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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실패하고 있는 UN을 위한 직언

저는 지난 30년간 UN에 몸담아 왔습니다. 1990년대에는 아이티에서 인권담당관으로 일했고, 유고슬라비아 대량학살, 인도양 쓰나미, 아이티 지진 등 다양한 재해 현장에 있었으며, 최근에는 에볼라 현장에서 일했습니다. UN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에 굳은 신념을 가지고 보낸 세월이었죠.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저는 UN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세계는 지금 기후 변화에서부터 테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위기 상황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UN에는 다른 어떤 기구와도 다른 특수한 위치에서 이런 문제들에 맞설 임무가 있으며, 다양한 곳에서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직의 운영상에 문제점이 너무나도 많아서 지금 UN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6년 전, 뉴욕 본부에서 부사무총장으로 근무했을 때, 나는 UN 전체를 짓누르고 있는 어마어마한 규제와 논리 없음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정신 나간 과학자들로만 팀을 짜서 관료주의로 점철된 조직을 새로 디자인한대도 이렇게는 만들 수 없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 비효율성은 어마어마한 예산과 구성원들의 열정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도 같았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바로 경직된 인사 시스템입니다. UN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여야 할 조직입니다. 그러나 복잡한 절차 때문에 한 사람을 채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13일에 달합니다. 올 초에는 이 기간을 1년 이상으로 연장할지도 모르는, 더 복잡한 규정이 더해져서 모두를 경악시켰죠. 에볼라 사태 때 이 문제는 더 크게 와 닿았습니다. 수천 명이 죽어가는 상황인데도 건강 검진 및 관련 서류 처리 절차가 너무 복잡해, 건강한 직원이 급한 현장으로 제때 투입되지 못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서는 종종 규정을 어기는 사태가 일어납니다. 나는 에볼라 현장에서 인류학자를 계약직으로 직접 고용했고 그녀는 안전하지 못한 매장 풍습이 에볼라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밝혀내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UN에는 이런 현장에서 인류학자를 고용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내가 그곳을 떠나자마자 곧 일자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수십억의 예산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을 진행하는 책임자조차도 인력을 고용하거나 재배치할 수 없는 현실인 겁니다.

이렇게 되면 조직의 책임성도 하락합니다. 누구나 무능하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한 번 어떤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중대한 과실을 저지르지 않는 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지난 6년간 나는 한 번도 UN 현장 직원이 일을 못 한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거나 징계를 받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수많은 결정이 UN이 중시하는 가치나 현장의 팩트에 기반을 두고 내려지는 대신,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평화유지군 운영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세계 각지에 주둔하고 있는 UN 평화유지군은 명확한 목표나 출구전략 없이 몇 년씩 한 곳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티에서는 지난 10년간 무력 충돌이 한 차례도 없었지만, 4천5백 명 규모의 UN군이 여전히 주둔 중이죠. 지금 아이티가 겪고 있는 선거 부정 등의 문제는 군대가 전혀 해결할 수 없는 종류입니다. 말리의 사례는 더 우울합니다. 2013년 UN은 말리 북부의 테러 집단에 대응하기 위해 무려 1만 명 규모의 병력을 투입했습니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이들은 대테러 작전을 수행할 준비가 안 된 병력이었고, 보유 자원의 80%가 군수와 자기 보호에 들어갔죠. 이미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될 겁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어난 일은 가장 심난합니다. 2014년 UN이 평화유지 임무를 받으면서 군을 구성할 때,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인권 침해 전력이 있는 콩고민주공화국과 콩고공화국의 군을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민간인을 상대로 폭력, 강간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뉴욕의 UN 본부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수많은 범죄 사례가 드러나고 나서야, UN은 콩고민주공화국 군인들을 내보내기로 했지만, 콩고공화국의 군인들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인권을 수호해야 할 UN에서, 오히려 범죄를 저지르는 구성원들과 함께 일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죠.

UN의 관료주의가 평화유지군 운영의 걸림돌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저 말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주로 UN이 결국은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회의론자입니다. 하지만 나는 인류를 위해 UN이 반드시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UN은 스마트폰 시대에 남아있는 레밍턴 타자기와 같은 신세입니다.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굳은 개혁 의지를 갖춘 리더가 필요합니다. 관료제는 기관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기여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개혁의 출발점은 인사 제도의 혁신입니다. 외부 패널에 UN의 인사 제도를 검토하고 대안을 제시하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행정 비용이 전체 예산에서 일정 비중 이상을 차지할 수 없도록 상한선을 정해야 합니다. 셋째, 예산 배정을 운영부가 아닌 사무총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독립 기관에 맡겨야 합니다. 넷째, 본부 운영의 모든 면에서 성과를 더 엄격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청렴한 사람이며, UN에는 똑똑하고 용감하며 이타적인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인류를 위해 일하기에는 도덕심이나 전문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많습니다. UN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들이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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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sope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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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은 잘 읽었습니다. 최근 저는 유엔에 대해 그다지 좋은 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인턴 문제로 인한 막연한 불신이라고 해야할까요? 유엔이라는 단체는 결국 수많은 대기업에 지나지 않고 그들의 옳고 그름은 그들의 수익 혹은 몇몇의 사람들의 생각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이 칼럼을 읽고 난 다음 그 막연하게 생각되었던 부분이 명확해지는 기분이 드네요.

  • 항상 감사하며 올려주신 기사들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 글 아래부분에 반기문 사무총장에 대한 표현으로 원문에서는 a man of great integrity 라고 했는데 "청렴한"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는지 궁금해서 글 올립니다.

    • 제가 번역한 건 아니지만 저도 "청렴한"이 적절한 단어 선택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정도 의역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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