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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정말 아일랜드 맥주일까?

3월 17일,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성 패트릭을 기념하는 날에는 전 세계 곳곳에서 초록색 클로버가 그려진 옷을 입고 맥주를 마시는 축제가 벌어집니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기네스 맥주는 이 축제에 빠질 수 없는 요소로 성패트릭스데이가 기네스를 제조하는 디아지오(Diageo)사의 마케팅 이벤트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기네스가 정말 아일랜드의 국민 맥주로 적합한 상징일까요?

1759년 더블린에 맥주 양조장을 연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 백작은 기네스북의 모태가 되기도 한 북아일랜드의 전통 귀족가문 출신입니다. 그러나 그가 속한 기네스 가문은 아일랜드 독립을 반대하고 영국과 아일랜드의 통일 유지를 주장한 통일당(Unionist)를 후원했습니다. 1798년에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이 그를 영국의 스파이라고 고발하는 해프닝까지 있었죠. 후손들도 통일당 지지자로, 1913년에는 아일랜드 자치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18억원 상당의 정치자금을 후원하기도 하였습니다. 1916년에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과 전쟁을 벌이는 영국군을 지원하고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로 알려진 직원들을 해고했습니다.

그렇다면 맥주 맛은 어떨까요? 기네스 특유의 흑맥주는 포터 스타우트(Porter Stout)로 런던의 짐꾼(Porter)들이 즐겨마시던 런던 에일에 기초한 맥주입니다. 회사는 어디 있을까요? 런던 증시에 상장한 이후 1932년 런던으로 본사도 옮겼습니다. 아일랜드 맥주로 마케팅 활동을 벌여온 기네스는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1982년 반군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며 런던 맥주로 브랜드를 재정립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정치적 긴장이 완화되고, 전 세계에 퍼져있는 7천만 아일랜드계 후손의 영향력이 커지자 다시 아일랜드 맥주로 소구했지요. 더블린에 있는 원조 양조 공장은 2000년 관광 명소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렇게 한 나라의 이미지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예가 기네스 뿐은 아닙니다. 제이콥의 비스킷(Jacob’s biscuits)은 영국 과자라고 마케팅 하지만, 실은 아일랜드 회사입니다. 홍차회사 립톤(Liption)은 영국 밖 100여개 국가에서 전통 영국 차 이미지를 활용하나 정작 영국 내에서는 인기가 없습니다.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 유통망을 관리하는 오늘날 기업의 국가정체성은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케팅에 도움이 되는 것만은 확실해보입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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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sangju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열린 인터넷이 인류의 진보를 도우리라 믿는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테크 낙천주의자 너드입니다. 주로 테크/미디어/경영/경제 글을 올립니다만 제3세계, 문화생활, 식음료 관련 글을 쓸 때 더 신나하곤 합니다. 트위터 @heesangju에서 쓸데없는 잡담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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