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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대한 연구가 우디 앨런과 딜란 패로우 사건에 대해 말해주는 것

(역자주: 이 글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캐롤 태브리스가 스켑틱에 기고한 글입니다.)

지난 2월 1일 우디 앨런의 양자 중 한 명이었던 딜란 패로우는 그녀가 7살이던 21년 전 우디 앨런이 다락방에서 그녀를 어떻게 성폭행했는지를 뉴욕타임즈를 통해 생생하게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사람들의 반응은 “그는 그러고도 남지” 또는 “그가 그랬을 리가 없어” 로 양분되었습니다.

물론 나역시 다른 누구와 마찬가지로 당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과학과 회의주의는 어떻게 우리가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딜란을 지지하는 이들 중에는 어떤 경우에도 “피해자의 주장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블로거 한 명은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배운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되는 진실은 바로 피해자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믿어라. 그들이 심지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들을 믿어라. 그들이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강간범으로 주장하더라도, 그들을 믿어라. 그들을 믿는 것이 당신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게 된다 할지라도, 그들을 믿어라. 그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밝히려 하지 않거나, 고소를 원하지 않거나, 다시는 그 이야기를 언급 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믿어라. 그 이야기가 진정 말이 안되게 들리더라도, 그들을 믿어라.

이런 주장을 읽는 것은 나를 답답하게 합니다. LA 맥마틴 유치원사건에서 아이들은 선생님이 (존재하지 않는) 지하 터널에서 그들을 추행했고, 자신들을 비행기 여행에 데려갔다고(유치원 교사의 월급으로?) 주장했습니다. 뉴저지에서 유치원 보모 켈리 마이클을 고소한 아이들은 그녀가 아이들 성기의 땅콩버터를 핥았으며 그녀의 분뇨를 아이들에게 마시도록 했고, 칼, 포크, 장난감으로 성폭행했다고 주장했지만,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최면과 “진실유도” 치료를 몇 년 받은 여성들은 자신들의 아버지가 자신들을 16년 동안 매일 강간했다고 주장하고 이 치료가 그 기억을 돌려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딜란을 지지하는 이들이 근거로 삼는 내용들 중 과학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것은 더 있습니다.

  • 아이들은 성추행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는다.
  • 기억이 생생하고 자세하다면, 그리고 감정이 풍부하게 담겨있다면 이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뜻이다.
  • 우디 앨런과 딜란 패로우 중 한 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뉴 인콰이어러지에 아론 배디가 쓴 것처럼,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면 우디 앨런은 아동성추행범이라는 죄목을 피할 수 없다.”

지난 30년 간, 심리학자들은 위의 가정에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혀왔습니다. 이런 연구는 누군가의 편을 들려는 것이 아니라 검사, 판사, 가족, 교사,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게 하며, 성추행의 피해아동과 누명을 쓴 어른을 모두 보호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연구를 통해 전염병처럼 유행했던 유치원 성추행사건과 기억-회복-치료에 의한 고소사건은 잠잠해졌지만, 이때는 이미 수백명의 유치원교사가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되었으며 수천 쌍의 가족이 분란을 겪은 뒤였습니다. 아직도 감옥에 갇힌 교사들이 있으며 이들 다수는 평생 성추행범의 딱지를 달고 살아갑니다. 이런 사법적 실패는 바로 “아이들을 믿어라”라는, 아이를 한 번도 가져보지 않았거나, 아는 아이가 없거나, 또는 아이였던 적이 없는 어른들만이 할 수 있는 주장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의 결과였습니다.

“거짓말”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이 단어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주장한다는 어른들의 용어입니다. 그러나 아이와 어른 모두, 거짓말이 아니면서도 사실이 아닌 말을 합니다. 아이들 역시 어른들 처럼, 때로는 누군가의 관심을 받기 위해, 때로는 처벌을 피하기 위해, 때로는 그들도 모르는 이유로 무언가를 지어냅니다. 나는 5학년 때, 선생님에게 자동차경기를 보러 가야 했기때문에 학교에 오지 못했다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한 아이는 1학년때 선생님이 자신을 때렸다고 말했고, 그녀의 부모는 반을 옮기고 교사와의 친분을 끊었습니다. 4년 뒤, 그 아이는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잘못 기억하며, 그들의 기억에 대한 확신이 그 기억이 진실이라는 사실과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8살 때 아버지가 제임스 터버의 “놀라운 O(The Wonderful O)”를 읽어준 기억을 생생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 뒤인, 내가 열 세살때 출판되었습니다. 기억은 스스로의 한계에 의해 뒤틀리기 쉽고, 어른들의 반복된 질문에 의해 꾸며지기 쉽습니다. 학창시절의 총기사고에 대한 기억연구에서, 당일 학교를 결석했던 이들중 상당수가 총소리를 들은 기억과 운동장에 누군가가 누워있던 기억을 말했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우리가 늘 하듯이, 잘못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건 당시의 감정과 트라우마는 그들 자신을 그 사건속에 포함시켰습니다.

