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올해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아직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1차 세계대전의 유산을 꼽아 정리했습니다. 무기나 전쟁사에 관련된 유산뿐 아니라 세계 질서와 경제 동향, 그리고 우리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들로 20세기 세계사를 관통하는 인물, 사건들이 망라돼 있습니다. 원문의 인포그래픽은 월스트리트저널이 매긴 중요한 순서에 따라 정리돼 있습니다. 오늘은 이 가운데 무기와 관련된 유산을 정리해 소개드립니다.
* 잠수함(Submarines)
1차 세계대전은 잠수함이 처음으로 큰 역할을 한 전쟁이기도 합니다. 영국군도 잠수함이 있었지만, 바닷속에서 훨씬 위세를 떨쳤던 건 독일군의 유보트(U-boat)입니다. 유보트는 어뢰 12발을 장착하고 물 속에서 2시간 동안 항해할 수 있었는데, 2시간은 당시로선 연합군의 잠수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독일군은 전력상 우위에 있는 유보트를 마음껏 활용했는데, 연합군의 전함은 물론이고 상선과 여객선까지 무차별로 공격했습니다. 많은 1차 세계대전 역사가들은 독일군이 유보트에 너무 과도하게 기댄 것이 훗날 전쟁의 판도를 독일에 불리하게 만든 원인이 됐다고 지적합니다. 단적인 예로, 독일군 잠수정들은 1915년 5월 17일 아일래드 서남쪽 해상에서 여객선 루시타니아(Lusitania) 호를 격침시키는데, 사망자 1,200명 가운데 약 10%는 미국인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까지만 해도 전쟁에 중립을 지키고 있던 미국이 훗날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유보트와 독일군 잠수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연합국은 적 잠수정의 위치를 파악해 공격에 대비하는 기술을 발전시켰고, 1차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최초로 고주파를 쏘아 잠수정의 움직임까지 파악하는 기술도 개발했습니다.
* 화학 무기(Chemical Weapons)
주요 전선 곳곳에서 참호전이 벌어진 1차대전에서 독가스를 비롯한 화학 무기는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1차대전 이전에도 화학 무기는 있었고 전쟁에 쓰이기도 했지만, 가능한 한 화학 무기 사용을 자제하자는 불문율에 가까운 합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1차대전 중에 이 합의는 휴지조각이 되었습니다. 1915년 4월 22일 벨기에의 이프레(Ypres) 전투에서 프랑스와 알제리 연합군을 향해 6천여 개의 고압 실린더에 들어있던 염소가스를 발포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도 과학자들을 독촉해 계속해서 더 강력한 독가스로 만든 화학 무기 제작에 박차를 가했고, 1917년에는 전장의 병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던 머스터드 가스(Mustard Gas)가 실전에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1918년까지 총 12만 4천 톤의 화학 무기가 사용됐고, 이로 인해 숨진 병사의 숫자만 9만 명, 부상자 수는 1백만 명을 헤아립니다. 독가스에 노출됐던 사병들 가운데는 목숨을 건지고도 평생 호흡기나 폐에 장애를 안고 살거나, 아예 눈이 먼 사람도 부지기수였습니다. 화학 무기의 끔찍함에 치를 떨었던 참전국들은 1925년 제네바 조약을 맺고 화학 무기의 사용을 포괄적으로 금지합니다. 제네바 조약은 이후 대체로 철저히 지켜졌습니다. 전투의 규모도 훨씬 컸고 무기의 성능도 훨씬 개량된 채 치러진 2차 세계대전에서도 화학 무기가 광범위하게 쓰이진 않았습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도 다량의 화학 무기를 보유하기만 했지, 실제 전투에서 사용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 지뢰(Mines)
11세기 중국에서 화약이 발명된 후 모든 육군들에게 땅을 파고 화약을 묻은 뒤에 폭발시켜 적군을 공격하는 건 효과적인 전술이 되었습니다. 참호전이 이어진 1차대전에서 지뢰는 땅굴을 만들어 상대방 진지 아래까지 접근한 뒤 심어놓고 이를 폭발시켜 적을 공격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무기였습니다. 1914년 12월 지방시(Givenchy) 전투에서 독일군은 50kg 정도 무게의 소형 지뢰 10발을 영국군 진지에서 터트린 뒤 공격을 감행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영국군은 이듬해 4월 벨기에 이프레 근처에서 171 공병 중대가 설치한 4,500kg 상당의 지뢰를 터뜨려 독일군 진지를 초토화시켰습니다. 서부전선의 교착상태가 이어지며 장기전 양상을 띄자, 지뢰를 이용한 공격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지뢰를 설치하는 공병들은 땅굴이 무너지거나 적군이 땅굴을 발견하고 독가스 공격을 감행하거나 근처에서 지뢰가 터지면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나는 등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이후 지뢰는 부비트랩을 비롯해 지상에서 설치가 가능한 형태로 성능이 개선됐고, 전면전에 쓰이는 대신 오늘날에는 국지전이나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한편 1997년 3월, 133개 나라가 서명한 오타와 조약은 지뢰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W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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