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사막에 위치한 팔미라(Palmyra)시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던 고대 팔미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입니다. 실크와 향료를 실은 상인들이 바쁘게 오갔을 도로와 도시의 종교적 중심이었던 벨 신전이 그대로 남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됐죠. 그러나 지난 5월 이슬람국가(ISIS)가 이 도시를 점령하면서, 인류의 소중한 문화 유산의 미래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점령 초기 이슬람국가의 사령관이 “우상숭배적인 동상들만 파괴하고 역사적인 도시를 보존하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23일 가장 특징적이고 잘 보존된 건물 가운데 하나였던 발 샤민 신전이 폭발물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팔미라의 가치는 단순히 잘 보존된 고대 유적 그 이상입니다. 이슬람국가의 파시스트적 단문화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는 모든 가치들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죠. 고대 팔미라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구성원들이 모두와 교역하고, 외지인과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며, 다양한 신을 갈등없이 섬겼기 때문입니다.
팔미라는 서쪽의 다마스쿠스와 에메사, 아파메아, 북쪽의 유프라테스 골짜기, 동남쪽으로는 인도와 중국과 연결되는 홍해와 아라비아만을 연결하는 접점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유라시아 전역의 문화가 한데 뭉쳐있는 듯한 흔적이 남아있는 건축물에서 발견되는 이유입니다. 도시는 이곳을 지나는 모든 교역품에 높은 세금을 매겨 번영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처음 이곳에 정착했던 민족은 아랍인과 아람인이었습니다. 이후 주변 지역의 유목 민족과 더 먼 곳에서 온 이방인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도시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해갑니다. 그러나 팔미라는 동시에 집단적인 정체성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대 중동의 전형인 세 개의 신전(벨, 야르히볼, 아글리볼)은 민족을 넘나드는 도시의 종교적 상징이었고, 남아있는 벨 신전은 이슬람국가의 중요 타겟이 되었습니다.
팔미라 유적에는 정치 지형의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팔미라의 동쪽으로는 조로아스터교 파르티아 제국이 펼쳐져 있었고 서쪽으로는 로마 제국을 접하고 있었지만, 팔미라가 로마의 강요로 그 문물을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로마의 공예가들을 초청하여 건축물을 지음으로서, 로마 문명을 적극적으로 흡수했죠. 또한 그리스식 의회를 도입해 도시를 운영해 나갔습니다. 문화, 경제적으로 강해진 팔미라는 3세기 제노비아 여왕 하에서 제국을 선언하고 시리아와 아라비아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이집트까지도 위협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팔미라는 로마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다시 로마의 영토로 편입되고, 이후 다양성을 상실해갑니다. 7세기에는 무슬림이 이 지역을 점령했고, 이후 우마이야 왕조로 흡수되었죠.
팔미라의 건축물들은 점령자들의 종교에 따라 교회로, 또 모스크로 용도가 바뀌었지만 그 형태만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21세기의 야만은 이렇게 오랜 세월 살아남은 건축물을 파괴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종교 절대주의와 안이한 정체성 정치, 포스트식민주의적 분노, 첨단 무기 기술과 미성숙한 광기의 끔찍한 조합이 문화적 다양성의 상징인 팔미라를 겨누고 있는 것은 우리 시대의 참담한 아이러니입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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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