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태스킹의 역사
멀티태스킹이 가진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어보이기도 합니다. 멀티태스킹의 역사는 생각보다 깁니다.
1958년, 젊은 심리학자 버니스 이더슨(Bernice Eiduson)은 장기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연구는 너무 긴 세월이 필요했기에 그녀는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를 끝내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연구는 남성 과학자 40명의 작업 방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들을 주기적으로 인터뷰했고, 다양한 심리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뛰어난 성공을 거두었고, 어떤 이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네 명이 노벨상을 받았고, 두 명은 강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었습니다. 몇 명은 국립과학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이더슨의 사망 후, 그녀의 동료들이 그 결과를 정리했습니다. 동료들인 로버트 룻-번스타인, 모린 번스타인, 헬렌 가니어는 오랜 시간 성공적인 연구를 지속해내는 과학자들의 비결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뷰 결과와 심리검사 결과에서는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들의 초기 논문 실적 – 첫 100편의 논문 – 에서 어떤 특징이 발견되었습니다. 곧, 가장 훌륭한 과학자들은 하나의 주제가 아니라 다양한 연구주제를 계속해서 오갔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은 첫 100편의 논문을 내는 동안 평균적으로 다섯 개의 다른 분야를 연구했으며, 두 논문 사이에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바꾼 횟수가 43번에 이르렀습니다. 곧, 이들은 한 분야를 연구해 발표한 후, 다른 분야로 가 다시 결과를 발표하는 일을 반복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과학 연구가 긴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들은 동시에 여러 주제를 연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과학자의 비법이 다름 아닌 멀티태스킹었던 것입니다.
찰스 다윈은 다양한 주제에 능했던 대표적인 과학자입니다. 그는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을 발표하기 20년 전 “종의 돌연변이”에 대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유아에 관한 생물학적 단상(A Biolographical Sketch of an Infant)>은 아들 윌리엄이 태어났을 때 착안한 주제이지만 그 아들이 37살이 되었을 때 발표했습니다. 그는 거의 20년 동안 덩굴식물과 식충식물을 연구했습니다. 또 죽기 직전인 1881년, 자신이 44년 동안 연구해온 주제인 지렁이에 대한 교본을 출판했습니다. 심리학자 하워드 그루버와 사라 데이비스는 다윈을 비롯한 저명한 과학자와 예술가들에게서 이런 여러 주제에 대한 관심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
미하일 칙센트미하이가 이끄는 연구팀 역시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타 페터슨, 과학작가 스티븐 제이 굴드, 그리고 노벨상을 두 번 받은 물리학자 존 바딘 등 100여 명의 뛰어난 창의적 인물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칙센트미하이는 한 가지 상황에 빠져든 상태인 “몰입”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이입니다. 칙센트미하이의 인터뷰에서도 이들 창의적 인물들은 여러 프로젝트에 동시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인터넷 중독?
다윈의 작업 방식과 오늘날 10대가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방식을 모두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적어도 4가지 다른 종류의 멀티태스킹이 있습니다. 하나는 한 손으로 머리를 두드리면서 다른 손으로 배를 만진다든지,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든지, 껌을 씹으며 방귀를 끼는 것과 같은 진정한 멀티태스킹입니다. 이런 멀티태스킹은 가능하지만, 적어도 두 행동 중 한 행동이 매우 익숙한 것이라 깊은 생각을 요구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상사가 사용할 발표자료를 만들면서, 상사에게 오는 전화를 받고, 동시에 그가 내게 이메일로 무슨 일을 시키는지를 확인하는 종류의 멀티태스킹이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진정한 멀티태스킹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일을 오간다는 면에서 작업 전환에 가깝습니다. 사실 우리가 멀티태스킹이라 부르는 많은 일들이 그저 빠른 작업 전환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작업 전환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세 번째 종류의 멀티태스킹이 있습니다. 이는 일을 하다가 페이스북에 들어가거나 인터넷의 연예인 뉴스를 보기 시작하는 종류의 것입니다. 논문을 읽다가 다른 연구 아이디어가 떠올라 이를 적어놓고 다시 논문으로 돌아오는 사람과 논문을 읽다가 인터넷의 비키니 사진을 클릭한 뒤 오전 내내 사진들을 보며 보내는 사람은 전혀 다른 행동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창의적이 되는가(Your Creative Brain)>를 쓴 심리학자 쉘리 카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멀티태스킹이라 부르는 행동 중에는 그저 인터넷 중독에 의한 행동들도 있습니다. 이는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충동적인 행동에 불과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멀티태스킹은 어떤 일을 해내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이 있는 상태입니다. 자동차를 정비소에 맡겨야 하며, 치과에 들러야 하고, 아이를 돌봐줄 보모가 오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고, 내일 있을 중요한 회의를 준비해야 하며, 다음 주까지 연말 정산 신고를 끝내야 하는 상태입니다. 해야 할 여러 가지 일을 가진 것과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다릅니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고, 버니스 이더슨이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에게서 발견했듯이, 할 일이 여러 가지라고 해서 반드시 그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집중할 것인가
멀티태스킹에는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진짜 멀티태스킹, 작업 전환, 주의가 산만한 상태,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 상태의 네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 기기들은 우리가 이들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할 수 있지만 또한 다른 충동들 역시 쉽게 받게 됩니다.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할 일이 있는 효율적인 상태는 곧 효율이 떨어지는 빠른 작업 전환 상태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심리학자들이 꺼내기 좋아하는 1920년대 한 베를린 대학 근처 식당에서 있었던 일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존 티어니의 <의지력의 재발견(Willpower)>에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루는 학계의 인물들 다수가 한 식당을 방문했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음식을 주문했고, 웨이터는 이들의 복잡한 주문에 대해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았지만 완벽하게 음식을 가져왔습니다. 이들은 그의 놀라운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식당을 떠났습니다. 잠시 후 그 중 한 명이 식당에 두고 간 소지품을 찾으러 돌아왔을 때, 그 웨이터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놀라서 웨이터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웨이터는 말했습니다. “간단해요. 나는 주문대로 음식을 가져다 주고 나면, 그 내용을 다 잊어버린답니다.”
베를린 대학의 젊은 실험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은 이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녀는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끝내지 못한 일이 있을 때 이를 더 잘 기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이름을 따 “자이가르닉 효과”로 불립니다. 마치지 못한 일은, 말 그대로 마음 속에 남아있는 것이지요. 잠재의식이 계속 그 일에 대한 주의를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여러 가지 할 일이 있을 때, 이들 사이의 작업을 계속 전환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끝내지 못한 일이 마음에 남아서 계속 그 일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이지요. 마음 속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그 여러 일들 사이로 주의를 옮기게 됩니다.
물론 ‘집중’에 대해 할 수 있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를 여기서 다 꺼낼 수는 없겠지요. 헤밍라이트와 인터넷 차단 호텔은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그 한계 역시 뚜렷합니다.
나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가 페이스북이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헤밍라이트를 회사에서 쓸 때 진급이 더 빨라지지도 않을겁니다. 우리는 헤밍웨이가 아니고, 동료들의 이메일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리한 싸움을 가정해야 합니다. 곧 멀티태스킹을 어느 정도 가정한 상태에서 어떻게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파이낸셜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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