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moth)와 나무늘보(sloth)의 공생관계, 공룡을 멸망시킨 소행성, 소녀들의 핑크에 대한 선호. 이런 이야기들은 사실일까요? 아니면 그저 소설일까요?
우리가 자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종종 과학적인 결과보다 그럴듯한 이야기에 기반합니다. 이런 ‘그냥 이야기(just-so story)’라는 표현은 과학에서는 비판적 의미를 가집니다. 이 표현은 정글북의 작가인 루디야드 키플링이 1902년 발표한 “그냥 이야기들(Just-so stories)”에서 온 표현입니다. 동물들에 관한 우화집인 이 책에는 “코뿔소는 왜 껍질을 가지고 있을까,” “표범이 반점을 가진 이유는,” “낙타는 어떻게 등에 혹을 가지게 되었을까”와 같은 과학과는 무관한, 아이들에게 도덕적인 교훈을 주려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과학에서도 ‘그냥 이야기’는 이들이 가진 단순성, 우아함, 직관성, 그리고 다른 이에게 말하기 쉬운 특성으로 인해 큰 힘을 가집니다. 특히 생태학과 진화론은, 연구자들이 자연에서 발견하는 패턴으로부터 인과관계를 분리해내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더욱 이런 그럴듯한 이야기에 취약합니다.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그리고 행동 생태학은 모두 정치적인 이유로 비판받아 왔지만, 동시에 과학적 엄밀성의 부족이라는 이유로도 비판받아 왔습니다. 1970년대 후반, 스티븐 J 굴드와 리차드 르원틴은 행동생태학자들은 동물들이 가진 특성이 적응에 의한 것임을 너무나 확신한 나머지 이를 검증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행동생태학의 대부분이 ‘그냥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과학적 검증이 아니라 단지 이야기에만 의지한다면, 과학은 그 기반을 잃게 되고 (이는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에 대해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과학 자체가 해로운 인상을 (진화심리학처럼) 남기게 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냥 이야기’가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데이빗 바라쉬(David Barash)같은 학자는 우리가 이들을 가설로 대하는 한, 이들이 나름대로의 역할을 가진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냥 이야기’가 단순히 이야기이며, 어떤 질문에 대해 임의로 머리 속에서 만들어낸 답이자, 한 생각을 명확하게 만든 것이고, 이상적으로는 더 깊은 생각으로 이끄는 지침이며, 한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한 부가적인 종류의 정보를 얻는 데 필요한 사전 준비라는, 곧 최선의 경우 그 문제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가 검증가능해 지고, 사실에 기반한 연구분야를 만들어 낼 때, 이 이야기는 더 이상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으로 바뀐다.
나는 ‘그냥 이야기’가 좋은 출발점이라는 그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론을 세울 수 있고 더 많은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이 ‘그냥 이야기’가 가진 문제점은 우리가 이 이야기에 빠져들어 어느 순간, 어떠한 과학적 증거 없이 이것을 사실로 믿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진화 생태학에서 기린은 왜 긴 목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여성은 왜 배란을 숨기게 되었는지 같은 주제에 대해 우리는 쉽게 이를 적응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때로 우리는 자연의 모든 특성들을 자연선택이 결정한 것으로 설명하려 하고, 이때 우리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우연에 의한 과정이나 다른 중요한 과정들을 무시하게 됩니다.
‘그냥 이야기’는 매우 그럴듯하기 때문에, 이들은 더 쉽게 대중으로 파고듭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사실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예를 들어, 선사시대 북미에 살았던 클로비스 족의 창에는 그 촉에 홈이 파져 있었습니다. 한 때 이 홈은 이들이 맘모스를 사냥할 때, 맘모스가 더 피를 많이 흘리도록 하기 위해 파여져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그럴듯한 설명과는 무관하게, 갈수록 그 홈이 실용적인 의미가 없으며 단지 장식일 뿐이라는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또다른 내가 선호하는 생태학의 ‘그냥 이야기’에는, 특정 과일들이 과거 존재했던 거대동물들에 의해 지구상에 퍼뜨려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이 가설이 발표된 1982년 이후, 아직 이를 지지하는 실험적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이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 매우 어렵거나, 검증할 가치가 크지 않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지금 나의 대학원생 한 명은 새로운 방법으로 이 문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가 이 ‘그냥 이야기’들을 바로 이런, 곧 설명이 아닌 가설의 출발점으로, 그리고 과학의 막다른 골목이 아닌 지평선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The Contemplative Mammo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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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야기"에 대해 말하는 건 좋은데, 진화심리학을 슬쩍 걸고 넘어지는 이유를 알수 없네요. 게다가 논리도, 근거도 없이 진화심리학 비판한 제이 굴드를 인용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 굴드는 바보취급당하는 사람이잖아요.
굴드가 바보취급당하는 사람이라뇨?
저도 진화심리학에 호의적이고 굴드의 비판이 마뜩잖은 편이지만, 이건 아니죠.
제 표현이 과한 면이 있어요. 대학자에게 바보라고 했으니 말이에요. 그러나, 굴드가 생물학 분야에서는 대학자라고 할 수 있지만,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사회현상(특히 도덕과 윤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틀린 내용(도덕은 과학적 탐구 대상이 될 수 없다)을, (동료과학자들의 고언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주 잘 아는 양 공공연하게 주장한 것이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뭘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