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글을 쓴 테레사 길라르두치(Teresa Ghilarducci)는 뉴욕의 뉴스쿨포소셜리서치(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in New York)의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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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에 나선 후보들은 저마다 노동자로서 겪는 어려움을, 서민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벌인 토론 내내 “노동조합(union)”이란 단어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건 꽤나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버니 샌더스가 언급한 시민들의 감시단체 시티즌스 유니온(Citizens Union)은 노동조합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단체니까요.
민주당 후보들끼리 정견과 정강을 두고 벌이는 토론에서 노동조합 이야기가 빠졌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비판받았습니다. 노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구가 최근 들어 잇따라 나오고 있는데, 다소 의외의 단체가 의외의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가 그렇습니다. IMF는 최근 발표한 연구를 통해 노조를 되살리고 지원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에는 경제를 성장시키고 생산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은 민간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조 조직률이 9%가 채 안 됩니다. 세계적으로도 노조 조직률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데, 독일이나 캐나다보다는 훨씬 낮고, 멕시코나 한국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노조 조직률이 낮은 곳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제약받고, 노동 환경이 열악한 건 당연한 일입니다. 부유한 나라들 가운데 미국은 저임금 일자리가 특히 많은 나라입니다. 여기서 저임금 일자리란 중위 급여(median wage)의 2/3에 미치지 못하는 일자리를 가리키는데, 미국의 경우 전체 일자리 가운데 저임금 일자리의 비율이 20%를 넘습니다. 노동 시간을 기준으로 ‘저녁이 있는 삶(옮긴이:work-life balance를 의역했습니다)’을 측정한 결과에서도 미국은 뒤에서 세 번째였습니다. 미국인들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1,790시간인데, 대부분 부유한 나라 사람들의 노동시간은 1,600시간이 안 됩니다. 미국인 가운데 장시간 노동 혹은 야근을 주기적으로 하는 이들은 11.8%나 되는데, 네덜란드의 경우 일주일에 50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이 1%도 안 됩니다.
노조를 되살리면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되찾아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앞서 소개한 연구에서 IMF는 노조 조직률이 높은 나라에서 불평등 지수가 낮고 빈곤율도 낮다고 지적했습니다. IMF는 세계화나 기술의 발전은 모든 나라에 비슷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노조 조직률 혹은 노동시장 규제 등의 정책이 불평등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의미한 변수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밖에도 노조의 쇠퇴와 불평등의 증가 사이의 상관 관계를 밝힌 연구들이 많습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보고서, <미국 사회학지>)
대개 연구들이 가리키는 바는 엇비슷합니다. 노조가 있으면 특히 저임금 노동자들의 급여가 올라 불평등이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조합원이 누리는 혜택은 더 많은 임금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이들이 받는 보상이 노동조합에 속했을 때 높아지는데, 사측이 제공하는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을 확률이 조합원일 경우 28% 더 높고, 연금에 가입할 확률도 54% 더 높습니다.
이런 혜택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닐 테니, 사측이 부담하는 비용이 늘어난다는 뜻일까요? 실제로 노조가 있는 회사의 임원, 경영진의 임금이 노조가 없는 회사보다 조금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뜻입니다.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건 같은 시간을 일해도 회사에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여한 만큼 임금을 더 받아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죠. 노동조합이 어떻게 생산성을 높이는 걸가요? 조합원들은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들보다 기계나 설비를 정비하고 동료들에게 필요한 업무를 가르치는 데 더 열심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시간당 임금이 더 높을수록 일을 더 열심히 할 유인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생산성이 올라가는 거죠. 노동조합이 실업률을 높인다는 주장이 근거가 빈약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주로 회사 한 곳에 국한한 이야기였습니다.사회 전체적으로 가져오는 효과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은 부자 증세, 사회보장제도 확충, 공공 교육 확대 등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 의제를 제기하고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행사합니다. 이는 결국 노동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들에게도, 즉 사회 전체적으로도 이득입니다. 노조 가입률이 높은 지역에서 자란 아이들이 계층 이동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가 최근 주목을 끌었습니다. 노조의 부재와 불평등 사이의 상관 관계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보입니다.
노조가 정말 이렇게 좋은 거라면, 너도나도 노조에 가입하려 하고 노조 조직률이 당장 올라야 정상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왜 현실은 다를까요? 우선 대부분 회사들은 노동자들에게 더 큰 권한을 주는 어떤 정책도 반기지 않습니다. 이들은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교묘하게, 혹은 몰래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면서 노동조합이 조직되고 커지는 걸 가로막습니다. <아틀란틱>은 지난 6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월마트가 어떻게 노동조합 결성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는지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했다가는 본부에서 해당 점포를 폐쇄할까봐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사측이 직원들에게 노동조합은 동료들의 돈을 갈취해가는 탐욕스런 조직이나 다름없다고 겁을 주는 내용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가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이미 해고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 중에 누가 과연 앞장서서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나설 수 있을까요?
정부가 나서는 방법이 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노동조합에 힘을 실어주는 거죠. 노사정 대타협을 이룬 뒤의 독일에서처럼 기업 이사회에 노동조합의 지분을 보장해주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노동자가 회사 운영 방침을 정할 때 목소리를 내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노조에 대한 시선이 그렇게 곱지 않은 미국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노조를 적으로 두고 노조 해체에 앞장섰던 경험을 자랑스런 정치 이력으로 내세우는 후보가 대통령 자리에 도전할 정도로 노조에 대한 정서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내년 대법원은 캘리포니아 교사 노조의 단체 교섭권과 관련해 중요한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전히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첨예하게 갈리는 미국에서 정부가 앞장서서 정책을 펴기에는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에게 수많은 혜택을 가져오기 때문에 사측과 경영진에게는 그 혜택이 회사의 이윤을 빼가는 것으로 비춰질지도 모릅니다. 노조와 사측의 관계를 항상 적대적인 대결 구도로만 바라보는 한,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여 결국 회사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노조의 순기능도, 그 때문에 충분히 구축할 수 있는 노사 간 상생 관계도 그저 불가능한 구호로 남을 뿐입니다. (Atlantic)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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