠다고 협박했다고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이는 내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큰 소리로 겁을 주며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습니다. 5시간 동안의 논쟁 후 보이즈와 그 무리는 소송을 곧 시작할 것 같은 분위기를 남긴 채 떠났습니다. (보이즈와 테라노스의 대변인은 이 일을 묻자 답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테라노스 내부의 지인은 보이즈가 물러난 이유를 월스트리트 저널이 중요한 내부문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테라노스 경영진이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4개월 동안 카레이루는 계속해서 홈즈에게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끊임없이 그는 위협받았습니다. 마침내 10월, 월스트리트저널은 테라노스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며, 그들의 기술에는 오류가 많을 뿐 아니라, 주요한 테스트를 위해 다른 회사의 기기들을 사용했으며, 어떤 테스트 결과는 매우 부정확하다는, 지금은 매우 잘 알려진 그 기사를 실었습니다. 카레이루는 그 회사의 이야기가 사실이기에는 너무 대단했다고 썼습니다.

몇 달 동안 사태는 테라노스에게 점점 불리하게 돌아갔습니다. 미국의 공공보험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는 테라노스의 뉴아크와 캘리포니아 연구소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테라노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미국 변호사협회의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규제기관은 홈즈와 테라노스를 2년간 업계에서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데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할 곳은 한 두 곳이 아닙니다. 당연히, 자기 회사의 기술을 계속해서 과장했던 홈즈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투자한 이들, 그녀를 칭송한 이들, 그리고 그녀보다 훨씬 나이 많은, 모두 백인 남성있던 테라노스의 이사진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녀와 그녀의 회사를 감독해야할 의무가 있었지만 그 중 의료계를 실제로 경험한 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뜯어다 보면, 이런 사태를 만든 가장 악의적인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그것은 바로 실리콘 밸리의 테크 언론들입니다. 그들은 홈즈가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기술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의문을 표하지 않았으며, 그저 그녀의 회사를 감싸기에 바빴습니다. 특히 그녀를 “차세대 스티브 잡스”라고 거듭해서 부르며 (그녀는 검은 터틀넥을 자주 입었습니다) 그녀의 기술이 의심의 여지 없이 사실로 보이도록 그녀를 찬양했습니다.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행사에서 블로거 존 쉬버는 홈스와 인터뷰하며 자신의 피를 테라노스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나 테라노스의 기술이 정말 동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 않았고 그저 그녀를 칭찬하기 바빴습니다. 테크 언론들이 그녀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자 주류 언론도 자연스럽게 그녀를 실었습니다. 뉴요커에 그녀에 관한 장문의 기사가 실렸으며, 뉴욕타임스 스타일 매거진인 T의 표지에 그녀의 얼굴이 등장했습니다. (홈즈는 베니티 페어가 꼽는 떠오르는 기업가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으며 2015년 기업가 서밋에서 연사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카레이루가 테라노스에 의문점을 가지게 만든 것은 바로 뉴요커 기사를 쓴 켄 아울레타가 남긴 한 문단이었습니다. 아울레타는 테라노스의 비밀주의에 관해 냉소적으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국가 기밀처럼 다루어지는 그 기술에 대한 홈즈의 묘사는 우스꽝스러울정도로 모호하다.” 예를 들어 홈즈는 “화학반응이 일어납니다. 샘플이 만드는 화학반응에서 나오는 신호로부터 결과를 분석하게되며, 그 결과는 실험실의 전문가에 의해 검증됩니다.”

이미 두 번의 퓰리처 상을 받은 카레이루는 그 문단을 보고 (이제 당신도 그러하듯이) 자신의 머리를 긁었습니다. 곧 그는 테라노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회사가 심각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듣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홈즈와 테라노스는 그런 주목을 받게 된 것일까요? 그녀는 실리콘 밸리의 테크 언론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리콘 밸리는 이제 기자들이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지 못하게 하는, 그런 지역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건 이 지역에 있는 언론이 지켜야할 룰이며, 이를 어길 경우 커다란 댓가를 치르게 됩니다. 어떤 기술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쓸 경우, 그 언론은 다음 제품의 정보를 다른 언론들과 달리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됩니다. 한 번 까다로운 질문을 한 기자는 CEO 와의 인터뷰를 다시는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위의 법칙을 잘 지킬 경우, 당신의 웹사이트에는 사람들이 몰려오며 블로고스피어에서는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다수의 테크 언론이 자신들의 수입으로 테크 컨퍼런스에 의지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웹로그스(Weblogs)의 창업자이자 블로거인 제이슨 칼라카니스는 말합니다. “테크 언론들을 잘 살펴보면, 그들이 여는 컨퍼런스가 그들에게 큰 수입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만약 특정 회사를 너무 심하게 다루면, 먼저 키노트 연사를 구하지 못하게 되고, 또한 티켓을 많이 팔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테크 업계의 지원 역시 줄어들게 됩니다.”

