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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포바와 도핑, 그리고 “약물”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믿음

“몸이 재산”인 운동선수들에게 신체 능력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일단 솔깃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운동선수들이 복용하는 영양제나 경기력 향상 물질을 먹으면 나도 건강해져서 더 빨리 뛰고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 일반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인지력 향상에도 약물이 도움이 될 거라고 믿으며 다른 목적으로 제조된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테니스 선수 마리아 샤라포바가 “경기력 향상 성분”이 든 약물 멜도니움을 복용한 혐의로 적발됐습니다. 이 약을 먹으면 테니스를 더 잘 하게 되는지는 고사하고 멜도니움이란 약물에 대해 들어본 사람도 거의 없을 겁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샤라포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신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약물을 복용하는 건강한 사람들과 그들의 논리에 깔린 잘못된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어쨌든 멜도니움이라는 약물이 화제가 됐으니 그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멜도니움은 국소 빈혈증처럼 신체 일부분에 피가 제대로 돌지 않는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돕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성분입니다. 혈류가 늘어나면 그만큼 근육이나 다른 조직에 산소 공급도 늘어나게 되겠죠. 신선한 피를 더 많이 공급받으면 근력도 향상될 겁니다.

건강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시험 가운데는 소개할 만큼 정리가 잘 된 연구가 없지만, 운동선수들로 좁혀 봤을 때 멜도니움을 복용하면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샤라포바가 복용해 온 밀드로네이트라는 약품을 생산하는) 라트비아의 제약회사는 웹사이트에 “육체적, 정신적 과로에 시달리는 건강한 사람들의 업무 능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해 놓았지만,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은 어떤 종류의 장애를 치료하는 약물에도 멜도니움 성분을 써도 좋다고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자 에리스로포이에틴(erythropoietin, EPO)이나 스테로이드 같은 경우 운동선수의 경기력을 향상한다는 실험 결과가 누적돼 있습니다.

다만 제가 아직도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운 부분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치료제가 건강한 사람들을 더 건강하게 해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정말 많다는 사실입니다. 업샷 코너를 통해 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듯, 기본적으로 약은 그 약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잘 듣는 법입니다. 그 약을 꼭 먹지 않아도 될 때 약을 먹으면 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물론 약을 먹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은 당신이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똑같을 겁니다.

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아마 가장 길게 질문에 대한 답변과 설명을 달아놓은 부분은 각종 보충제(supplements)에 관한 부분일 겁니다. 사람들은 적정량 혹은 권장량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비타민C를 조금 더 많이 섭취하면 면역 체계가 더 튼튼해진다는 점에 착안해 비타민C를 아주 많이 섭취하면 아예 모든 병에 걸리지 않을 것처럼 여긴다는 겁니다. 물론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몸에 좋다는 수많은 건강 보조제, 영양 보충제 가운데 엄격한 임상 시험에서 꾸준히 좋은 결과를 낸 제품은 제가 아는 한에는 거의 없습니다. 만약 엄격한 실험을 거쳐서도 효과가 입증된 제품이 있다면, 헬스 트레이너나 건강식품 전문가라는 사람들 말고 의사들이 이를 챙겨 드시라고 권장했겠죠. 미국에서는 또한 보충제에 대한 규제가 미약해 성분이 정확하게 표시되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최근에는 항치매제 혹은 향정신성 약물로 분류되는 누트로픽(nootropics)에까지 이런 잘못된 믿음이 뻗쳤습니다. 누트로픽은 기본적으로 인지 기능을 향상하는 물질로 몇몇 약물의 주요 성분이기도 합니다. 발작성 수면(narcolepsy)에 처방하는 모다피닐(Modafinil), 치매에 처방하는 피라세텀(piracetam) 같은 약물이 대표적입니다. 주의력 결핍 장애(ADHD)를 치료하는 약물에도 이 성분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오래오래 맑은 정신을 지키겠다며, 혹은 치매를 예방하겠다며 영양제 먹듯 누트로픽을 복용하는 일반인이 있습니다.

이 약의 효과는 장애 혹은 결함이 있는 환자들에게만 입증되었다는 사실을 먼저 짚어둡니다. 일반인이 누트로픽을 복용했을 때 인지 능력이 향상된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2013년에 모다피닐이 건강한 사람들의 창의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본 무작위 통제 연구가 있었는데, 뚜렷하게 어떻다고 말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2014년 진행된 비슷한 연구에서는 모다피닐을 복용한 실험 참가자들이 문장을 끝마치는 속도가 오히려 느려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문장을 완성하는 능력은 뇌의 전두엽이 담당하는 기능으로 알려졌는데, 어쨌든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약을 먹었을 때 저하되는 기능이 있을 수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결과입니다. 하지만 주의력 결핍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성향을 억제하는 데는 이 약이 여전히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일반인들에게는 그런 효과가 필요 없을 뿐이죠. 약이 문제가 아니라 처방에 없는 효과를 기대한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뜻입니다.

여러 관련 연구를 종합한 연구를 살펴보면, 주의력 결핍 장애 환자에게 투여하는 메틸페니데이트(methylphenidate) 성분도 장기적으로 효과가 지속하는 건 아닙니다. 잠이 부족한 사람이 모다피닐을 복용하면 일시적으로 각성 효과가 나고 기억력이 좋아져 미세하게나마 업무 능력이 좋아진다는 연구는 있습니다. 다만 모다피닐을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그런 효과는 점점 사라지고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부작용만 남게 됩니다.

피라세텀에 관한 메타 연구도 살펴보죠. 총 1만 2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24차례 실험을 종합해 분석한 결과, 피라세텀을 복용한 이들과 복용하지 않은 이들 사이에 인지 능력, 기억력, 언어 능력 등 전반적인 정신 건강에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차이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실험은 인지 능력에 결함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이 약을 먹었을 때 인지 능력이 향상될 거라고 해석할 여지는 찾기 어렵습니다.

저는 지금 대단히 새로운 발견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점점 더 각종 질병과 증상에 꼭 알맞은 치료제를 개발해 왔습니다. 치료제는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지 원래 건강한 사람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끝없이 발전하고 더 나아지려는 인간의 욕심이 이런 오해를 낳고 잘못된 믿음을 강화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도 별로 유익하지 않은 무언가를 복용하며 헛된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작 약물의 오용이 부작용의 위험을 높이기만 한다는 사실은 모른 채 말이죠.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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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원문의 필자 애론 캐롤은 인디애나 대학교 약대의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뉴욕타임스 업샷” 코너에 건강과 관련된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물을 적어도 8잔씩은 마셔야 한다는 통념에 반박한 글도 캐롤 교수의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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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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