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성인은 노인보다 큰 뇌를, 남자는 여자보다 큰 뇌를, 뛰어난 인간은 평범한 인간보다 큰 뇌를, 그리고 우등한 민족은 열등한 민족보다 큰 뇌를 가지고 있다” – 인류학자 폴 브로카(1861)
오늘날 “인종주의”의 의미는 자신과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자신만큼 지적이거나 정신적이지 못하다고 여기면서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1890년부터 1960년 사이, 특히 1930년대와 40년대에는 이 단어가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 당시 유럽과 북미의 지식인들은 인종간의 지적, 정신적 차이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고 믿었습니다. 오늘날 인종주의는 교육수준이 낮은 이들이나 사회적 부적응자들의 무식을 드러내는 정도로 여기지지만 히틀러의 시대에는 다수의 지도자와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개념이었습니다.
때로 인종주의는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육체적 정신적 특징이라는, 곧 유전학의 관점에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곧, 다른 민족, 다른 국적, 그리고 특정 사회 계층이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르게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단지 아프리카 사람이나 아시아 사람만을 백인과 구별한 것이 아니라, 같은 백인 안에서도 스코틀랜드 사람, 스웨덴 사람, 그리스 사람, 폴란드 사람 등을 날 때부터 다른 특질을 가진 사람으로 간주했습니다. 또한 각 사회의 하층민이 사회적 계층의 하단부를 유지하는 이유 역시 그들의 타고난 지적, 정신적 능력이 열등하기 때문으로 설명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역사를 볼 때 불평등은 인간의 조건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인이며 힘이 있는 자들은 언제나 그 힘을 남용해 왔습니다. 어떤 나라들은 군사적 우위를 유지했고, 부유한 이들은 정치를 독점했으며,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공평한 대접을 받습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서구의 인종주의는 사회적 엘리트와 강대국에게 새로운 위험한 성격을 부여했습니다. 전쟁을 시작하는 이, 약자를 처벌하는 이, 일반인을 학살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새로운 이론을 찾은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폭력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이것이 “자연의 법칙”을, 그리고 도덕을 알지 못하는 자연 그대로의 세계를 반영한다고 말함으로써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인종주의는 과학적 확실성이라는 압도적 권위를 동반했기에 지식인들 역시 이를 인정했습니다. 이 모든 결과는, 사람들에게 모든 인간은 태어난 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고 자신이 원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행동을 바꿀 수 없는 유전자의 포로라는 생각을 심었습니다. 어떠한 교육이나 정치적 압력도 민족이나 국민성을 바꿀 수 없으며, 한 집단의 특정 행동이 해로운 것이라면 그 집단은 사라져야 했습니다.
이 근대 인종주의의 지적 근거에는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중 특히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이 영향을 끼친“과학적” 근거에 주목합니다. 인종주의에 대한 다윈의 영향을 강조하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다윈주의자들의 인종주의는 히틀러와 다른 홀로코스트의 주도자들에게 특별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 다윈은 후에 인종주의에 과학적 후광을 씌운 저명한 생물학자와 인류학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윈주의는 전세계 어디보다도 독일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는 일차대전 이전 독일이 생물학 연구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며 또 독일인들의 특별히 낮았던 문맹률도 관련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윈주의자 인종주의는 여러 인종주의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퍼졌습니다. 이는 다윈의 이론이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고 쉽게 설명이 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윈의 이론이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되자 모든 분야의 지식인들은 그 이론 속에서 자신이 속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교훈을 찾았고, 또 자신의 원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 역시 찾으려 했습니다. 소위 사회진화론은 여러 다양한 정치적 흐름 속에서 등장했습니다. 그 중 우익 사회진화론자 – 이들이 반드시 가장 인기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 들은 인종주의를 설파했고 사회적 정치적 불평등을 정당화했으며 전쟁을 옹호했습니다.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지지자들이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럽의 유대인들을 학살하려 한 데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익 사회진화론자는 유럽과 북미의 지도층들, 특히 독일의 호전적이고 반민주적인 엘리트들에게 여러 편리하고 매력적인 개념들을 제공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개념은 아마 “투쟁(struggle)”이었을 겁니다. 이 단어는 모든 인간의 관계, 그리고 국가의 관계가 생존을 위한 무자비한 전투임을 암시합니다. 다윈이 발견한 자연의 법칙은 필연적으로 투쟁이라는 개념을 동반하며, 여기에 어떤 도덕적 의미도 가미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와 “너의 적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동물의 왕국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그 가르침을 따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인간은 그저 특별히 영리한 동물에 불과할 따름이었습니다.
이런 투쟁이라는 개념 위에서 극한 사회적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또 바꾸어야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자는 부자보다 그저 덜 적응했기에 가난한 것이었습니다. 가난한자에게 베푸는 자선은 사회적 부적응자를 사회속에서 계속 생존시킴으로써 사회의 유전자 풀을 낮은 지능과 정신으로 더럽히는 것이었고, 곧 인류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였습니다. 또 영원한 투쟁이라는 개념은 국가간의 반목을 정당화하고 전쟁을 미화했습니다. “우수한” 민족은 “열등한” 민족을 정복하고 이용하고 심지어 학살할 권리까지 부여받았습니다. 우수한 민족이 더 공격적으로 행동할수록 인류는 장기적으로 더 개선될 것이며 따라서 열등한 민족의 절멸은 슬퍼할 일이 아니라 축하해야할 일이었습니다. 국가 관계에서 힘은 곧 정의였습니다. 승자는 바로 승리를 통해 자신의 민족이 더 생존에 적합한 민족임을, 따라서 승리할 자격이 있음을 보인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인종주의를 조장한 사회진화론이 가장 위험했던 것은 이들이 자신들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다윈의 저작 일부에서 영향을 받은 수많은 작가와 정치가들이 각가의 인종이나 국가가 초기 인류로부터 각각의 속도로 진화했으며 따라서 진화속도 역시 각각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거의 모든 유럽과 북미의 지식인들은 유럽의 백인을 그 진화 사다리의 최상층에 두었고, 아프리카인들을 가장 아래에 두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시의 인종주의자 만화가들은 종종 흑인들을 유인원과 비슷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대중 과학 저술가들과 많은 생물학자, 인류학자들이 모든 민족과 국가에 따라 진화의 정도를 세심하게 나누었습니다. 백인들은 언제나 가장 위에 있었고, 백인 안에서도 수많은 단계를 두었습니다. 미국의 엘리트들 역시 미국으로 온 이민자 중 영국인, 독일인, 스칸디나비아인 등의 서구와 북구 유럽인을 조상으로 둔 이들이 가장 높은 지능과 직업윤리, 그리고 최고의 정신적 특성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폴란드, 그리스, 이탈리아, 러시아 유대인 등의 남유럽과 동유럽의 이민자들은 열등한 것으로 생각되어 졌고 국가의 “인종 상태(racial health)”에 잠재적 위협이 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가상의 위협에 놀란 미국 의회는 1924년 발의한 이민법에서 이런 유럽의 “나쁜(wrong)”지역 출신의 이민자 수를 제한하게 되었습니다. 이 법의 초안에는 중국과 일본 등의 백인이 아닌 이들의 이민은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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