저명한 기억과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2013년 TED 에서 기억이란 녹화장치라기 보다 “당신이 계속 바꿀 수 있고, 다른 사람도 바꿀 수 있는 위키피디아와 더”가깝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녀와 다른 연구진들은 사람들에게 괴상한 사건들 – 동물에게 공격당한 사건, 물에 빠져 죽을뻔 했던 사건, 혼이 씌인 이를 본 사건 등 – 을 그들의 기억으로 불어넣은 적이 있습니다. 잘못된 기억은 암시, 잘못된 정보, 최면, 또는 조작된 사진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기억이 참이라고 믿었고, 그녀는 이를 “진짜 같은 거짓기억(rich false memory)”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건을 확신을 가지고 자세한 내용을 기억해냈습니다. 이것이 우디 앨런이 무고하기 위해 딜란 패로우의 고백이 “거짓말”일 필요는 없는 이유입니다. 분명한 증거가 있기 전에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같은 원리로, 가해자의 자신이 무죄라는 주장 역시 꼭 거짓말일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며, 자신이 다른이에게 가한 피해에 대한 증거를 받아들일 수 없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모든 연인들, 가족, 정치인들은 사실 이미 여기에 익숙합니다. 그녀가 “당신은 나를 배신했어요”라고 말하면, 그는 “당신이 먼저 시작했지”라고 답합니다.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진실로 자신의 행동이 그녀의 행동만큼 치명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디 앨런 역시 거짓말이 아니라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을 지 모릅니다. 미아 패로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이런 이야기에 대해 사람들은 쉽게 결론을 내리려 합니다. 사람들은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라고 말하며, 내가 맥마틴 사건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 쪽의 주장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때로는 연기만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많은 인지부조화 연구에서 보듯이, 우리가 한 쪽의 편을 드는 순간, 우리의 뇌는 우리의 판단을 정당화하고, 이를 지지하는 쪽의 정보만을 받아들이며, 우리가 틀릴 수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를 무시하거나 부정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패로우를 지지하는 이들이 반대편을 이기기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입니다.  (한 논문은 이 현상을 연구하고 제목을 “의심이 들면, 소리를 질러라(When in Doubt, Shout)”로 뽑았습니다.) 누군가를 지지해야 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우리가 피해자의 편을 들어야 하는 이유로,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결과적으로 “부계 중심 강간 문화”를 지지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론 배디는 “만약 당신이 그녀가 거짓말을 했고 우디 앨런이 무죄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강간문화에 익숙해있기 때문이다”라고 썼습니다. 이런 논리는 딜란 패로우의 이야기에 회의적인 의문을 보내는 모든 이를 성차별주의자나 소아성애자로 몰아버립니다. 이런 자기기만적 논리는 진실의 추구를 막으며 페미니즘과 정의의 구현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는 딜란 패로우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먼저, 이 사건은 이들의 끔찍한 양육권 다툼 도중, 우디 앨런과 순이의 연애와 이에 대한 미아 패로우의 이해할 수 있는 분노가 정점에 달해 있을 때 발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딜란이 왜 지금 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다루는지도 물을 수 있습니다. 그녀가 기억-회복 치료를 받은적이 있는지, 또는 그녀의 남동생 모제스가 쓴 것처럼 분노와 복수심에 찬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이 좋지 않은 방식으로 갈라진 가족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비판적 사고를 위한 가장 중요한 교훈인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의 공저자인 엘리엇 애런슨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가진 회의적 태도를 분노의 제단에서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분노는 이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건설적이고 사려깊은 노력으로 이끌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회의적 태도와 과학이 없는 분노는 집단 히스테리와 마녀사냥만을 낳게 됩니다. (Skep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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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it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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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도 상당한 깊이의 글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의 매번 읽기만 하다가 한 가지 제안드릴 것이 있어서 글을 남김니다.

    마지막 문장인 "But outrage without skepticism and science is a recipe for hysteria and witch hunts."의 처음 부분인 '회의적 태도가 없는 분노와 과학은'은 '회의적 태도와 과학이 없는 분노는'으로 바꾸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이 편이 글의 전체 맥락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여서요.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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