물론 테크 언론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들 역시 진정 세계를 바꾸려 하는 회사를 다루고 싶어한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홈즈는 정확히 그들이 원하던 대상이었습니다. 영리했고, 야심이 넘쳤으며, 잡스를 추앙했고, 무엇보다도, 다른 실리콘 밸리 회사들과 달리 테라노스는 피자배달 앱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이 회사는 진정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회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테크 언론들이 알지 못했던 것은, 의문을 갖지 않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신들은 유죄가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태도가 오늘날 꺼져가는 테크 버블 사태를 만든 실질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카레이유는 말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괜찮아. 스마트폰 앱이나 소셜 네트웍 앱이라면 제품에 좀 문제가 있어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사람이 그걸로 죽지는 않아.’ 그러나 의학 분야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의 테크 언론들은 테라노스를 그저 하나의 앱처럼 다루었습니다. 그들에게 누군가가 부정확한 처방을 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스토리가 그럴듯 한가 였습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테라노스 사태를 통해 적어도 벤처 캐피탈리스트들의 판단력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ATA 벤처나 드레이퍼 피셔 유베스톤과 같은 몇몇 지역 VC를 제외하면, 주요 VC 들 중 누구도 테라노스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홈즈를 “세상에서 가장 어린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로 만든, 2014년 회사가치를 9조로 상정하고 받은 2000억원의 투자금은 대부분 사모펀드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테라노스의 이사진에는 마이클 모리츠, 존 도어, 피터 틸의 이름이 없습니다. 마크 안데르센은 홈즈에 의문을 가지는 트위터 팔로워를 블록하며 그녀를 차세대 스티브 잡스로 대하는 등 꾸준히 홈즈를 지지했지만, 자신의 회사인 안데르센 호로비츠는 테라노스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테라노스에 투자한 VC 들도 이제 그녀와 거리를 두려 하고 있습니다. 드레이퍼 피셔 유베스톤의 “주요 투자목록”에 올해 초 까지만 하더라도 있었던 테라노스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내가 몇몇 VC들에게 왜 세상을 바꿀것처럼 보이는 그 회사에 수백억원을 투자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들은 테라노스의 사업계획서에는 너무 많은 것이 비어 있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녀 역시 주요 VC 들을 만났지만, VC 가 그들의 기술에 대해 물었을 때 홈즈는 그것은 너무 큰 비밀이기 때문에 이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이 기술이 학계의 검증을 받았느냐고 물었을 때에도, 그녀는 이 기술의 비밀은 다른 과학자들에게도 밝힐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테크 언론도 VC처럼 행동했어야 합니다. 홈즈가 자신들의 기술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설명하지 못할 경우, 볼로거들은 그녀에 대해 처음부터 쓰지 말았어야 합니다.

카레이루의 기사 이후, 홈즈는 언론과 방송에서 모습을 감췄고, 자신의 회사와 자신의 일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녀는 심지어 소셜미디어도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트윗은 작년 12월, TEDMED 의 대표가 테라노스의 이야기를 전하며  “언론은 세상을 바꾸려는 천재를 너무 쉽게 띄웠다 죽인다. 특히 그가 여성이라면”이라 쓴 트윗에 대해 남긴 짧고 간결한 대답 한 마디 입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humbled.)”

(베니티 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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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it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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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진 글이네요~테크버블
    늘 개입되면 편향되고 합리화되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죠~
    물론 긍정과 단합은 불가능도 가능하게 하지만
    극단적 이기주의와 성공합리화는 기초가 든든하지 못하면 모래성일 뿐..

  • 시사점이 많은 글입니다. 국내에서 작년부터 최근까지 불거졌던 일명 '천재소년' 송유근군의 논문 '표절' 논란과 오버랩되네요. 학계와 언론이 똘똘 뭉쳐 '천재소년'이 다칠까 보호하고 입을 다무는 모습은 평범한 대중이 보기에 이성을 잃었다고 판단될 정도였습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과학계 이슈이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지도교수의 전작을 참고(또는 첨삭)한 흔적이 역력한데도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을 마치 열등종자로 매도하고 무시하더군요. 또 언론은 이들의 주장을 반박이나 검증 없이 기사로 쏟아내고. 그럴거면 국내에 언론사가 왜 수천개씩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마지막에서 두번째 문단의 내용이 정말 꼭 필요한 논의라고 생각해 왔기에, 보면서 시원한 기분까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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