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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학 부문의 세계화, 더 많은 번역이 필요합니다

90년대에 대학에 입학하고 중국어 입문 수업에 들어갔던 저는, 한 10년은 지나야 중국어 신문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중국어를 포기했습니다. 이후 대신 듣게 된 수업이 포르투갈어 수업이었죠. 처음에는 포르투갈 언어와 문화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얼마 후 포르투갈어로 단편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저는 곧 제 인생을 바꾼 작품을 만나게 됩니다. 클라리스 리스펙터라는 작가의 1977년 작 <별의 시간>이었죠. 작가의 강렬한 존재감에 사로잡힌 저는 조사를 시작했고, 곧 그녀가 브라질에서는 아주 유명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죠. 사람들은 자신이 읽을 수 없는 것에 관심이 없고, 읽지 않은 작품과는 사랑에 빠질 수 없으니까요.

그 후 수년이 지나서야 저는 이 악순환이 저절로 깨질 리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리스펙터의 전기를 직접 쓰기 시작했고, 5년에 걸쳐 완성했죠. 이 책이 나온 후 영어권에서는 그녀의 작품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고, 번역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그러기까지 또 5년이 걸렸으니, 중국어도 마스터할 수 있는 세월이 흐른 셈입니다.

리스펙터와 같은 작가가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무명으로 남게 된 이유는 영어의 영향력이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언어가 만국공통어에 가까운 지위를 얻으면 관광객들이야 편하겠지만, 문학의 세계는 일방통행로가 되고 맙니다. 일례로 미국과 영국에서는 번역서의 비중이 전체 출판 시장의 3%에 불과하지만, 2013년 기준 러시아에서는 이 비율이 10.5%, 중국에서는 7%, 네덜란드에서는 75%에 달합니다. 영어 아닌 다른 언어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은 다른 나라로 진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모국의 출판 시장에서마저 번역서에 밀려나고 있습니다. 영어가 마치 지역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종 역할을 하는 것이죠.

물론 수 세기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영어의 지배력 강화를 영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들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어권 작가들이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 상황을 개선할 의무도 조금은 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벌써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작가들도 있습니다. 조나단 프란젠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직접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했고, 리디아 데이비스는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동시에 영-불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죠. 미국 소설가인 엘리자베스 코스토바는 불가리아 문학 번역을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영어로 책을 읽는 독자의 수는 압도적으로 많으므로, 영어로 책을 펴낸 작가의 입지는 크게 넓어집니다. 일단 영어로 번역이 되고 나면, 제3의 언어로 옮겨질 가능성도 훨씬 커지고요. 그러나 훌륭한 작가면 언제고 세상이 알아보고 영어권에 소개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영어 출판계가 큰 만큼, 번역에 열린 마음을 가진 편집자에게도 번역은 큰마음 먹고 뛰어들어야 하는 부담스러운 영역입니다.

결국은 편집자가 믿음을 가지고 확고하게 밀어붙여야 합니다. 제가 처음 취직했던 출판사에서 나는 SF와 저질 포르노를 섞은 듯한 프랑스 신인의 작품을 번역해 출판하자고 상사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당시 그 상사는 프랑스어를 전혀 몰랐지만, 나의 판단을 믿고 번역을 추진했죠. 이 작품은 다름 아닌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였습니다. 영어권 출판 업계 관계자들은 자신이 가진 인적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한두 사람의 관심이 영어권 밖의 작가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힘겹게 영어책을 낸 작가라도 홍보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습니다. 번역서는 원서보다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영어권의 작가와 출판 관계자들은 더욱 많은 번역서가 리뷰를 받을 수 있도록, 더 많은 해외 작가들이 영어권 매체와 인터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소셜미디어와 같은 도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매일매일 빈 종이와 마주하는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작업입니다. 그러나 문학은 동시에 공동체에 의해 완성되는 것입니다. 소수의 대기업이 상품을 찍어내듯, 대가 몇 사람이 세상 모든 책을 써내는 세상은 모두에게 좋지 않은 곳입니다. 세계화로 세계 어디에서나 같은 신발을 사고 같은 음료수를 마시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문학에서만큼은 세계화가 균질화를 의미해서는 안 됩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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